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코더곰쌤 Jul 19. 2024

바뀌는 건 없지만 하고 싶은 말은 있습니다.

오르프 악기와 피아노, 안녕

"2학기에는 교실로 들어가서 수업을 해야 하나봐요. 메신저 살펴 보세요."

어제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6학년 음악 선생님이 ai연수를 듣고 있던 내게 빅뉴스라며 소식을 전했다. 얼른 컴퓨터 메신저 창을 열어보니 문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8월 개학터 11월말까지 외부 강사 난타와 사물놀이 강의를 위해 정규 수업 시간에 음악실을 이용한다는 소리였다. 


청천병력같은 소식에 가슴이 내려 앉았다. 그러니까 이건 나에게 수업권을 침해 당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무게였다. 이렇게 메세지로 띡 알려주고 끝이라고? 이거 실화인가. 코로나 때 원격 수업한다고 뉴스로 먼저 전해들었던 그 때의 무력했던 기분이 다시 올라왔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시작하는 메세지는 '그래도 괜찮을까요'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완곡한 어법으로 쓰여져 있었지만 주장하는 내용은 확실했다. '겟 아웃. 방 빼'였다. 전화기를 들고 메세지를 작성하신 부장님과 연락을 했다.

"이거 고려의 여지가 있다는 건가요 아님 통보인 건가요?"
"음.... 통보죠."

사실 내가 전화 한 통 하는게 무의미한 일이었다. 부장회의에서 정해졌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난 부장이 아니니. 피아노 그거 뭐 맨날 치냐, 담임도 교실에서 음악 수업을 하지 않냐. 난타 그거 악기 운반 문제도 그렇고 교실에서 하면 시끄러우니 이야기 한 것이다. 다른 유휴 교실은 전혀 없다. 이게 최선이다.  끝.

천만원 가량의 각종 오르프 리듬악기, 각종 국악기, 무엇보다 피아노가 있는 음악실, 개인 보면대가 있는 곳에서 한 학기 사용을 하다보니 수업의 질이 컴퓨터 사운드의 가라오케 반주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이미 알아버린 후였다.

뭐, 긍정 회로를 돌려보면 난 교실 수업이라고 뭐 싫지는 않다. 피아노 뭐 그까짓 게 뭐 그리 대수냐, 오르프 악기 안 하면 되지. 영상과 노트 필기, 교실에서도 얼마든지 음악 수업을 할 수 있다.


담임으로 음악 할 때에도 늘 교실에서 음악 수업을 했는데 못할 것도 없다. 오히려 책상이 없는 음악실 수업보다 아이들 관리도 훨씬 쉽고 편하다. 그런데 이건 나 혼자 슬프고 좌절스러운 기분인 거다. 나의 수업은 공간을 어떻게 쓸지에 관한 부분까지 계획에 들어가는 건데, 메시지 하나로 찍. 꿈이 깨지는 순간은 찰나다.

아, 이게 딱 전담 교사의 무게인가 보다. 깃털만큼 가볍다. 수업은 예술이라는 말은 교과서 속 허공 속에 있는 말인 것을. 상황에 맞추어, 융통성 있게, 유동적으로 서로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핵심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나는 그냥 하나의 부품인 거다. 언제든, 누구에게나 대체될 수 있는 인력이라는 사실이 참 서럽고 힘이 빠진다. 스승의 날 축하 서한문 속 '존경하는 선생님들'이라는 문구가 진심이 아닌 공허하고 상투적인 말인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나 자신이 멋지게 느껴지는 순간들은 계속 만들어 나가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