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밍쥐 심리로 바라본 군중 속 인간의 선택

우리는 왜 다들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by 심리한스푼


레밍쥐 심리로 바라본 군중 속 인간의 선택

왜 우리는 다수가 가는 길을 선택하는가

1. 철학자가 된 쥐

노르웨이에는 레밍이라는 작은 설치류가 있다.


다운로드.jpg 분노조절 장애로 쥐로도 유명하다.


이 레밍은 오랫동안 ‘집단 자살하는 쥐’로 유명했다. 무리가 이동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관찰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고 묘한 질문을 던졌다.


“설마, 삶의 허무를 깨닫고 뛰어내린 건가?”


자살은 고등 사고를 전제한다.

스스로의 삶을 인식하고,

그 의미를 판단하고,

결단하는 행위다.


그렇다면 레밍은 철학자였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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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따라간다는 것의 심리

생물학자들의 관찰에 따르면,

이 현상은 ‘주체적 죽음의 선택’이 아니라

집단 이동 과정에서의 사고에 가깝다.


개체 수가 급증하면 먹이를 찾아 대규모 이동을 하고,

그 과정에서 앞 무리를 따라가다

지형을 인지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요컨대, 그들은 죽으려 한 것이 아니라
그저 따라갔을 뿐이다.



3. 우리는 왜 다수가 가는 길을 택할까

이 이야기는 종종 인간 사회의 비유로 사용된다.
우리는 이 레밍을 보며 쉽게 말한다.


“멍청하네.”


하지만 조금만 멈춰 생각해 보면,

이 말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다.

우리도 늘 누군가의 등을 보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10550_17879_5235.png 나 역시 이러한 군중심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고 말할 때,
좋은 직장을 얻어야 한다고 말할 때,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을 ‘자아실현’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 내부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른 동기가 보인다.

다수가 가는 길을 따를 때 얻는 안정감.

어쩌면, 불안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자아실현이라는 껍질로 덮고 회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4. 자유는 왜 불안한가

혼자 길을 내는 것은 이상적이다. 동시에 불안하다.
이 불안은 단순히 “마음이 좀 불편하다”는 수준이 아니다.
잘못 선택하면 내 존재 전체가 흔들릴 것 같은, 실존적 위협이다.


N0rECzdESsF0iLe5-Iztjr7I9Y1jdTiOhiKYQZX7TYFgYA6sdrVklX5N4LtXyKsM8qa3sMVitWBYvpWprkPA8w.png 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에 따르면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만,

동시에 자유가 주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권위에 기대려 한다.

이는 인간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헌납하고,

일말의 근원적 안정감을 얻는 일종의 소탐대실이다.


그는 독일 지식인들이 나치 체제에 동조한 심리를 이 틀로 해석했다.


자유는 낭만적이지만,
자유는 무섭다.

그러니 우리는 묻지 않고 따라가는 편을 선택하기도 한다.
적어도 그 길에는 이미 많은 발자국이 찍혀 있으니까.



4. 자유는 왜 불안한가

나는 경쟁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치열하게 노력하는 태도를 지지한다.

나 역시 기꺼이 경쟁의 장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문제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방향을 점검하지 않는 경쟁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달리니까 달리고,
모두가 돈을 향해 가니까 따라가고,
모두가 같은 시험을 준비하니까 준비하는 것.


요즘은 AI가 세상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기준을 신화처럼 붙잡고 있지는 않은가.

수능이라는 하나의 문을 통과하면 안전하리라는 믿음,
좋은 간판이 인생의 보험이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


그 믿음이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믿음이 검토되지 않은 채 자동으로 작동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생각을 멈춘다.



6. 절벽을 보기 위해 멈추는 시간

레밍이 절벽을 인지하지 못한 것처럼.

흥미로운 점은,

레밍은 어쩌면 자신이 절벽을 향해 간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안다.
적어도, 생각할 수는 있다.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군중 속에 서 있으면서도

완전히 같은 존재는 아니게 된다.

방향을 의식하는 개체가 된다.

낭떠러지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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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질문은 피곤하다.
남들이 정해준 답을 외우는 것이 훨씬 편하다.


하지만 때로는, 잠깐 멈춰 서서
앞에 있는 등이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지형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자본주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내일도 열심히 살 것이다.


다만 그 열심이,
‘앞사람의 속도’가 아니라
‘내가 확인한 방향’을 향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혹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길에도,
아직 보지 못한 절벽이 있는 건 아닐까.



✍ 한 줄 요약.

"우리가 달리고 있는 방향은 스스로 선택한 길일까,
아니면 앞사람의 등을 따라 걷는 익숙한 발걸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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