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넌센스 퀴즈를 내겠습니다. 잘 생각해서 답을 맞춰 보세요. 자, 독수리가 불에 타면 뭐라 할까요?"
"잔인한데. 그게 무슨 소리야?몰라."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만난 6학년 한 명이 내게 질문을 한다. 2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아이다. 이제 키가 많이 자라서 170이 넘는다. 하지만 성격은 그대로다. 그 때에도 말이 아주 많았다.
"정답은 바로, '이글이글' 이에요."
흐아~ 이게 뭐냐. 복면가왕 김성주 아나운서 톤으로 다음 문제를 이어가는 어린이.
"두 번째 넌센스 퀴즈입니다. 곰은 사과를 어떻게 먹을까요?"
"글쎄?짐작도 안 간다."
"흐흐흐. 곰은 말이죠. 사과를 '베어'먹죠."
천재인데? 헐!
"선생님, 이거 애들한테 써먹어 보고 반응 알려 주세요."
과연 내가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설렁설렁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어갔다. 그게 바로 지난 주였다. 오늘 공개 수업 마치고 쉬는 시간 복도에서 그 아이를 또 만났다.
"쌤, 제가 알려드린 넌센스 퀴즈 문제 동생들한테 한 번 해 보셨어요?"
"아니아니, 아직 못했어. 너한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진짜 재밌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자마자 뭐라 했는지 금방 까먹었지 뭐야. 건망증 알잖아. 다음에는 꼭 해 볼게."
그래서 이 퀴즈를 잊지 않으려고 기록으로 기억을 복기해 본다. 사실 그 타이밍은 우리 친구가 참 고마운 순간이었다. 1교시가 바로 동료장학이었는데 쫄딱 망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풍선과 공기주입기로 야심차게 실험을 준비했는데 글쎄 머피의 법칙인건지 열심히 공부할 때에는 안 들어오시고, 실험 다 끝나고 실험관찰 책에 답 기록하는 타이밍에 딱 들어오신 교장선생님, 필기하는 아이들의 정수리만 보고 가셨다.
20분을 머물러 계셨는데 아이들이 글씨만 쓰고 그림만 그리고 있어서 좀 멋쩍다고 해야 하나 쫌 그랬음. 쩝...내가 한 말이라곤 '각 조의 남자1번 나오세요.'부터 여자 2번까지가 끝이었음. 적막한 공개수업. 명색이 과학수업인데 말이지. 바람 인형 만들기를 위해 종이에 색칠하는 것만 줄곧 보고 가셨다는. 흑흑흑.
살짜쿵 기분이 걸쩍지근했는데 옛 제자의 유머에 피식 웃었더니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요만한 일로 속상하고 또 요만한 일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해지는 매직,그 비법은 바로 '유머'가 가진 힘 같다. 행복이 별건가, 웃으면 그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