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 주고 내 몸을 아껴줄 사람은 이 세상에 나 한 사람 밖에 없어요.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혹사시키지 마세요. 내 몸과 마음의 상태를 잘 살펴주고 돌봐줘야 해요." 의사나 심리학자가 말할 법한 이런 이야기를 이십 대 중반 청년의 입을 통해 듣다니! 이 얼마나 통찰력 넘치는 삶의 지혜인가.
지난 토요일, '한국 리코더 연주자 협회'가 주최한 1월 세미나에 다녀왔다. 주제는 리코더 연주자를 위한 '내 몸 사용법'. 강연자는 '왕벌의 비행' 연주 영상으로 유튜브 807만 뷰를 기록한 리코더 장인 남형주 님이다. 유퀴즈에도 나오셨던 리코더계의 슈퍼스타이자 일 년에 단 두 명만 뽑는 한예종 기악과 전공자의 위엄!
이 날 세미나에서는 연주자로서 느끼는 다양한 불편함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어보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각종 방법들을 함께 생각해 보았다. 좋은 '연주'를 위한 좋은 '컨디션' 만들기가 주제인 셈.일반인에게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주자뿐 아니라 전공 꿈나무들과 일반애호가 모두의 흥미를 자극할만한 신선한 주제 선택이었다.
음악 연주자는 연습의 과정부터 무대에 서는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긴장과 불편함을 느낀다. 무대공포증, 실수에 대한 두려움, 완벽한 연주에 대한 압박 같은 심리적 어려움은 물론 쉬지 않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근육통과 같은 물리적 통증도 동반된다.
연주회나 시험을 준비할 당시에는 사태의 위급함과 위중함으로 몸이 아픈 줄도 모르고 연습하다가 연주가 끝나면 완전히 녹다운이 되는 상태를 끊임없이 계속 반복한다.
운동선수들과 음악가가 하는 일은 모두 일정한 근육을 쓰는 일이다. 상대적으로 음악가가 쓰는 근육은 대근육이 아니라 소근육이라는 것이 차이점일까? 연습의 시간과 강도는 체육인이나 음악인이나 비슷비슷하다. 당연히 근육에 피로도가 쌓이게 마련이고 이것을 그때 그때 잘 풀어주지 않으면 통증으로 연결되며 각종 질환이 생긴다. 거북목, 손목 건초염, 라운드 숄더,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좌골신경통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 남형주 님은 음대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하루 열 시간이 넘도록 악기 연습을 했다고 한다. 공연을 준비할 때에도 늘 시간은 부족하고 해야 할 일은 많은 상황이 계속되며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근면 성실하게 악곡을 연습하고 최선을 다해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회 속에서 충분한 수면과 휴식은 연주자에게 공허한 이론이 된다. 음악이 먼저인지, 내 몸이 중요한지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남형주 님 본인 또한 군대 시절 겪었던 무대공포증 극복기를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셔서 더욱 실감 났다. 더욱이 2023학년도 일본교환학생을 다녀오며 많은 공연과 밤샘 연습으로 인해 팔을 들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치료 목적으로 찾은 도쿄예술대학 보건소의 한 선생님께 쉼과 이완에 관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악기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통증의 원인과 종류, 그리고 관련 근육들을 풀어주는 해결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되셨다고. 솔직히 이건 컴퓨터와 휴대폰어깨와 팔목, 손목을 많이 쓰는 현대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강의 내용이었다.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는 다양한 방법 중 기억 남는 것을 몇 가지 공유한다. 위의 자세는 흉쇄유돌근 마사지이다. 거북목과 신경통을 예방하는 효과가 뛰어나다고 한다. 아래는 사각근과 후두 하근 마사지법. 손목과 손등, 팔목 등을 풀어주는 다양한 스트레칭과 괄사기구를 이용한 지압법도 함께 배웠다.
음악가의 입에서 나오는 각종 근육의 이름들이 낯설고 신기했다. 승모근을 풀기 위해서는 어깨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몸의 앞쪽 쇄골 주변 근육도 세심히 살펴야 한다.악기연주자에게 꼭 필요한 신체적 스트레칭과 마인드셋의 정신적 측면을 함께 나누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일본에서 구해오신 연주자를 위한 몸 사용법 설명 책자를 비롯해 긴장 이완에 탁월한 알렉산더 테크닉에 이르기까지 이 분 강의에 보통 정성을 들이신 게 아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순간 건강에 소홀하게 되기 쉽다. 연습이라는 이유로 내 몸에 이상한 자세를 주입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내 몸을 잘 살펴봐야겠다. 연습을 핑계로 거북목과 틀어진 척추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연주 전후 근육을 이완하는 일을 잊지 말아야지. 무엇보다 완벽한 연주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을 편히 먹고 연습해야겠다. 음악은 단거리 육상경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 아니 산보처럼 즐겨야 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연주뿐 아니라 강의에도 탁월한 소질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 강연자 남형주 님. 그 어느 헬스 트레이너에게도 들을 수 없는 악기연주자에게 꼭 필요한 신체적 스트레칭과 마인드셋의 정신적 측면을 함께 다룬 본 귀중한 시간이었다. 최근 발표한 음반을 비롯해 각종 연주로 리코더 홍보대사로 활발히 활동 중인 남형주 님의 다양한 행보를 더욱 응원하게 된다.
음악은 예술이자 기쁨이어야 한다. 제한시간 내에 완벽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니 분위기가 딱딱해져 연주를 즐길 수 없고 연주가 노동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남형주 연주자의 세미나 강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