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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Apr 20. 2024

토닥토닥 위로의 힘

의사선생님의 외침. 화이팅

우리 동네에는 최고의 의사선생님이 계시다. 내 평생 만난 의사선생님 중 제일 유쾌하고, 세심하신 분! 심지어 항생제도 꼭 필요할 때만 쓰신다. 나이가 지긋하신데도 청년같이 푸르른 의사 선생님이시다.


아가들에게는 개그맨처럼 "나 무서운 사람 아니야. 선생님이 목소리가 커서 놀랬지?" 이러신다. 워낙 귀가 어두운 노인분들이 많이 방문하시는 곳이라 기본적으로 목소리가 크셔서 어린아이들이 놀란다고 한탄하심.ㅋㅋ


명랑하고 힘찬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는 늘 한결같다. 음정으로 따지면 높은 파에서 솔 사이. 포르테다. 묻지는 않았지만 이 직업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된다. 그분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를 들으면 알 수가 있다. 직업만족도가 최상이실 것 같다.


목감기가 나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 목이 칼칼하더니 기침도 나오고 목소리도 변해서 병원에 왔다. 이 분 병원에는 언제나 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도 지친 기색 없이 환자들에게 최선을 다하시는 원장님.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내 앞에 들어간 환자분과의 대화 내용이 내 귀에 들려온다.


어서 오세요! (높은 솔, 포르테)
아, 진짜?  (레, 도. 라? )
그랬었구나.(낮은 시 플랫)
지금 콧물은 어때요? 봅시다.
이번엔 항생제를 써야 할까 고민이에요.
흐음. 오늘은 제가 약을 좀 드려볼까 해요.
물약이 좋아요 알약이 좋아요?

내가 이 분을 좋아하는 건 환자들에게 진짜 다정하게 말씀하시는 그 마음이 느껴지는 목소리인듯하다. 걱정과 위로를 담은 목소리 톤, 쓰시는 단어, 몸짓 언어인 제스처 삼박자가 모두 일치한다.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환자 목에 염증이라도 발견하시면 얼굴을 찌푸리시며 "에궁, 인후염이네. 많이 불편하셨겠어요. 혹시 밥맛도 없지 않아요?"  하신다. '밥맛은, 왜 좋은 거죠?'


오늘 진료를 받으며 기억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

오늘은  어떤 증상이 불편해요?
아, 그랬었군요. 한 번 볼까요?
(콧속 카메라 기구)
아이고, 인후염이 왔네요.
 목을 많이 쓰는 직업이라. 힘들었겠다.
제가 좋은 약 드릴게요.
오늘 너무너무 잘했어요.(어깨 토닥토닥)


의사선생님 앞에서는 없는 투정이라도 하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된다. 사실 그다지 많이 아픈 상태가 아닌데도 말이다. 고작 코를 통해 인후 상태를 체크하는 그 기계가 뭐라고 움찔했던 환자를 토닥토닥해주시는 의사선생님을 보며 난 정신이 번쩍 났다. 아! 이거 나도 벤치마킹해야겠다.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과 학부모님들께 이 말을 꼭 해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모 메모!

오늘 참 잘했어요.
많이 힘들었지요?
이제 괜찮아질 거예요.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든 건 참 웃기지만 말이다. 이 분을 보면 모랄까 개그맨 신동엽이 의사 선생님이 되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 세상만사 도통한 지혜롭고 유쾌한 인생 선배 같은 모습. 할아버지 할머님들에게는 자기 아픔을 잘 이해해 주는 아들 같은 모습으로, 아가들과 보호자들에게는 그 어려움을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믿음직한 의료인의 모습으로! 오늘 내가 글감 소재로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내 앞에서 진료를 본 어머니와 초등학교 남학생의 이야기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다. 이번 약을 먹어도 혹시 낫지 않으면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들려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서는 모자를 향해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는 병원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낯선 단어였다.


파이팅!
운동경기도 아니고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환자에게 해주는 외마디 외침.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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