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를 만난 성공한 덕후!

세상에 태어나 주셔서 감사해요.

by 리코더곰쌤

이 날은 내가 태어나서 제일 행복한 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근두근, 기다리던 나의 최애 음악가이자 연예인을 만난 날!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계시는 우리 리코더 레슨쌤이 드디어 서울에 오셨다. 아,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선생님과는 코로나 시절부터 줌을 통해 화상으로 원격 리코더 레슨을 받고 있다. 이번이 고국 방문 세 번째이신 우리 선생님! 일 년 만에 만나 뵙는 선생님께 전해 드릴 고국 방문 기념 웰컴 선물도 준비하고, 장대비를 헤쳐가며 레슨 장소에 도착했다! 아! 떨려라!

코로나가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선생님께서는 전 유럽을 돌아다니시며 연주 여행을 하시느라 최근 일 년 사이에는 레슨 스케줄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 달에 한두 번, 어쩔 때에는 세 달씩 레슨을 못 받기도 했다. 이 와중에 고국방문이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선생님께는 알토 리코더로 바로크 곡들을 배우고 있다. 최근에는 6학년 음악시간에 리코더에 재능이 있는 어린이를 만나 내가 그동안 배웠던 바로크 레퍼토리를 함께 연주하고 있다.

선생님께 이 아이의 비범한 재능을 자랑하고 싶고,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여쭈어 보았더니 세심하시고 섬세한 피드백을 해 주신다. 나중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싶어 기록으로 남겨둔다.

다음 날 출근해서 우리 6학년 친구에게 선생님이 직접 찍으신 영상과 피드백을 전해 주니 어린이가 얼마나 기뻐하는지! 영상 초반에 나오는 이름이 바로 그 친구다. 자상하신 우리 선생님, 이렇듯 랜선 제자의 제자에게까지 영상 메시지까지 띄워 주신다.

6학년 어린이가 연주했던 곡은 선생님과 제일 먼저 배웠던 의미 있는 곡이었다. 그래서 우리도 이중주로 연주하여 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선곡이라 악보가 준비되지 않아 엄청 고생했다. 겨우 노트북을 이용하여 깨알같이 엄청 작은 이중주 악보를 검색했다.

악보 넘기시면서 연주하시느라 고군분투하신 선생님! 이 와중에 스승님 소리는 완전 구름같이 폭신하고 눈길처럼 차분하며 맑고 순수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단어로도 부족하다.

선생님의 소리는 이 세상 소리가 아닌 어나더 월드, 어나더 레벨이다. 연주를 하시는 손가락은 여유로우며 힘이 빠져있다. 아주 우아한 몸짓이다. 반면 나의 손가락은 뻣뻣한 막대기다.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리코더를 입에 문 입술! 선생님의 취구는 입술로 살포시 덮여 있다. 가끔은 입술이 악기에서 떼어질 정도로 힘이 완전히 빠져 있다.


반면 나의 모습을 보라! 앙다문 입술은 그야말로 초특급 긴장상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그 누구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나면 이렇게 될 거다. 온몸이 굳어버린다. 최애 연예인 앞에서는 제대로 숨 쉬기도 어려운데 실수를 안 하고 연주하는 건 사실 큰 도전 과제이다.

선생님께서는 나의 목관악기 1호와 2호 상태도 점검해 주시고, 선생님의 악기도 불어 보게 해 주셨다. 이런 영광스러운 순간이 있다니! 선생님 악기는 생각보다 울림이 너무 많아 호흡이 더 필요했다. 느린 곡을 연주할 때 더 유리한 악기라고 하셨는데 진짜 소리가 맑고 고왔다. 역시 악기 욕심은 사도 사도 끝이 없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대면 레슨 시간이 쏜살과 같이 지나갔다. 레슨을 마치면서 선생님이 무척 민망하시고 당황하실 것을 알면서도 나의 무한한 존경심과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성공한 덕후예요. 저의 최애 연예인을 이렇게 직접 만났잖아요. 컴퓨터 화면으로만 뵙다가 실제로 연주를 들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지금까지 음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리코더가 얼마나 예쁘고 멋있고 가치 있는 귀한 악기인지 알려주셨어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연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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