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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Apr 30. 2024

오전 8시 20분의 시집, 오후 4시의 피아노

무엇이 더 필요한가

아침 출근길, 버스에 앉아 시를 읽고 계신 한 어르신을 보았다. 시집 제목은 '노년일기'다. 책장을 찬찬히 넘기는 손길까지 우아하다. 아침 8시 20분, 버스에서 만난 중년의 여성 분은 이곳이 처음인지 기사님께 길을 묻는다. 나의 오지랖이 발동하는 순간이다. 재빨리 "여기서 내리세요."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그 분과 같은 정류장에서 함께 내렸다.

이 쪽으로 가시면 된다고 손으로 방향을 알려 드렸더니 그분은 활짝 웃으시며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이신다. 마치 원래부터 알고 있던 사람처럼 말이다. 그 미소가 참 밝고 편안하다.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동네에 처음 오픈한 카페에서 우연히 맛본 디카페인 커피. 그 맛이 인상 깊어 출근길에 일부러 다시 들렀다. 그리하여 평소와 다른 버스를 타게 되었다. 지난 근무지에 출퇴근할 때 이용하던 익숙한 노선이라 방심했는지 카톡을 하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쳐버렸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정류장에서 내려서 십 분 정도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럴 수가. 버스를 잘못 내린 덕분에 새로운 동네에서 낯선 풍광을 만났다. 마치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그나저나 어제 커피숍에서 근무한 직원분도 참 좋았는데 오늘 아침 만난 바리스타 이 분도 에너지가 좋다. 여기 사람 잘 뽑네! 다음에도 또 오고 싶다.

오늘의 화룡정점은 피아니스트 조현영 선생님의 연를 줌으로 들은 것이다. 오후 4시에 듣는 베토벤의 비창 2악장 라이브 연주라니. 이건 너무 완벽하잖아. 평소와 그리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삶인데 낯선 경험이 그득한 신기한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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