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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May 25. 2016

작은 보트에서 더 큰 감동을 만나다
빙하 피요르드 여행

북유럽 노르웨이 Ålesund 

여행 제목 : 노르웨이의 항구도시에서 무한한 대자연의 피요르드를 만나다 in Ålesund

여행시기 : 8월 중순 (북유럽의 여행시즌은 6월~8월이며 그 외는 대부분 Closed)





“친구는 내가 happy 하다고 생각하니?”  

“아니”  

“그치, 나 아니지?”  

“그냥 happy 한 게 아니라 very happy 한 거지”    



그렇다. 오랫동안 옆에서 나를 지켜본 그 친구는 유럽에 살고 있는 자기보다 더 많이 유럽 구석구석을 다니고 있는 날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다. 내심 속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나는 여행에 있어서 만큼은 친구들한테 부러움의 대상이었나 보다. 물론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해서 꼭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이 주는 무게감에 나 자신도 점점 버거워하고 있었는지도. 그러다 보니 당연히 그 좋다는 ‘여행’을 하면서도 정말 무엇이 행복이고 무엇이 즐거움인지조차 모른 채 그렇게 습관처럼 이동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 북쪽 항구도시까지 또 찾아왔는가?    



“제가 타야 할 피요르드 크루즈는 어디에 있나요?”  

“티켓 확인 좀 하겠습니다. 아~ 이쪽으로 오세요, 이 배입니다”    


이렇게 큰 배를 타야 하는데 시즌 마지막 날이라 작은 보트로 피요르드를 감상하다


엥~ 무슨 태국 파타야에 있는 스피드보트도 아니고 이렇게 작은 배로 그 엄청난 대자연의 피요르드를 관광한다고? 항구가 작아서 배도 작나? 몇 명 되지도 않는 관광객을 태운 배는 마치 무슨 통통배인지 쾌속정인지 구분도 안 된다. 이럴 수가~시작부터 썩 기분이 좋지 않다. 이 표가 얼마 짜린데 이런 배로 투어를 하다니? 배가 항구를 출발하고 십 여분이 지나자 검은 머리의 젊은 청년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포장된 초콜릿 바구니를 돌리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나 그의 귀여운 미소에도 흠칫 경계심을 두는 이유는 비싼 배값을 내고 작은 배에 앉아 있으려니 왠지 사기를 당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 배가 아닌데 오늘이 피요르드 투어가 있는 마지막 날이다 보니 예약자가 많지 않아서 저희 회사 배로 손님들을 대신 모시게 되었습니다”    


눈치라고 챈 것일까? 이쁜 초콜릿 상자와 함께 갑판 위로 올라온 그의 달콤한 영어에 나도 모르게 아하~ 단순한 것이 여자라고 했던가! 그의 선제공격(?)에 배에 대한 컴플레인을 모두 거두고 미소로 화답했다.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달콤한 초콜릿을 몇 개 집어 들고 환하게 웃으니 역시 센스 있게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내 카메라를 챙긴다. 배를 타기 전 기분과 배를 타고난 뒤의 기분이 이렇게 다를 수가! 이건 분명 그가 내민 초콜릿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렇지 감히 피요르드의 나라 노르웨이에서 이런(?) 쪼그마한 배로 어찌 감히 대자연의 피요르드를 감상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여행에 대한 모독이지. 그래 오늘이 마지막 날인지도 모르고 계획 없이 도착한 내가 잘못이지 이 배가 무슨 죄야~     


보트를 타고 달리면서 보는 피요르드 풍경

‘와~    

이건 완전히 나를 위해 준비한 전세 요트가 아니던가! 차와 음료가 구비된 작은 보트는 연인끼리 뱃놀이 나가는 요트처럼 – 돛대만 없지 내부구조로 보나 앙증맞은 테이블로 보나 딱 가족용 또는 커플용 뱃놀이 감이다- 호수같이 잔잔한 물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나의 전용 쾌속정(?)은 몰디브에서 즐기는 요트 같기도 하고 파타야 해변을 질주하는 스피드보트 같기도 하다. 달려가는 스피드보다 더 강한 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우와~ 바람의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8월의 바람이라 그런지 그렇게 차지는 않다. 다만, 북쪽이라 더 낮게 보이는 하늘에서 바로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덕분에 선글라스를 껴도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나름대로 헤어스타일에 신경 쓰느라 날리는 머리를 스카프로 매어 보지만 바람이 얼마나 센지 스카프가 채 5분도 안되어 금방 흘러내린다.     



‘이게 바다야 호수야?’ 겨울에 이 물마저 얼면 우짜노?’    


바람의 스피드에 익숙해지자 그새 딴생각이 난다. 

잠시 노르웨이 피요르드가 아닌 어느 한적한 모래 해변에서 뱃놀이를 하는 내가 보인다. 

    


친구는 그냥 행복한 게 아니라 아주 행복한 사람이야”    


그녀의 한마디가 바람에 실려 또다시 뇌리를 때린다. 그래 이게 큰 배인지 작은 배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가장 자유로운 영혼으로 웅장한 대 자연 앞에 선 나는 충분히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니 정말 난 행복하다. 항상 남들보다 부족하고 남들보다 외롭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보는 나는 남들보다 강하고 남들보다 씩씩한 행복한 여행자일 뿐이다. 나도 나를 모르고 길(road)을 떠나는데 친구가 나를 알게 길(way)을 보여준다. 산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지만 물은 많은 생각을 잠재운다. 이렇게 멋진 여행을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무한한 행복감이 가슴속으로부터 올라온다. 그리고 어리석게 행동했던 많은 영상들이 물살에 젖어 하나 둘 잠기어 간다. 순간 바다도 산도 나도 모두 하나가 된다. 사람은 그렇게 언제 어디에서나 이 세상에서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을~ 아니 그렇게 되어야 하는 것을! 그래 아주 잘 떠난 거야~정말 난 잘하고 있는 거야. 검고 푸른 바다에 검은 머리 날리며 피요르드 앞에 선 초라한 객에게 여행에 대한 긍정의 힘이 물살을 튀기며 마구 수면 위로 올라온다.     



일할 때는 한치의 오차도 그리고 후회하지도 않을 만큼 일을 한다.  

여행할 때는 미련도 욕심도 아쉬움도 없을 만큼 충분히 즐긴다.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도 일할 때만큼은 한 순간의 긴장도 놓치지 않는다.   

길 위에 서면 아무리 돌아다녀도 정신을 놓거나 긴장을 하지 않는다.     


보트를 타고 가면서 만나는 피요르드 지형안에 있는 작은 마을들


이성과 감성의 완벽한 간극을 경험하는 여행길에서는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많은 고뇌들을 풀어놓는다. 그러나 오늘 내가 이 대자연 앞에서 긴장을 하는지 정신을 놓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작은 배에서 만난 큰 감동으로 지금 나는 흥분된 함성을 지르고 있다. 개인적으로 배 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니 솔직히 말해 물 위에 떠 있는 그 자체를 좋아한다. 유람여행의 장점이라면 이동하는 방향이 일정하고 속도가 동일한데다 시야마저 확 트여 있어 시선만 상하좌우로 잘 돌려도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다. 물론 가끔 필 꽂히는 프레임이 보일 때는 카메라 셔트만 살짝 눌러주면 완벽한 엽서 한 장이 만들어지니 이 얼마나 환상적인 여행인가. 갑자기 이곳까지 오기 위해 지난밤 스웨덴 북쪽에서부터 24시간 기차를 타고 달려온 모든 노고가 한꺼번에 보상되는 것 같다. 



솔직히 북유럽 여행 중에 이렇게 기차를 무식하게 탈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어제 밤 야간열차로 스웨덴 보덴에서 밤 10시 넘어서 출발해서 노르웨이 올레스운트에 도착한 시간이 밤 10시 20분. 즉, 24시간 넘게 6개의 도시를 승하차하면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정말 기차로 산 넘고 물 건너 이 바다까지 온 이유가 나도 궁금했다. 그러나 길에는 이정표만 있을 뿐 나그네의 영상은 담아져 있지 않으니 무조건 달릴 수밖에. 사실 어제 도착했어도 이 스피드 보트의 질주를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요, 내일 도착했어도 이 작은 배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길에서의 추억도 나그네의 걸음에도 다 인연이 있는 게다.    


“여기가 처음인데 구경할 만한데 추천 좀 해 주세요?"


"항구가 보이는 근사한 시푸드 레스토랑도 좋고 배 타고 돌아볼만한 유람선도 좋아요”    


일요일인데도 문이 열린 관광안내소가 왠지 낯설다. 북유럽 최대 선진국이라는 노르웨이에서 일요일에 쉬지도 않고 일은 시키다니? 정말 이건 뜻밖의 광경이다. 그랬다. 오늘이 피요르드 관광 마지막이라 직원들이 비상근무를 하는 것이었다.    



“뭐라고요, 오늘이 유람선 마지막 날이라고요”  

“원데이 정규코스는 이미 오전에 끝났고 현재 남은 건 오후 4시 단기코스뿐입니다”    



새우잠을 설쳐가며 꼬빡 24시간을 달려 노르웨이 서해안 끄트머리까지 달려온 결과는 역시 ‘피요르드’를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여행자였던 것이었다. 이렇게 예정(?)된 마지막 배를 예약하고 보니 오늘 아침 숙소에서 인터넷을 하면서 보낸 시간이 억울해진다. 일단 마지막 배를 잡기 위해 계산부터 하고 예약된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내년을 기약할게 아니라 오늘을 잡는 것이다. 아침에 이미 체크아웃을 해서 짐보따리까지 다 뺐는데 이런 체크인을 또 해야 하는군.     



저녁 9시가 되어가는데도 아직 어둡지 않은 도시는 또 다른 이브닝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해진다. 피요르드에서 돌아온 보트가 사람들을 내려놓자마자 항구는 아직 저녁 분위기 조차 안 날 정도로 아직은 환하다. 가이드가 항구의 끝자락에서 보는 일몰이 ‘올레스운트’에서는 제일 아름답다고 하는데도 일몰보다는 슬슬 술 생각이 난다. 여행이란 자고로 보기 위해 움직이기도 하지만 먹고 마시기 위해 떠날 수도 있음을 나는 안다. 이미 나는 피요르드와 함께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담았으니 더 멋진 풍경으로 내 필름을 엉키게 하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소화해 내지 못할 음식물이면 처음부터 삼키지를 말자. 




항구에서 바라보는 일몰

다행히 작은 배로 돌아본 장관의 피요르드였기에 더욱 감동은 크게 오버랩된다. 오늘 내가 이 도시의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일몰을 보지 않아도 나는 이 도시의 라스트를 기억할 것이다. 항구가 보이는 멋진 레스토랑을 찾아 2층 창가로 갔다. 검푸른 바다의 물결과 하늘 아래 멋진 피요르드 계곡에 남은 하얀 잔설까지 모두 원샷에 담아서 쫘악~ 생맥주를 들이켰다. 아~ 바로 이 맛이야! 가격을 생각지 않고 주문한 양고기 요리는 메뉴에 적힌 숫자만큼이나 그 맛도 일품이다. 


아름다운 항구의 이브닝을 만끽하기 위해 하나 둘 바닷가 쪽으로 사람이 모여든다. 그러나 나는 창가에 앉아 선홍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대신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고 맥주를 마실 수 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광고 카피처럼 과감히 현실을 일탈할 수 있는 용기가 나한테는 있었고 떠난 뒤에 밀려오는 회한에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의 공간을 그리워할 만큼 삶에 대한 애정도 남아있다. 여행을 통한 재충전은 언제나 필요하지만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헝클어진 세상 속으로 나 자신을 내버려 둘 수 있을 것 같다. 아~ 나는 행복하여라~ ‘올레스운트’의 아름다운 일몰보다 더 ~     




(캐런이 남긴 여행정보) 

(1) 피요르드 크루즈 코스 : 올레스운트 배로 45분 항해 ---> 선착장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3분 이동 후 고성 호텔에서의 티타임 --> 버스로 이동하면서 피요르드 계곡 감상 2시간 --> 버스가 배에 실려 15분 이동 --> 버스 타고 약 40분 이동 후 다시 배 타고 약 30분 이동~ 올레스운트 도착 (코스는 약 5시간 소요)  

(2) 추천 여행시기 : 매년 여름 6월 중순~8월 중순까지 여름 시즌에만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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