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통을 바라보다.

by PlanetWalker

삶의 고통을 바라보는 법

퇴근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한눈에도 지쳐 있었다. 피부는 잿빛이었고, 어깨는 습관처럼 말려 있었다. 하루 종일 상사의 눈치를 보며 버틴 탓이었다. 보고서의 한 문장, 숫자 하나에도 불같이 화를 내고, 작은 실수에도 사람을 세워 두며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그 앞에서 나는 늘 작아졌다. 말을 꺼낼 때마다 목젖이 떨리고, 심장은 쿵쾅거리며 뛰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얼어붙고 손끝마저 떨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흘려들어. 다들 겪는 일이야.”


하지만 그 자리에 서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치명적으로 나를 무너뜨리는지. 어떻게 한 인간이 이렇게 빠르게 자신감을 잃고, 목소리를 잃어가는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도 그 얼굴이 떠올랐다. 찌푸린 미간, 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 나는 다시 움츠러들었다. 어깨를 펴려 해도 이미 굽은 모양이 굳어 있었다. 사람들로 붐볐지만 누구도 제대로 깨어 있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스마트폰을 넘기는 사람, 벽에 기대 멍하니 흔들리는 사람, 고개를 천천히 숙인 사람. 그 모든 얼굴들이 하나의 회색 풍경처럼 보였다. 각자의 피로 속에서 묘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그 사이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쥐지 못한 채 창문 속 내 얼굴만 바라보았다. 터널을 스치는 푸른빛이 눈동자 위로 흔들렸다.


그때 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 물음은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말도, 스스로를 비난하기 위한 말도 아니었다. 그저 내 깊은 곳에서 올라온 목소리였다. 지하철의 흔들림과 함께 그 목소리는 작은 파동처럼 가슴에 퍼졌다.

나는 창문 속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지쳐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그 무언가가 나를 향해 조용히 물었다.


“계속 이렇게 살 것인가, 아니면 멈추고 다른 길을 찾을 것인가.”


그날 처음으로 아주 작은 틈을 느꼈다.
상사의 목소리도, 지하철의 소음도 아닌, 내 안의 조용한 공간 하나가 열리고 있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 안에서 우리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다.”
— 빅터 프랭클, 《Man’s Search for Meaning》 (의역)


우리는 흔히 고통 속에서 그 공간을 만난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흔들릴 때, 사실 그것은 ‘나’와의 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순간을 놓친다. 불안과 피로에 밀려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날 들려온 목소리는 세상이 아니라 나 자신이 건넨 첫인사였다.


〈멈춤의 순간, 명상의 시작〉

퇴근길 지하철역 계단을 오르며 그 질문이 다시 올라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몸은 무겁게 움직였고 머릿속은 여전히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상사의 얼굴, 동료의 시선, 내일의 걱정이 뒤엉켜 나를 따라왔다. 지상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위로처럼 느껴졌다.


그때 젊을 때 배우던 단전호흡이 문득 떠올랐다.


“그냥, 조금만 멈춰볼까.”


나는 잠시 서서 숨을 들이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목으로 스며들었다. 그 순간 하루 종일 쌓인 긴장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숨을 내쉴 때 묶여 있던 매듭이 조금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 번, 세 번 호흡을 이어가자 도시의 소음이 멀어지는 듯했다. 사람들의 발걸음, 자동차 소리, 통화하는 목소리… 그 모든 것 사이에서 묘한 고요가 피어올랐다. 누군가의 가르침도, 수행의 목적도 없었다. 그저 견디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시작한 작은 멈춤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1분의 멈춤’을 반복했다. 회사 뒤편의 좁은 골목, 버스 정류장 옆 가로등 밑, 지하철 출구 근처의 벤치. 어디든 괜찮았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내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숨을 들이쉴 때는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오며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숨을 내쉴 때는 하루를 버티느라 쌓였던 묵직한 감정들이 함께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생각들은 여전히 몰려왔다.


“내일 보고서 어떡하지?”
“상사가 또 화내면 어떡하지?”
“그때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예전 같으면 그 생각에 바로 휩쓸려 심장이 두근거렸겠지만, 나는 이제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았다.
마치 하늘 위를 천천히 지나가는 구름처럼, ‘왔다가 그냥 지나가게’ 두었다. 그리고 몸의 반응에 집중했다. 심장의 떨림, 떨림에 따르는 피부의 촉감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 흐르는 혈류의 느낌들까지...

그렇게 며칠을 반복하자,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날 상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적을 했을 때,

예전처럼 숨이 막히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반응이 바로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그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마치 마음속에서 이런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지금 또 불안이 올라오고 있구나. 예전처럼 바로 반응하지 말고… 잠깐 숨부터 쉬어볼까?”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게 아니었다.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은 ‘반응하는 방식’이었다. 예전의 나는 자극이 주어지면 바로 반응했다.


‘상사의 말 → 즉시 긴장’
‘부정적인 이메일 → 즉시 걱정’
‘누군가의 표정 → 즉시 움츠러듦’


모든 자극에 ‘자동 반응’하던 내가, 명상을 하며 그 사이에 ‘아주 작은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공간이 생기자 반응이 조금씩 달라졌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면
“괜찮아, 지금 뛰는구나.”


생각이 복잡하게 밀려오면
“그래, 지금 생각이 많네.”


이렇게 알아차리게 되자 감정은 예전처럼 나를 휘두르지 못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내가 변한 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 즉 ‘반응’이 변하고 있었다.”

그 작고 미세한 변화가 내 하루 전체를 바꾸고 있었다.


명상은 도망이 아니라 쉼이었다. 세상을 피하기 위한 중단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기 위한 준비였다.

이제 지하철 창문 속 내 얼굴은 여전히 피곤하지만, 눈동자 안에는 작은 빛이 깃들어 있다. 그건 ‘살아남는 얼굴’이 아니라, ‘살아가려는 얼굴’이었다.

명상은 내게 거창한 깨달음을 주진 않았다. 하지만 하루를 견디게 하는 작은 힘을 주었다. 그 힘으로 나는 오늘도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그 길 위에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