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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움 즐거움 Jun 05. 2024

동화쓰기 강좌 수강

숙제는 하기 싫어요

'프로 시작러'인 내가 이번 학기에 새로 도전한 일이 있다. 바로 동화쓰기 강좌 수강이다. 우리 학교 선생님 중 등단하시고 본인 개인 저서가 수두룩인  동화 작가 분이 계시다. 그 분 추천으로 등록한 수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서로의 작품을 나누고 조언하는 강평 시간을 가진 지 벌써  삼 개월이 넘었다. 어느새 다음 주 종강을 앞두고 있다.

난생처음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하다 보니 영 어색하고 민망했다. 남들이 쓴 걸 읽고 감상을 말하는 것과 창작의 영역은 다른 장르 아닌가. 남에게 훈수를 두고 비평 하는건 쉬워도 내가 뭔가 만들어 내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나름 미식가라고 자처하는 내게 김밥천국의 음식은 딱히 먹고 싶지 않은 '배만 채우는 메뉴' 이다. 하지만 막상 내가 만든 요리의 퀄리티는 절대 '신라호텔급'이 될 수 없다. 그나마 표준화된 맛을 보장하는 동네 분식점 수준이라도 도달하면 감지덕지다. 진짜 요리를 한다는 게 아니라 비유컨대 글쓰기 수준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동화 수업을 들을 때 힘겨운 지점은 비단 창작의 영역 뿐이 아니다.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합평 시간도 고난이다. 이론은 나도 잘 안다. 이 시간에 나오는 의견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된다는걸. 애정 어린 충고와 지적이 나의 작품을 더 살찌운다는걸. 그래도 감정적으로 유쾌하진 않다. '피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외치고 싶다.

우리는 총 12주 봄 학기 과정 동화 창작 수업 가운데 필수적으로 두 편의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 A4용지 5장 내외의 단편 동화를 완성하는 것이다. 동화 창작 회원 가운데 선배님들이 스타트를 끊어 주셨고. 이번에 가입한 새내기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래서 나는 6주, 12주자에 발표하기로 했다. 첫 과제와 두 번째 과제를 임하는 나의 마음은 천지 차이였다. 차라리 뭣도 모르고 시작하는 게 나았다. 조금 배우고 나니 자꾸 걸리는 게 많아서 초고를 쓰기가 더 힘겨웠다.

일단 6주 차 첫 과제는 어찌어찌 지나갔다. 나름 심혈을 기울여 썼는데 주변 사람들 반응은 다양했다. 좋다는 분도. 이상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호의적인 평에는 기분이 좋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의견을 들을 때에는 기운이 쪽 빠졌다.


"나 진짜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이렇게 말해서 미안한데 이거 재미가 너무 없어."

국문과를 졸업하고 교대를 다시 들어갔던 베프가 첫 번째로 쓴 내 동화를 읽고 한 말이었다. 친구는 내가 쓴 글이 '지식을 욱여넣은 만화책 스크립트 같다.' 고 평했다. 이야, 소름끼치도록 딱 정확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재와 주제인 '리코더'를 예상 독자인 초등학교 중고학년 아이들에게 콤팩트하게 전달해야겠다는 각오로 쓰기 시작했는데 내 의욕이 작품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직 초보라 글의 구성이라던지 문맥 표현이 무지 어설펐 보다.

그래도 첫 번째 과제를 제출하고 나니 마음은 후련했다. 그러나 두 번째 동화를 쓰려니 잘 쓰고 싶다는 부담감이 밀려왔다. '처음보다는 나아져야 할텐데.' 싶으니 도통 시작하기가 어려웠다. 이게 시간이 많다고 써지는 게 아니었다. 주제는 뭘로 할지, 어떤 연령을 대상으로 할지 도저히 감도 오지 않았다. 시간은 딱 일주일 남았는데 말이다. 길을 걸으면서도 학교에서 수업을 하다가도 온통 무슨 동화를 써야 하나 고민만했다.

그러다 어제 오후 드디어 그렇게 안 써지던 두 번 째 과제를 마치고 예정보다 한 주 앞서 발표를 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진짜 우발적인 원인이 있었다. 우리 동화 모임 구성원의 수는 열 명이 채 안 된다. 초반에는 모두 열성적으로 참여하다가 각자 사정으로 하나둘씩 빠지는 날들이 생긴다. 영어학원이나 헬스장과 비슷하다. 어제는 역시 방송작가를 하시는 선생님이 갑자기 수업에 못 오시겠다고 연락이 왔다. 일이 아직 끝나지 않으셨단다. 건강 문제와 집안일 때문에 불참하는 다른 두 분도 생겼다. 갑자기 세 명이나 결석하는 바람에 발표하고 했던 인원도 구멍이 났다. 우리 중 반장 역할을 하고 계신 고화 선생님이 급히 대타를 찾으셨다. 혹시 다음 주에 발표하기로 한 사람 중 오늘 할 사람 없냐는 말이었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란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았다. 원래는 설계도면처럼 작품 구상안도 쓰고 인물, 사건, 배경의 뼈대를 만들고 시작해야 하나 그럴 시간도 없었다. 정신없이 마침표를 찍고 시간을 확인하니 두 시간이 지났다. '이번 주에 안 되면 다음 주에 내도 되니 못 써도 된다.'라고 생각하니니 오히려 속도가 붙었다. 멋있게 쓰려는 욕심을 버리고 소박하게 완성만 하자고 달려들었던 게 주효했다.


"혹시 오늘 발표 가능하세요?" 교수님이 물어보셨을 때,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끈따끈 갓 프린트한 원고는 맞춤법도 문장 구성도 실수투성이였다. 그래도 앉은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 한 편을 써 내려갔다는 게 스스로 기뻤다. 어제 수업을 통해 많은 선배님, 동기 선생님께 감사한 조언 말씀을 들었다. 교수님께 받은 피드백을 잊지 않고 내 작품을 다듬어 나가야겠다. 휴! 기쁘다.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기분이다. 부족하면 어떻고 어설프면 어떤가? 나는 패기 넘치는 왕초보 아닌가! 무식하니 용감하고, 실수도 자꾸 자꾸 해 보아야 실력이 되는 것을.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아자 아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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