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선생님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집주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관리비 3회, 수도요금 2회가 미납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학교 행정실에서 주거비는 직접 임대인에게 입금되지만 관리비와 수도세는 개인이 직접 내게 되어 있다. 평소 문제 한 번 안 일으킨 우리 쌤이 도대체 무슨 일일까 싶었다.
'사장님, 제 업무가 올해 변경되었어요. 학교 및 담당 선생님께 위의 내용을 전달하겠습니다.'
일단 사장님에게 문자를 넣어놓았다. 힝, 올해 나는 학교폭력 담당이다. 영어는 작년에 맡아서 집주인 번호가 내게 남아있던 것이다.
내 업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고민을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평소같으면 원어민을 맡은 영어과 쌤에게 문자 토스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번 주 월요일부터 영어 업무 담당 선생님이 출산 휴가라 부재중이다. 그리고 정년 퇴임을 하신 선배님이 기간제로 채용된지 딱3일째다. 이런 뒤숭숭한 시점에 위와 같은 독촉 문자를 받았으니, 이 일을 내가 해야하는가 생각하게 된 것이다.
'행정실을 통해 말을 하는게 나으려나? 기간제 선생님께 전달할까? 차라리 그냥 내가 물어 보는 것이 좋으려나?'
하필 딱 이때 왜 이런 일이 생긴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수업을 하면서도 계속 머리가 무거웠다. 심지어 오늘은 전체 회식도 예정되어 있어서 원어민 선생님 옆에 콕 붙어 있어야 한다.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원어민 선생님에게 이런 껄끄러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스트레스다.
무엇보다 우리 원어민 선생님은 돈을 밀리고 안 낼 그럴 사람이 아닐텐데 말이다. 뭔가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피스텔 사장님에게 나의 업무가 바뀐 것을 알렸으니 기간제 선생님에게 위의 문자를 메신저로 보내서 알려드리자 싶었다. 더불어 집주인 번호도 함께 말이다. 그게 바로 오늘 아침 이야기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하교한 시간, 기간제 쌤은 주인 분과 통화를 하셨다. 휴,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착각을 해서 다른 사람과 헛갈린 것이었다. 오피스텔 주인 분은 나이가 많아져서 그 따님이 대신 관리를 한다는데 그 둘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나보다.
"아유, 우리 사장님 연세면 충분히 깜빡 깜빡 할 수 있어요. 괜찮아요. 저 역시 돌아서면 까먹어요."
삶의 연륜과 경력이 느껴지는 고수의 화법을 배웠다. 괜히 내가 전화해야 하나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