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죽음,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by 별틔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상연이는 죽은 오빠 이야기를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한다. 오빠의 죽음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 그렇게라도 오빠를 살려두고 싶었던 상연의 행동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효연이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비가 연달아 내리던 연휴였다. 회색빛 하늘 아래, 바다는 비마저 삼키는 듯 고요했다. 젖은 모래사장을 아이가 무겁게 뛰고, 나는 그 곁에서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중·고등학교 친구 하나였다. 한참 애들 챙기기도 바쁜 하나가 한가하게 전화할 타이밍이 아니었다.

“효연이가...뇌사래....” 순간, 모든 소리가 멎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외동으로 외로웠던 효연이는 매일같이 나를 집으로 불렀다. 배가 아플 때까지 웃게 했던 쾌활한 친구다. 결혼 후 나는 서울에, 친구는 포항에 살아 쉽게 만나지 못했다.

올해 겨울, 내 생일에 카톡이 왔다.

“너랑 차 한 잔 한 게 언제냐. 보고 싶다 친구야..”

친구는 커피 쿠폰을 보내며 다정한 안부를 물었다. 나는 아이만 키우다 8년 만에 다시 일을 준비 중이라며, 들뜬 마음으로 내 꿈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자신은 오래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며, 조심스레 말했다.

“나 사실 하고 싶은 게 있어. 네일아트! 그런데..새롭게 배운다는 게..돈도 들고..아이도 챙겨야 하고..자신이 없다.”

“효연아, 하고 싶은 건 미루지마~우리 아직 젊잖아.”

온 힘을 다해 응원하겠다며 약속했다. 올해 지나가기 전 꼭 만나자고 인사한 뒤,

삶에 치여 사는 동안 두 계절이 지나갔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 바로 아래 부고장이 날아왔다.

2025년 10월 10일 故김효연(40세)

포항으로 달려가는 길이 유난히 더디고 아팠다. 풍경이 예뻐서..황금물결 속 바람이 시원해서..효연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 효연이가 없어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영정사진 앞에 누군가 올려놓은 효연이가 좋아하던 미키마우스, 운동화, 케이크, 맥주가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네가 왜..’만지고 싶고, 안고 싶었다.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미련에 숨이 넘어가질 않는다.

한 달 전 접촉사고가 있어, 아이를 챙기느라 작은 통증들은 그냥 넘겼다고 한다. 결국 참기 힘든 배 통증으로 병원에 갔던 친구는 혈액암이 발견되었고, 지혈이 되지 않았다. 이미 너무 늦었다. 멀쩡히 걸어 들어가 5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나둘씩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졸업하고 20년 만에 만난 친구들도 있었다. 외로움이 많았던 효연이는 본인 생일에 친구들이 많이 모여 함께 노는 걸 좋아했는데, 그 자리에 정작 효연이만 없었다. “이거 꿈이지?” 하며 울고 웃던 밤, 우리는 슬픈 동창회를 했다.

비가 멎지 않는 연휴의 끝날, 왠지 모르게 더 스산한 숲 속 작은 화장터는 우리를 한껏 움츠려 들게 했다.

“드드...드드드득..웨애애애앵..”

2시간이 지났을까. 화장이 끝나고, 유골함에 완전히 담아지지 않는 유골을 삽으로 뭉개는 소리에 이어, 분쇄기로 마지막 작업을 하는 듯했다. 투박하고 잔인한 소리에 온몸에 쥐가 나는 듯하다.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으로 무너졌다..

40년 살아온 한 사람이 가루가 되는 데.. 5일..이제 정말 이 세상에 효연이는 없다.

눈물을 얼마나 쏟았는지 마른가지가 되어버린 효연이 남편이 어렵게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효연이가 외롭게 갈까 봐 걱정했는데, 친구 분들이 멀리에서도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효연이는 제게 가장 친했던 좋은 친구였습니다.” 이를 악물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 장지로 이동하면, 저희 아들이 올 예정입니다. 아직 아홉 살입니다. 준성이에게 엄마가 하늘나라로 간 것이 무섭고 슬픔으로만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정말..힘드시겠지만..울음은 멈추고..웃어 주실 수 있을까요..이렇게..부탁드립니다..”라며 무언가를 다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효연이의 몫까지 다 할 남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아렸다. 한편으로는 저 고통 속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한 숨 한 숨 살아내려는 남편의 모습에서 아이가 아빠의 품에서..잘 클 수 있겠구나 싶어 안도감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도 그의 의지 앞에 마음을 다잡고 움직였다.

실감이 나지 않는 어린 아들은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어리광을 부린다. 튀어나온 이마, 기다란 속눈썹, 깊은 눈, 시원한 입이 똑 닮았다. “자기 기억 오래오래 하라고, 자기 보고 싶으면 준성이 보라고, 이렇게 닮은 아이를 낳았나 보다.”라며 모든 어른들은 숨죽이고 준성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아이의 손은 따듯했다. 친구와 똑 닮은 눈을 바라보며 나는 활짝 웃었다. ‘효연아, 너의 아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정말 다행이야..’

그렇게 다짐했다.

‘효연아, 내 방식으로 너의 가족을 지킬게. 너의 부모님 우리가 가끔 찾아뵙고, 너의 남편과 아이가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응원할게. 추억 속 선명한 우리를 기억할게. 고마워. 짧았던 너의 시간을 내게 나눠줘서..꿈에 한 번만 와주라. 고생했다고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편히 쉬고 있으라고 안아주게.’

이제는 알 것 같다. 드라마 ‘은중과 상연’에서 상연이가 오빠의 죽음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믿고 싶었던 마음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효연이는 마지막까지 자신보다는 엄마로서 역할을 다했다. 네일아트의 꿈은 시작하지도 못한 채 떠났다. 내가 응원하던 친구의 미래는 이제 없지만, 친구가 남기고 간 아이가 자기의 생을 찬란하게 살아가 주리다.

부고 소식을 듣고 포항으로 떠나던 아침, 잠도 덜 깬 상태로 나의 아이가 나를 더듬더듬 찾는다. 그러고는 꼬..옥 안아주며 말해주었다. “엄마, 엄마 친구한테 작별인사 잘하고 와요..”그러고 아이는 눈물을 몰래 닦았다. 나 또한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린 채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한참을 있었다. 엄마가 된 나는 내 눈앞에 가루가 되어버린 친구의 죽음이, 몇 배로 무겁다. 내 아이를 내 남편을 내 가족들을, 만질 수 있고, 웃을 수 있는 오늘이 마지막 하루가 될 수도 있다.

하늘로 떠나기 전 네게 시간이 조금 주어졌다면, 넌 뭘 하고 싶었을까.

한 번이라도 눈에 더 담고 싶었겠지.

한 번 더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했을 거야.

그리고 생각나는 친구는 바로바로 다정한 안부를 물어 주었을 거야.

그래서 이제 나는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했다.

나의 사랑을. 나의 오늘을.


너의 짧은 시간을 내게도 나눠주어 고마웠어
작가의 이전글세 자아의 두발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