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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Nov 11. 2016

인도여행 중 세 남자가 초대한 저녁 만찬

인도 델리 Delhi 편

여행 목적  : 30대 초반 한참 방황하던 때 무작정 인도를 갔다가 내 삶의 고민 자체가 '사치'라는 엄청난 사실과 함께 내 모든 세포를 정신 차리게 해 준 고마운 나라에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앞으로 삽화 또는 간단한 그림과 함께 올리고자 합니다 (당시에 찍은 사진이 없어서 ㅠㅠㅠ)

작성 이유 : 여행자로 인도에서 반년 정도 살면서 느낀 인도 문화를 공유하고자... (인도 문화 엿보기 2탄)




평소에 한 동네에 살면서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러 시장이나 시내를 나갈 때 동행해주던 고마운 인디언 친구들이 있어 한 번쯤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사실 인도에 살면서 아쉬운 점 가운데 절실히 피부에 와 닿는 것 중 하나가 혼자 조용히 어디 들어가 음악을 듣거나 차 한잔, 커피 한잔 마실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연인들이 만나 데이트를 할 때도 주로 집 주변에 있는 이런저런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마실 것이나 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서 공원으로 들어간다. 


서민들이 주로 모여 사는 이런 주택가에선 더욱더 그런 장소를 기대할 수가 없다. 어쩜 동네에 분위기 좋은 카페 하나 커피 전문점 하나가 없는지.... 그들은 그냥 거리에 서서 잠깐 차 한잔을 마시고 가거나 자판기 커피를 사서 마실 뿐이다.  


저녁 약속은 했지만 오늘 밤 과연 어디로 갈지 기대가 된다. 네온사인 번쩍이는 시내는 나가야겠지?


"일찍 나왔네요? 다른 친구들은요?"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니 내가 저녁 한번 거하게 쏘겠다고 했는데 집에서 왜 기다려? 오늘 밤엔 멀리 네온사인 번쩍이는 시내로 나가서 분위기 살리며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역시 인도는 인도다.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며 깨어진 기대감에 웃음이 나온다. 그래 인도니까 집에서 조용히!


그 친구는 세 명의 동네 친구들과 같이 살고 있다. 델리에서 기차로 15시간 가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 더 시골길을 달려가야 하는 동네에 사는 친구들이다. 모두가 이 먼 대도시로 공부하러 또는 돈을 벌러 온 것이다. 


평소에 인도 남자들은 어떻게 하고 사는지 궁금했지만 막상 방에 들어서려니 떨린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남자들의 자취방인데 도저히 세 명이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시원하게 탁 트인 방이다. 한마디로 방에 거의 짐이라곤 안 보인다.


"진짜 세명이 사는 거 맞아요? 아니 방에 짐이 너무 없잖아요"

"사는데 짐이 많이 필요한가요? 그래도 각자 있을 건 다 있어요"


덮는 이불도 없이 차가운 바닥에 깔린 담요 두장이 전부다. 벽에도 달력이나 시계 하나 걸려있지 않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일체의 전자제품이 하나도 없다. 이런 방에서 세 명의 남자가 긴긴 인도의 밤을 어떻게 지낼까? 더욱 더 궁금해진다. 거울은 말할 것도 없고 못하나 박혀 있지 않은 아주 깨끗한 벽에 잠시 아찔하다.


"어~ 오셨네요. 환영합니다" 


부엌에서 나오며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한다.


"인도 음식 뭐 먹고 싶어요?" 

"글쎄요, 전 인도음식은 다 좋아해요, 특히 고기 요리요" 

"그래요?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30여분이 지나자 시장 간 두 남자가 들어온다. 두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보니 씨~익 웃음이 나온다. 과연 어떤 찬 거리를 사 가지고 왔을까?


인도에서는 음식 재료를 집에 저장해 두고 먹지 않는다. 물론 냉장고를 갖춘 집이 많지도 않지만 냉장고가 있어도 야채류나 고기 등을 냉장고에 보관해서 먹지 않는다.  항상 식사 전에 신선한 야채와 막 잡은 고기를 사러 시장에 간다. 


여자들은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많은 남자들이 저녁 찬거리 봉지를 들고 아파트로 들어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필요한 만큼만 구입하고 식구끼리  한 끼 먹을 만큼만 음식을 준비한다.     


세 남자가 동시에 부엌에 들어가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과연 어떤 요리를 만들까 궁금한 마음에 부엌을 들여다본다. 세상에나~ 부엌은 또 얼마나 작은지. 세 명의 남자가 들어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치의 틈도 없다.


"들어오세요." 라며 잠시 나와서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준다.


한 명은 가스레인지 불 오른쪽에서 고기를 볶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왼쪽 불에서 짜파티(밀가루로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 둥글게 생긴 부침개)를 굽고 있다. 이 좁은 부엌에서 척척 잘도 만든다. 눈에 보이는 살림살이라곤 접시 몇 개에 냄비 한 개, 프라이팬뿐이다. 당연히 손으로 식사를 하는 그들에게 젓가락은 필요 없다.


저녁 6시부터 장을 봐서 식사를 준비했는데 8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직 부엌에 있다. 급한 마음에 (손님이라는 사실도 잊고) 냄비 뚜껑을 열어 본다.


"배고프시죠? 10분만 더 기다리세요."

"그냥 대충하고 먹어요. 배고파요"


LPG통에 가스가 넉넉하지 않은지 그 약한 불에서 고기를 익히려니 시간이 더 걸리는 모양이다. 젓가락으로 괜히 찔러보지만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사실 인도에서의 저녁식사 준비는 보통 기본 2시간은 잡아야 한다. 미리 준비된 재료가 없기 때문에 항상 시장부터 갔다 와야 하고 그리고 재료를 강하지 않은 불에서 요리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오늘의 메인 요리는 한국에서 카레라고 하는 커리(CURRY) 요리이다. 바로 닭고기를 사용했기 때문에 치킨카레가 오늘의 주요리다. 어린 남학생들이 만들어 낸 요리라고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막 잡은 닭고기가 얼마나 부드럽고 연한지 그 맛이 예술이다.


"정말 맛있다. 참 요리 잘하시네요"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진심으로 칭찬을 했는데 그냥 씩 웃는다. 이 정도 요리는 기본이라는 듯.......


나는 인도에 살면서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고기 요리를 먹는다. 물론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거의 동네 식당들을 골고루 다니면서 입맛대로 골라 사 먹고 있다. 그래도 오늘밤 이 세 명의 어린 총각들이 만든 치킨 카레는 그 어느 식당 요리보다 맛있다. 내용물이라고 해 봐야 감자 몇 개에 야채 몇 가지 썰어 넣은 것뿐인데 어쩜 이렇게 맛있을 수가!!!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이라 이 카레 국물에 마늘 넉넉히 빻아 넣고 매운 고춧가루라도 풀어 넣었더라면 얼마나 멋진 닭볶음탕이 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술 생각이 절로 나네요. 우리 딱 한잔만 해요?" 

"집에 술 없어요, 우리는 술 안 먹거든요" 


사실 인도 서민들은 대부분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다. 일단 술을 아무 데서나 쉽게 살 수가 없다. 동네마다 허가받은 주류 전문 판매점이 있어 그곳에서만 술을 살 수 있다. 문제는 주류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쉽게 말해 술 한 병 값이면 하루 밥 세끼 사 먹고도 남을 돈이다. 


(예:맥주 한 병 가게에 따라 60루피 ~100루피, 

주로 위스키나 럼을 마시는데 중간 병 사이즈가 한 병에 400루피 전후 / 당시환율 기준 1루피 = 26원)


"아니 루페스는 왜 고기 안 드세요?"  

"전 채식주의자입니다"

"근데 요리는 하셨잖아요?"    

"모든 고기 요리를 할 수 있어요, 단지 안 먹을 뿐이죠"


고기 요리를 다 만들 순 있지만 먹지는 않는다? 참 대단한 학생이다. 초대 손님을 위한 고기 요리에 실력은 발휘했지만 정말 자신은 입에도 안 대고 있다.  


"아니 그럼 뭐 드실 건데요?"  

"버섯요리 따로 만들었어요. 한번 드셔 보실래요?" 접시를 보니 버섯요리에 짜파티 몇 장이 올려져 있다.


"어머나~ 그게 다예요?"

"괜찮아요. 버섯요리에도 고기 만한 충분한 영양의 단백질이 들어 있으니까요"


완벽한 채식주의자인 그가 직접 만든 오늘의 야채샐러드는 과연 어떨까? 확실히 선수(?)가 만든 건 다르다. 보통 샐러드라고 하면 각종 야채에 샐러드용 소스를 버무려 먹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먼저 양배추를 잘게 썰어 접시에 푸짐하게 깔고 붉은 토마토를 둥근 모양으로 예쁘게 잘라 그 위에 얹는다. 그리고 양파 몇 개를 모양을 맞추기라도 하듯 똑같이 둥글게 잘라 얹고 '고소'라고 부르는 미나리처럼 생긴 야채를 다듬어 손으로 몇 뿌리 찢어 얹었다. 


사용한 야채는 네 가지뿐. 그러나 소스가 인스턴트로 판매되는 각종 드레싱이나 마요네즈 소스로 버무리는 게 아니라 그는 자신만의 소스를 만들어 낸다. 까만 후추 열매 몇 개를 비벼 부드럽게 빻더니 숙련된 솜씨로 야채 위에 뿌린다. 


그리고 가게에서 사 온 커드(응고시킨 우유)를 풀어 야채 위에 붇고 숟가락으로 살짝 섞는다. 마지막으로 레몬 하나를 잘라 가볍게 뿌리며 약간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아~ 종류도 많지 않은 이 시원찮은(?) 야채샐러드가 어쩜 이렇게 맛있니?


세 남자가 좁은 부엌에서 2시간 가까이 준비한 오늘의 저녁 요리는 바로 야채샐러드 치킨카레짜파티 몇 장! 밥상도 없는 싸늘한 방바닥에 앉아 손으로 집어 뜯어먹으면서도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던지...


그 어떤 호텔 만찬이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보다 훨씬 더 맛있고 멋진 저녁 만찬이다. 


그래도 마음 한 곳에선 술 생각이 절로....

아~ 지금 이 살찐 닭다리에 딱 한 잔만 할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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