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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립 Mar 25. 2023

"말을 애매하게 좀 하지 말고 또렷하게 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경험하고 쓴 성인 ADHD 이야기

"엄마! 엄마~~~  아이 참. OO가 어디 갔지?  엄마.  OO가 사라졌어요."

"%%$%@$@$@  중얼중얼...."


"말을 애매하게 좀 하지 말고 또렷하게 해!"

"차라리 엄마한테 'OO 없어졌는데 찾아주세요!' 이렇게 부탁하든지!"


아침마다 우리 @째와 아이 엄마가 출연하는 표준 대본입니다.


그러면서 아이 엄마는 이런 언어 습관이 어딘가 익숙하다며 저를 타박합니다.ㅜㅜ


그러고 보니 저도 매사에 말을 또렷하게 하지 않는, 아니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 가 있으면 이런 것도 비슷한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은 말을 또렷하게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늘어놓고자 합니다.


첫째로 @뇌가 순간 대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황함을 수습하지 못해서 중언부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 엄마는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대책모드로 가는데 저와 @째는 펄쩍펄쩍 뛰거나 투덜거리며 얼쩡거리는 반응부터 나오다 보니 대응에 시간이 걸립니다. 얼마 전 아이가 라면 국물을 쏟아 화상을 입을 때도 이전의 같은 상황에서 재빠르게 뜨거운 것을 털어내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막내와 달리 그 상태로 멍 때리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 닦아낼 수건을 찾아오는 아이 엄마와 달리 저는 멍하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 그 생각만 하며 아이를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동생이 다리미에 아이와 동일한 허벅지를 크게 데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득하니 데자뷔를 느꼈습니다.


'헐. 이런 것도 참 비슷하구먼.. 동생도 우리 @째도 어쩜 이리 비슷한 사고를.. 그것도 같은 부위네..그 때 동생도 초등학교 O학년이었지? 아마..?'


다음날 화상 병원에 가서 대기실에서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이..

"아빠도 똑같네. 아니. 아이가 사고가 났으면 바로 수습을 해야지 멍하고 쳐다만 보고 있으면 어떡해?"


네. 신체 반응과 행동 속도가 떨어지듯이 언어적 표현도 뇌 내 해석과 판단에서 한번 그리고 발화라는 운동기능에서 반응 속도가 떨어집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말할 내용이 빨리 정리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뭔가 딱 떨어지는 표현을 찾아내지 못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그렇고 저렇게 말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애매하게 말을 하거나 중언부언 떠들게 됩니다.  


 ADHD 증상의 핵심인 뇌의 집행기능의 어려움은
선택과 정리가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때 상대방의 생각은 어떨까요?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뭘 말하고 싶은 건데?'


BLACKBOX WARNING: 필터 없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은 속도가 매우 빠를 수 있습니다.


제가 약 효과를 가장 체감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상담 중에 군더더기 말이 비교적 줄었고 그날 다루어야 할 주제와 다음으로 미뤄둘 주제를 선택하면서 시간 조절을 하는 상담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조언이 길어지면서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중간에 잊어버리는 빈도가 줄었습니다. ^^


세 번째 이유는 상대방의 반응을 과도하게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가 있을 경우 상대방의 평가나 거절에 민감하거나  부정적 평가의 반복된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고민하다 보니 할 말을 주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입에서 말이 맴돌다가 혼잣말 같이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뭐라는 겨?'

'아. 말로 해. 좀 알아듣게..'



그런데 모순 포인트는 그렇게 조심 떨다가도 감정적인 한계에 이르면 목소리가 커지고 주저 없이 말을 던진다는 것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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