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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Feb 02. 2024

공명하는 자아목격자와 좋은 친구 되기

셀프디스는 그만,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쌤은 왜 교사가 되었어요?" 최근 함께 사무실을 쓰는 선생님들과 교사가 된 이유를 서로 나누다가 소름 끼치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우리 둘 다 '그 어느 날의 나를 돌보기 위하여' 교사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치유하고 싶어서 말이다. 사랑하는 인프피쌤과 나는 교사가 된 이유까지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았다.

오늘은 지난 5주간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줌으로 진행되었던 '비폭력대화' 연수 마지막 날이었다. 한 참가자가 말 길에 위의 내용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순간 나는 짐짓 당황했다. 학생들의 정서적 필요를 알아차리는 '촉'이 기가 막히게 좋은 한 선생님의 이야기,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담임을 하는 동안 아이의 힘듦과 어려움은 내게 습자지처럼 스며들었고 나는 그 아픔과 무거움에 허덕였다. 기억 속 어느 날의 나를 돌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같은 눈빛을 가진 아이들의 괴로움을 귀신같이 알아본다. 그리고 그냥 넘어가지를 못한다.


예전에 오프라인으로 심리학 강의를 들었을 때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강좌에 참여했던 한 간호사분은 전형제인 K장녀였다. 밑의 동생을 업어 키우고 모든 걸 희생하고 양보해야 했던 그런 맏이 말이다. 정작 본인이 직업을 선택할 때에는 부모님의 사랑을 잘 받지 못했던 과거의 나를 스스로 보상하고 싶어 남을 돌보는 직업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돌봄 과 관련된 직업' 종사자들의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그 어떤 공통점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학생 때 받지 못한 돌봄을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본다. 나는 일개 한 명의 흘러가는 담임교사일 뿐인데, 상담사와 사회복지사 노릇까지 하려고 애를 쓰고 허덕인다.

이제는 내 안의 나의 모습과 썸을 잘 타보려고 한다. 학생들을 향해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라도 '내 본위'가 더 중요하니 이를 조화롭게 조절하며 더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나의 에너지 수준을 관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부터 숨 좀 쉬고 에너지를 재충전하여 이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어야지. 오버금지. 너무 힘들게 헉헉되며 남을 돕지는 말자 나 자신! 알았지?


내 삶을 돌볼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나와 연결하는 자잘한 잔근육, 모세혈관들을 많이 만들어서 나의 자원으로 활용하겠다. 언제나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일은 쉽지 않으니 언제라도 활용 가능한 또 다른 힐링 포인트들을 생각해 보자.

오늘 강의를 체크아웃하며 내 마음에 남는 단어는 '공명하는 자아 목격자'이다. 내 안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나의 분신, 스스로 인식하는 나의 모습 중 부족한 내 모습이 있다.

받아쓰기 시험에서 재시험을 보면서, 구구단을 못 외우고, 준비물을 안 가져와서 선생님께 혼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키워왔던 내 안의 '자기 비판자', '내가 뭐 이렇지.' 하던 부정적인 나의 모습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젠 수치심과 죄책감에서 벗어나 공감과 연민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겠다. 판단하고 생각하는 '머리'가 아니라 나의 느낌과 감각에 주의를 두고 '나와의 연결'의 의도를 심겠다.  

'공명하는 자아 목격자'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의 형상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나의 할머니의 모습을 할 수도, 반려견이 될 수도 있다.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며 나의 자아 목격자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 몸의 느낌을 기억하고 싶다. 나를 질책하고 비난하고 힐난하던 '내 안의 나'에서 벗어나야지. '살아온 삶을 추수하는 것은 내일의 삶의 지지대가 되는 것'이라는 강사님의 말씀이 참 마음에 든다.


혹시 어떤 마음이 내 안에서 일어나면 그걸 회피하거나 도망가거나 그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네가 왔구나.' '네가 거기에 있구나' 있는 그대로 봐주겠다. 내 안의 욕구를 설득하거나 없애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욕구가 무엇인지 찾아보겠다. 너한테는 뭐가 중요하냐고, 너는 언제부터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살고 있었냐고 질문하겠다.

하늘의 구름 보기, 노을 지는 풍경에서 바람 느껴 보기, 리코더의 음색에 귀 기울이기, 루이보스 끝 맛의 달콤함 느껴보기, 마음에 드는 그림과 대화하기! 나에게로 떠나는 호그와트행 킹스크로스역 9와 4/3 플랫폼에서 나 자신과 친구가 되는 여행을 시작해야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욕구를 애써 설득하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네가 거기에 있구나, 어떻게 하고 싶어?' 좋은 친구처럼 물어봐 주고 나 스스로에게 따뜻한 호기심과 친절함을 가지고 "오늘 너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해 줄 거야?" 물어보고 싶다.

무엇보다 나 자신의 과오를 곱씹으며 셀프 디스 하지 않겠다. 미래에 멋지게 될 내 모습을 위해 소중한 현재를 희생시키지 않겠다. 지금, 여기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에 충실하겠다. 나 자신을 연민의 눈으로 따뜻하게 바라보면서 다양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과정들이 나의 내면을 튼튼하게 지켜줄 울타리가 될 것이다.

어떤 감각과 감정이든 환영하세요. 이는 당신을 더 깊은 욕구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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