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한 곡에 내 마음이 다 담겨 있다. 오미자차 한 잔에 새콤, 달콤, 쌉쌀, 떫음, 매콤함이 모두 나듯 말이다.
지난 주는 그동안 배웠던 리코더 레슨의 종강일이었다.이번 학기는 거진 공연 연습에 치중했기 때문에 언감생심 새 곡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텔레만의 판타지아 악보집을 건네주시는 것이다. 허얼!이 곡은 여지껏 내가 배웠던 곡들과 차원이 다르다.뚱땅뚱땅 피아노를 치다가 진정한 작품을 만난 느낌이랄까?새로 받은 악보 한 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초견으로 악보를 읽으며 곡의 분위기를 살펴 본다.도인이 출연하는 듯한 뉘앙스의 첫 소절은 그동안 만나 볼 수 없는 새로운 분위기다. 이 곡은 태극권할 때 틀어 놓아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법히다. 중국 무술영화의 배경 음악스럽다. 1700년대 독일 작곡가의 곡에서 동양적 신비를 느끼다니 참신기하다. 명상음악처럼 신비로운 동양적 정서에 마음을 빼앗긴다.교수님께서는 도입부의 분위기를 중국의 철학자 장자의 '소요유'에 나오는 붕새를 빗대어 설명하신다.
"붕새는 크기가 몇천리인지도 알 수 없는 커다란 북해의 물고기가 변해서 된 상상의 새에요. 한 번 날갯짓을 하면 천년을 날 수 있다고 하네요. 그런 기분을 생각하며 한 번 불어 보세요."
이어 명랑한 느낌 가득한 통통 튀는 주제부가 나오며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도약하는 두 개의 음을 연주할 때에는 현대곡의 연주 주법과는 다르게 두 음을 잇지 않고 딱딱 끊어 표현하는 것이 바로크 음악 연주의 특징이다. 이 때문에 상큼한 느낌 가득이다.
이어서 나오는 새로운 주제는 마치 연못에 돌을 던지면 나타나는 동심원과 같다. 둥글게 퍼지는 파형을 그리는듯 우아하고 섬세하다. 1악장 비바체가 단소나 피리를 부는 것 같은 삘이라면 2악장 알레그로는 춤곡에 맞추어 켈틱 댄스를 추어야 할듯하다. 하나의 곡 안에 귀엽고, 우아하고, 신비로운 느낌이 함께 들어있다니! 음악안에 내 마음이 다 담겨 있다.
여태까지 배웠던 곡들이 소나티네, 소곡집 정도라면 이 곡은 명곡집에 있는 '소녀의 기도'나 '은파'를 연주하는 기분이다. 바로크 리코더에 관심 갖기 시작하며 최애 작곡가가 된 텔레만 판타지 1번, 꿈에 그리던 그 곡을 공부하게 되다니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집에 와서 아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붕새'의 의미를 찾아본다. 붕새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위대한 존재'를 뜻한다. 매미나 새끼 비둘기는 커다란 붕새를 비웃는다. 뭣하러 힘들게 구만 리를 솟구쳐 올라 그 먼 남쪽 바다를 가냐고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드넓은 숲과 하늘을 보지 못하는 법,'곤'이 '붕새'로 변하는 과정은 살을 찢고 몸을 비트는 고통을 겪어야만 이루어진다.
태극권을 통해 나의 몸을 관조하듯 들여다보며 내 안의 욕심을 내려놓게 되듯 리코더의 멜로디를 통해 고통을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위험을 무릅쓴 결단의 순간, 하늘로 오르는 붕새처럼 나 역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나만의 하늘로 비상하고 싶다.
나의 힘듦과 어려움, 번뇌와 고통에 감사하는 밤이다. 언제나 껍질을 벗고 나오는 일은 힘겨운 법, 하지만 이 과정이 나를 '곤'에서 '붕새'로 만들어 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