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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an 16. 2024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다.

아침 열 시 반, 슈퍼 계산대에서 본 그녀

"쌤, 오늘 급식 메뉴 맞춰 보실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우동이에요!" 급식 시간은 아이들이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남이 해주는 밥은 다 맛있다.

아래 사진은 친구네 학교의 급식. 영양 선생님의  수고 덕분에 우리는 말 그대로 행복을 맛본다. 누군가를 위해 끼니를 준비한다는 건 엄청난 정성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일이다.

급식 이야기가 나오니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가끔 아침에 장을 보는 경우가 있다. '오늘의 세일 품목'을 사기 위해서다. 한정수량 미끼상품인지라 마트 문 여는 시간에 부지런히 오픈런을 해야 득템이 가능하다. 다행히 오늘도 성공!

물건을 다 고른 후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바로 옆 줄에 대학을 갓 졸업한 듯한 젊은 영양사분이 서 계신다. 직업을 특정하게 된 건 이 분이 입고 계신 흰색 가운 덕분이다. 영하 5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투 하나 걸치지 못한 차림새다. 아니, 이 아침에 슈퍼마켓에는 무슨 일로 오셨는지 궁금하다.

계산을 기다리는 품목 중에는 한눈에 보아도 무거워 보이는 식재료가 가득이다. 대용량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여러 팩이 시선을 끈다. 아, 소시지 반찬이 부족했던 것이로구나!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30분, 점심 배식 시작하기 겨우 한 시간이 남았다. 외투 없이 달려올 만큼 마음이 급할만했다. 오늘 아침에 식재료 검수를 하시며 재료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당황하셨을까? 혼자서 저 무거운 재료를 어찌 운반하시려나, 혹시 저걸 들고 회사까지 걸어가는 건 아니겠지? 어느덧 내 차례가 되어 계산 후 주차장으로 나왔다.

저 멀리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보인다. 재빨리 짐을 어디에 실었는지 살핀다. 식재료들은 자전거 앞바퀴 장바구니에 무사히 자리를 잡았다. 휴, 노파심 가득했던 마음이 한결 놓이는 순간이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바람과 같은 속도로 재료를 구해온 영양사님은 그녀를 기다리던 조리원분들과 환상의 팀워크를 발휘하며 완벽한 팀플레이로 소시지 야채볶음을 만들기 시작하겠지? 오늘의 메인 메뉴가 무사히 직원분들께 제공되길 바라본다.

이 모든 책임이 그녀의 두 어깨에 달려 있으니, 어찌 비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른 새벽부터 배식이 끝나는 그 시간까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이름 모를 젊은이의 숨은 땀방울을 본다.

부디 오늘 직원분들  "잘 먹었습니다. " 더 큰 목소리로 외쳐주시길! 아침부터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애쓴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으면 좋겠다. 서류와 현장의 간극, 다양하게 얽혀 있는 주방 안팎의 각종 인간관계와 어려움에 그녀가 굴복하지 않았으면 한다. 환한 미소로 퇴근할 수 있기를, 시원한 생맥주로 오늘 아침의 작은 소동을 웃어넘길 수 있길!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속에 들어온다. 씩씩하게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던 그녀의 책임감에 나의 응원을 함께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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