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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Apr 12. 2024

쌤! 출장을 다녀오시면 선물을 사 오셔야죠!

그 출장 외국이 아니고 교육청이다!

"왜 쌤은 출장 다녀오신다면서 한 번도 맛있는 선물을 안 사 오시는 거예요? 지난번에도 그러시고는!"

한 남학생이 짐을 챙겨 교실 문을 나서는 담임쌤께 갑자기 뾰롱통한 목소리로 투정을 부린다. 능글능글한 건지 진짜 궁금한 건지 잘 구분이 안 된다.


담임쌤의 곤란한 표정을 확인한 내가 바로 반박에 나섰다.

"너희 쌤 어디 딴 동네 출장 가시는 게 아니야. 외국도 아니고 제주도 아니고. 우리 동네에 있는 교육청에 가시는 건데 특산품이 어딨어. 자, 다들 사회책 정리하고 얼른 리코더랑 음악책 꺼내! 빨리빨리, 무브, 무브!"

그제야 '오우!' 하는 아이들. 의문이  말끔하게 해결되었느냐?


"너희들 사회 시간에 산맥과 하천에 대해 배워서 담임쌤이 어디 낙동강이나 영산강으로 출장 가시는 줄 알았나 보구나. 걱정하지 말거라. 다들 차렷! 열중쉬어! 차렷! 담임 선생님께 인사!"

"선생님, 출장 잘 다녀오세요!"

공손히 공수 자세로 인사하는 5학년 아이들. 이럴 때만 아기새 같다.

음악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반장이 문단속 잘하라고 가라는 이야기를 남긴 채 담임쌤은 총총 사라지셨다.

아이들이 알쏭달쏭 희한한 표정으로 말한다.

"어, 기분이 뭔가 이상해요. 음악쌤, 담임쌤께 인사를 하고 나니 왜 아침에 부모님께 회사 잘 다녀오시라고 말하는 것 같죠?"

담임쌤이 안 계셔도 진공청소기로 먼지 하나 없이 뒷정리하는 아이들. 창문도 잘 걸어 잠그고 칠판도 깨끗하게 지우는 이쁜 모습에 박수를 쳐 주었다.


담임쌤의 교육청 출장으로 2교시 수업을 6교시로 바꾼 오늘, 알뜰살뜰 서로를 챙기는 아이들 모습이 참 기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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