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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Feb 04. 2024

내 오랜 발바닥의 굳은살을 이제야 느낍니다

나의 느낌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양말을 벗고 집안을 거닐면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 밑 굳은살이 방바닥에 닿을 때 딱딱한 느낌이 감지됩니다. 평생 나와 함께한 굳은살인데, 양말을 사도 늘 그 부분만 구멍이 나는 지점이라 익히 알고 있었는데 이제야 굳은살의 존재를 내 몸으로 느끼다니.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에요. '나 여기에서 계속 굳어져서 화석화되었어요' 빼꼼히 내게 인사하는 느낌이었어요. '네가 거기에 있었구나' 바라봐주었습니다.


발바닥의 굳은살도 이럴지언데, 내 마음에 있는 뾰족뾰족한 부분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콤플렉스들, 바라보고 싶지 않은 상처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 또한 얼마나 많을까요. 이 모든 것을 헤집고 싶지 않아서 불편한 느낌들을 수면 아래로, 무의식으로 집어넣고 회피하던 날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에, 취업을 하고 나서는 일에 매달리며 남으로부터 인정받는 것, 좋은 평판을 가지고 싶어 전전긍긍했습니다. 노력과 성실, 성취라는 키워드에 자기성찰이라니요. 맛집탐방, 각종 취미활동에 몰두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며 나 자신의 느낌에 귀 기울일 그 어떤 계기도 없었어요.


이제 보니 나는 가슴속 느낌을 모두 머릿속 생각으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울 일 아니야, 정신 차려 '라고 스스로 채찍질하며 느낌 자체를 없애려 노력했습니다. 불편한 느낌이 들 때면 그 느낌이 싫어서 드라마나 책으로 도망가곤 하거나 때때로는 그 느낌에 짓눌려 허우적대기도 했지요.


일상 안에서 만나는 수많은 스트레스 상황에 내 몸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는지 살펴보려고 마음먹으니 서서히 내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며칠 전의 이야기입니다.


교사의 말에 불응하고 떼쓰며 화내는 5학년 남학생을 교감님께 인계하고 왔습니다. 교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교실 앞에 나와 계속 춤을 추고 자기 차례가 아닌데 계속 자기가 아는 것을 끝도 없이 큰 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교과서를 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계속 보며 수업에 방해되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이 아이는 일 년 내내 가장 어려운 아이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아이의 공격적인 언행, 불손한 태도, 성실치 못한 수업자세에 같이 화를 냈을 겁니다. 사실 모든 학생들이 다 보고 있는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교사에게 대드는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벌써 기분이 좋지 않죠.


교감선생님 앞에서도 계속 말대꾸하고 화를 조절하지 못하는 그 아이, 선생님께 왜 화를 냈냐는 교감선생님의 질문에 "제가 좀 다혈질이어서요!"라고 대답하는 아이.


예전 같았으면 불쾌하고 언짢아서 화가 나고 그 화를 풀기 위해 믹스커피와 초콜릿 과자를 찾았을 겁니다.


이번에는 안테나를 제 자신에게 맞추었습니다. 재빨리 내 몸을 살펴보았습니다. 굳지 않은 걸 발견하고 스스로 자랑스럽고 기특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이의 분노 폭발에 맞대응을 하지 않고 나의 감정을 바라보니 그 화에 눌리거나 당황하지 않고 상대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태극권을 배웠구나 싶었습니다.

대련을 할 때 몸에 힘을 빡 주는 것보다는 적정한 힘만 남기고 이완하는 것이 상대의 힘의 방향과 세기를 알아차리는 데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바르게 세우고 땅에 내 뿌리를 바르게 세우면 내가 힘의 방향만 살짝 틀어도 맞부딪치지 않고 상대를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배운 의사소통훈련을 통해 외부  자극에 대해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피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것이 큰 수확입니다. 번뜩이는 사냥개의 눈이 아니라 호기심 가득한 사랑의 눈으로 나 자신의 의도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 이것만으로도 나와 친밀해지는 첫걸음마를 뗀 느낌입니다.


수십 년간 내 몸의 일부였던 발바닥 굳은살의 느낌을 이제야 알아차리듯 나를 알뜰살뜰 잘 살피는 내가 되려 합니다. 12살 어린이의 분노에 내가 KO패 되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나의 느낌은 나의 가장 좋은 친구, 나의 아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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