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이력서

by 별틔


공연이 끝나고 조명이 꺼진다. 그동안 준비한 무대 의상이며 각종 소품들이 창고에 차곡 차곡 정리된다. 그리고 철문이 닫힌다. ‘쾅’. 7년 만이다. 임신 전까지의 기록이 담긴 USB를 열어야 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은 나의 과거가 담긴 곳이다.

심리상담사라는 나의 일을 좋아했다. 함께 성장하는 일에 사명감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아이를 출산하고 금방 일을 시작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6개월쯤 선배의 연락으로 집단상담을 하러 나갔다. 일하는 곳이 현실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아이가 있는 집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외출하는 기분에 신이 났다. 그날 밤부터 아이의 고열이 떨어지지 않았고, 대형 병원에서는 가와사키 병,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이라고 했다. 치료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관상 동맥이 늘어나 급사까지 할 수 있는 병이다. 다행히 심장에 무리 없이 완치되어 잘 크고 있으며, 어느새 내년엔 초등학생이 된다. 그렇게 나는 7년 동안 가정주부로 경력단절이라는 철문을 닫고 살았다.

“선생님의 이력을 보고 싶어요. 이력서 한번 보내주시겠어요?” 미술심리상담 강사님의 요청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바빠진다는 말에 뭐라도 들어야 하나 싶어 시작한 교육이었다. “이..력서요..?아, 네......”자신이 없었다. 7년 동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요청을 듣고도 바로 USB를 열 수 없었다. 저 깊은 서랍 어딘가에 있는 과거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예전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형편없진 않았을까. 지금처럼.’

‘선생님 이 곡들은요 멜로디도 좋고 가사도! 좋은 곡이라서 추천드려요 ㅎㅎ’ USB속 메모장에 적혀있는 편지글과 몇 곡의 노래들이었다. 대학교에서 상담할 때, 내담자 중 한 명이었던 학생이 상담 종결할 때 선물 한 곡들이었다. 노래를 재생하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늘에서, 나는 끝없는 비아래 서 있어. 나는 회색 속에 숨어 있는 은빛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비록 휩쓸릴 수 있지만, 나는 항상 다시 일어날 거야(david archuleta 의 the other side of down곡 중)’

노래를 들으며 조심스럽게 열어본 이력서는 나의 노력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끔 과거의 내가 쓴 일기가 낯 설 때가 있는 것처럼, 지금의 나와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마치 타인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나였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 가정주부의 세계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순위에서 나 자신은 밀려났기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사치였다. 이력서 속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편지를 남긴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지쳐 있더라도, 잊지 마, 넌 너의 인생을 책임감 있게 잘 살아냈고, 넌 그런 사람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과거의 내가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무기력한 나를 일으켰다.

‘선생님, 이력서 잘 받았습니다. 제가 느낀 바대로 상담이력이 훌륭하시더군요! 많은 경력임에도 지속적으로 다음을 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기존 경력에 미술치료를 접목하셔서 상담에 많은 도움 되시길 바라며, 제가 이제 오픈을 하여 아직 정상화가 되어 있지 않지만 좋으신 선생님을 기회가 되면 꼭 모시겠습니다.’ 미술상담 강사님의 답장이 왔다.

내 삶에는 많은 인연이 스쳐갔고, 성장도 있었으며, 괜찮은 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서랍 구석에 처박고, 부족하고 못난 모습에만 집중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내담자가 힘들었던 시절, 내가 큰 도움이 되었다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준 노래와 메모. 이제 그 힘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마주하기 두려웠던 과거의 내가 힘이 되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결국 나를 일으키는 건 나다.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싶어졌다.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힘이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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