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심리칼럼

왜 윤성빈의 말은 대중들을 긁었을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발언 뒤에 숨은 재능, 무지, 그리고 심리학적 맹점

by 심리한스푼

1. 재능과 무지 사이에서: 윤성빈 발언을 바라보며

나는 윤성빈의 유튜브 채널을 꽤 오래 지켜본 구독자다. 운동을 좋아하고 헬스 관련 채널들을 여러 개 구독하다 보니, 금메달리스트라는 그의 이력과 묵직한 운동 능력은 언제나 눈길을 끌었다. 카메라 앞에서 솔직하게 던지는 말투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종종 그의 발언은 대중의 뼈를 긁는 지점이 되곤 했다.


윤성빈 이미지


대표적인 것이 바디프로필에 대한 부정적 발언, 그리고 “30대에 돈이 왜 없어. 막 쓴 거야” “돈이 부족하면 안 쓰면 되잖아” 같은 다소 경솔한 말들이었다. 팬으로서 나는 순간순간 긁히는 기분을 느꼈지만, 그를 단순히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히려 “왜 그의 입에서는 그런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더 커졌다. 이 글은 바로 그 물음에서 출발한 나의 심리학적 탐색이다.



2. 압도적인 재능이 만든 눈금

윤성빈의 성장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보통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출발선이 보인다. 처음 스쿼트를 했을 때 기록이 150kg, 두 달 만에 체중을 15~20kg 늘린 경험. 아버지가 배구선수, 어머니도 운동을 즐겼다고 하니 선천적 요인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물론 금메달은 재능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그는 극도의 절제와 훈련을 견뎌냈고, 그 점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삶은 “성취의 단가가 낮은 세계”였다. 남들이 몇 년을 갈아 넣어야 겨우 얻는 결과를, 그는 더 짧은 시간과 에너지로 얻을 수 있었다.


몸 겁나 좋은 윤성빈 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세계를 보는 눈금, 즉 “노력의 기준선” 자체가 달라진다. 심리학적으로는 이것을 인지적 공백이라고 부른다. 지식이나 능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초심자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 흔히 “지식의 저주”라고도 하는데, 운동 엘리트의 경우에는 훨씬 더 두드러진다. 몸으로 체득한 능력은 말로 설명하거나 타인의 몸에 대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3. 바디프로필을 발언, 그리고 내 사촌형 이야기

윤성빈이 바디프로필을 폄하했던 발언은 이 눈금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나는 본다. 그의 입장에서는 바디프로필을 위해 몇 달간 운동하고 사진을 남기는 게, “그게 뭐 대단한 성취냐”라는 의문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금메달을 위해 수년간 버텨온 사람 눈에는 짧은 이벤트처럼 보였을 테니까.


바디프로필 논란의 발언


그는 바디프로필을 싫어하는 이유도 덧붙였다. 단순히 “허세 같다”는 게 아니라, 무리한 감량과 탈수 등으로 몸이 크게 상하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이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는 바디프로필을 통해 멋진 몸을 만들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 그리고 그 과정에서 흘린 노력과 절제를 다소 가볍게 여겼다. 나는 사촌형을 통해 그 노력을 직접 본 적이 있다. 형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삼시세끼를 철저히 관리했고, 퇴근 후에는 늘 운동을 했다. 주말 약속과 술자리까지 줄이며 얻어낸 사진은 단순한 ‘몸 자랑’이 아니라 인내와 자기 통제의 기록이었다. 윤성빈의 눈에는 한심해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존중받아야 할 성취였다. 같은 현상도 누구의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배웠다.


4. “30대에 돈이 왜 없어”라는 발언, 그리고 내 삶의 현실

윤성빈의 또 다른 논란은 “30대에 돈이 왜 없냐”는 발언이었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조금은 개인적으로 와닿는 게 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올해 30살이지만,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돈을 아끼려고 노력한다. 외식을 줄이고, 불필요한 지출을 통제하려고도 한다. 하지만 돈은 쉽게 모이지 않는다. 월세를 내지는 않지만, 시험 준비를 하면서 벌이가 안정적이지 않고, 사소한 지출만으로도 통장이 가볍게 줄어드는 걸 느낀다.


캥거루족 논란의 발언

이런 내 입장에서 보면, “돈이 없다는 건 막 써서 그렇다”는 말은 너무 단순하다. 분명히 절약이 필요한 부분도 있겠지만, 현실은 절약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이 많다. 집값, 물가, 불안정한 노동 환경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윤성빈이 악의적으로 말하려 한 건 아니라고 본다. 다만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현실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건 기본적 귀인 오류와 공감 격차가 동시에 작용한 사례다.


5. 선민의식일까, 아니면 맹점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고 “선민의식이 심하다”고 말한다. 나도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곧장 도덕적 결함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룰을, 다른 세계에도 그대로 적용했을 뿐이라고 본다. 문제는 그 룰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특권 맹점(privilege blindness)이라고 본다.


자신이 가진 유리한 조건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것을 모두가 가진 것처럼 일반화해버리는 것이다. 윤성빈에게는 재능과 성취가 너무 자연스러웠기에, 그 없는 세계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고통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6. 내가 바라는 변화

나는 여전히 그의 팬이다. 그의 운동 능력과 성실함을 존경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발언이 대중에게 긁히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그가 바꿀 수 있는 건 뭘까?


노력의 단위 재설정: 운동의 루틴처럼, 경제적 현실에도 노력이 닿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경험해 보는 것.

경험의 대여: 평균적인 청년의 생활비 구조를 직접 체험하거나, 하루 노동과 지출을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

재프레이밍: 바디프로필을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자기 삶을 회복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바라보는 훈련.


그가 이런 변화를 시도한다면, 대중과의 간극은 충분히 좁혀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반박시 니 말이 맞다)


7. 맺으며


부자를 진짜 부자로 만들어 주는 건 가난에 대한 무지다.


이 문장은 윤성빈의 발언에도 적용된다. 그는 운동 세계에서 압도적이었기에,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결핍과 고통을 잘 보지 못했다. 그 무지가 발언으로 드러나 대중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세계를 보는 눈금이 달랐을 뿐이다. 나 역시 팬으로서, 또 같은 시대를 사는 서른 살 청년으로서, 그의 변화 가능성을 믿는다. 언젠가 그가 다시 카메라 앞에 서서 “노력의 언어”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로 번역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나는 기꺼이 그의 영상을 반갑게 클릭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안, 진화가 남긴 생존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