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그날 새벽, 병원 복도는 희미한 형광등 아래에서 눅눅한 냄새와 기계음으로 가득했다.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간호사의 낮고 조심스러운 말이 공기 속을 천천히 흘렀다. 그 한마디에 가족 모두가 말없이 병실로 모여들었다. 간호사는 서둘러 다른 병상에 있던 노인들을 옮겼다. 문이 닫히자, 남은 건 기계의 ‘삐—’ 하는 규칙적인 소리와 약품 냄새뿐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잠든 사람처럼 누워 계셨다. 그러나 숨결은 너무 약해서, 마스크 안쪽의 김조차 보이지 않았다. 많은 가족들은 복도에서 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젊은 시절 기계공으로 일하느라 짧아지고 굵어진 손가락. 그 손을 잡으니, 고생으로 점철된 아버지의 일생이 다시금 와닿았다. 아버지의 손에서 온기가 이미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손으로 나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괜찮다”고 말하던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갑자기 아버지의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가실 것 같아. 가족들을 불러야 돼.”
나는 이상하게도 확신이 들었다. 몸 어딘가에서 차가운 예감이 올라왔다. 그 예감은 이성을 넘어선 감각이었다. 가족들이 하나둘 병실로 들어오자, 아버지는 고통을 억누르듯 신음을 내뱉었다. 그때 아버지의 시선이 천장을 향했다. 마치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는 듯,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그 시선을 따라 올려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 공기 속엔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의 눈이 내게로 향했다. 그 순간, 시간은 멈춘 듯했다. 우리의 시선이 잠시 맞닿고, 아버지의 신음소리는 더욱 거칠어지다 짧게 끊어지더니 곧 조용히 멎었다. 얼굴 근육이 서서히 풀리면서, 오랜 고통 끝에 얻은 평온 같은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내 기억 속 그 어떤 표정보다 선명했다.
나는 울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늘 단단하고, 변치 않을 것 같던 존재가 이렇게 쉽게 사라진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죽음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했고, 훨씬 가까웠다.
장례식 내내 나는 현실감이 없었다. 조문객의 발걸음, 향 냄새, 상복의 바스락거림, 식어가는 국밥의 김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사람들은 일상의 대화처럼 위로했지만, 그 말은 공중에서 흩어져 아무 데도 닿지 못했다. 잠깐 눈을 감으면 병실의 공기가 다시 떠올랐다. 아버지의 마지막 눈빛, 절규와 같은 고통의 신음소리, 곧 찾아온 고요한 침묵, 그리고 손끝의 냉기. 나는 그 순간을 마음속에서 수백 번 반복 재생했다.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고통의 순간인 동시에, 한 생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순간으로 각인되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스쳤다. 동해안으로 가족 여행을 갔던 여름. 아버지는 회를 처음 맛있게 먹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햇살에 반짝였고, 바다 냄새와 함께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그때의 바람과 지금 병실의 공기가 겹쳤다. 모든 기억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 사라짐조차 삶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가 끝난 뒤에도,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돌아갔다. 출근길 지하철의 소음, 회의 중 울리는 알림음, 무심히 씹는 점심의 맛. 모든 게 이질적이었다. 나는 지금 살아 있지만, 마치 투명한 유리벽 너머의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데려왔다.
“우리는 왜 사는 걸까?” 그 물음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감싸고, 조용히 내 안에 앉았다. 마치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없는 유언처럼.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삶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시간을 보았다.”
“죽음은 존재를 가장 고유하게 만든다.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된다.”
—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아버지가 떠난 뒤, 내 안의 시간이 멈췄다.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고, 세상은 여전히 분주한데, 나만 멈춰 서 있었다.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따라오지 않았다.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었다. 회사에 도착해도, 사람들과 마주해도, 웃음은 입가까지만 번졌다.
“삶이란 게 이렇게 허무했나?”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쳤다. 어제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오늘은 이 세상에 없다. 그 단순하고도 냉혹한 사실이 내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어느 날 퇴근길이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저녁, 나는 일부러 우산을 접고 천천히 걸었다. 젖은 아스팔트 위에 가로등 불빛이 흐릿하게 번졌다. 그 빛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가, 마치 무언가를 말하는 듯했다. ‘모든 건 흘러간다’ — 그 단순한 진리를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그건 ‘사라짐’의 다른 얼굴이었다. 하루 동안 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감정들처럼, 아버지도, 나도, 언젠가 그 흐름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가끔 아버지의 49재를 하고 위패를 모신 북한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승가사에 자주 올라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위패 앞에 잠시 앉는다. 말을 걸지는 않는다. 향에 불을 붙이고 절로 인사를 한다, 그 향이 퍼지는 걸 바라본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어떤 ‘생명감’을 느낀다. 그건 ‘살아 있음’의 증거라기보단, ‘지금 이 순간 존재하고 있음’의 감각에 더 가까웠다. 아버지의 부재가 내게 남긴 건 슬픔이 아니라 ‘멈춤’이었다. 그 멈춤 속에서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바쁘게 쫓던 것들이 얼마나 덧없고, 한 끼 식사, 한 줄 햇살, 한 번의 웃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삶은 길고도 짧다. 긴 이유는, 견디며 배워야 할 순간이 많기 때문이고, 짧은 이유는, 그 배움의 순간이 지나가면 이미 늙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그 고통보다도, 그 고요함을 기억하려 한다. 그 고요 속에는 두려움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은 평온이 있었다.
언젠가 나도 그 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때의 나는 어떤 얼굴로 떠날까. 후회로 가득 찬 얼굴일까, 아니면 오늘 하루를 다 살았다고 미소 짓는 얼굴일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에게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나는 마지막 임종의 순간에 웃으면서
“잘 놀다 갑니다!” 하고 죽음을 맞이할 거라고.
그러고 보니 이렇게 농담이라도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나는 내 삶을 조금 다르게 그리고 깊이 있게 살아야 되겠다는 결심이 생겼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이 내게 남긴 건 슬픔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깊이’였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명상이라는 행위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나를 비워내는 시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의 삶이 얼마나 가득 차 있고,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있어야 하는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아침마다 하늘을 본다. 그저 구름이 흐르는 걸 보는 일. 그 단순한 행위가 이렇게 소중한 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분의 삶은 여전히 내 안에서 숨 쉬고 있다. 내 말투에, 내 행동에,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속에. 죽음은 결코 삶의 반대가 아니다. 그건 삶의 일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인 순간, 나는 비로소 ‘사는 일’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