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나는 세상이 조금 기울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변한 건 아니었다. 출근길의 전철도, 회사의 회의실도, 점심시간의 식당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모든 풍경이 얇은 유리막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멀게 느껴졌다.
출근길 전철 안, 사람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몇몇은 이어폰을 꽂은 채 스마트폰 화면을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화면 속 영상들이 빠르게 바뀌고 있었지만, 그 표정들은 놀라울 만큼 모두 닮아 있었다. 지친 얼굴, 감정의 빛이 사라진 눈. 나는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
회사에 도착하면 또 하루의 연극이 시작됐다. 누구보다 먼저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메일함에 쌓인 수십 통의 메일을 열어보며 머릿속 계산을 했다. 회의실에선 어제 했던 말이 오늘도 반복됐다.
“이건 방향이 틀렸어요.”, “그 부분은 다시 검토해봐야겠어요.”
그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또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회의가 끝나면 내 노트북엔 수많은 수정 지시가 남아 있었고, 나는 그 문장 하나하나를 수정하면서 점점 내 안의 무언가가 닳아 없어지는 걸 느꼈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을 먹을 때면, 음식은 혀끝에만 머물렀다. 입안의 온기가 사라지면, 맛도 함께 사라졌다. 저녁이 되어 퇴근길 전철에 오르면,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하루의 피로를 그대로 반사했다. 그 얼굴은 생기가 없었고, 마치 살아 있으나 살아 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그 무렵부터 나는 자주 ‘무력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떠난 이후, 삶의 모든 일이 이유 없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일을 해도, 돈을 벌어도, 사람을 만나도 마음 깊은 곳에선 텅 빈 울림만이 들려왔다.
어떤 날은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손끝을 들어 형광등의 불빛을 가리며 생각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오늘 하루를 버티는 이유, 내일 다시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삶은 끝없는 반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회의하고, 보고서를 수정하고, 집에 돌아와 휴대폰을 보다 잠드는 일상. 그 반복의 파도 속에서 나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그 속에서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직장에서 느끼는 모멸감,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공허함,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나를 짓눌렀다. 나는 마치 벼랑 끝에 선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떠오른 이미지는 ‘바다’였다.
내 삶은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뗏목 같았다. 풍랑이 몰아칠 때마다 그 뗏목은 부서질 듯 흔들렸고, 나는 그 위에서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휘둘리고 있었다. 물결은 매일 새로웠지만, 그 속에서 나는 매일 같은 자리에서 허우적거렸다.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며 살아야 하는가?”
“이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가?”
그 질문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렸다. 나는 바다 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계속 흔들리는 나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나는 지하철 안에서 무심코 영상을 하나 눌렀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10주년 다큐멘터리.’ 하루 종일 긴장했던 어깨를 기대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화면을 바라봤다.
영상 속엔 잿빛 바다와 무너진 마을이 있었다. 모래와 잔해 사이, 한 노인이 천막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고 했다. 카메라가 그의 얼굴을 비췄을 때, 나는 놀랍게도 거기서 절망이 아닌 평온을 보았다.
기자가 물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아직 크지 않으세요?”
노인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네, 슬픕니다. 하지만 이렇게 숨 쉬고 있는 것도 기적 아닐까요?”
그 한마디가 내 머리를 망치로 치듯 울렸다. 숨 쉬는 것도 기적이라니 — 그 말은 너무 단순해서, 오히려 더 깊게 박혔다. 그동안 나는 삶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이다.
눈을 뜨는 일, 밥을 먹는 일,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 그 모든 게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로만 느껴졌는데, 그 노인은 그것을 ‘살아 있음의 증거’ 그리고 '이유'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 또한 의미가 있음을...
영상 속 그는 무너진 집터에 꽃을 심고 있었다.
“아내가 꽃을 좋아했어요. 지금은 없지만, 봄이 되면 여기도 향기가 나겠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풀어졌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 자리에서 여전히 ‘다시 피어날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주름진 손이 흙을 만지는 모습이, 마치 새로운 생명을 빚는 의식처럼 보였다.
나는 전철 안에서 화면을 끄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지하철은 몇 정거장을 지나쳤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낯설 정도로 조용했다.
‘그 순간 깨달음이란 무엇일까?’ 궁금증이 폭풍처럼 내 머리를 휘몰아쳤다.
행복이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고요를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과 속도 위에서 굴러간다. 사람들은 더 좋은 연봉을 원하고,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완벽한 여행지와 더 화려한 주말을 꿈꾼다. 행복이란 마치 돈으로 환산 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그 노인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눈빛이 평온했다. 그는 이미 삶의 본질을 알고 있었다.
행복은 화려한 장소나 완벽한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그는 슬픔 속에서도 ‘감사’를, 결핍 속에서도 ‘충만’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추구하던 행복은 ‘무언가를 이루는 행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언제부터 행복을 이렇게 멀리 밀어냈을까?”
행복은 늘 ‘다음 단계’에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연봉이 오르면, 집을 사면, 그때 가서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내 삶을 계속 미루게 만들었다. 현재는 언제나 ‘행복의 준비단계’였고, 그 준비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충분히 살아 있었지만, 한 번도 ‘살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