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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Oct 30. 2017

유럽 최대 레게 축제장에서 보낸 하루

바이에른 우버제 에피소드

축제시기 : 매년 8월 

찾아가기 : 뮌헨에서 기차를 타면 약 1시간 30분 소요     



   



질퍽이는  진흙에 몸을 비벼가며 웃고 장난치고, 비틀거리듯 흔들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취한 듯 갈지자로 걸으며 요란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축제는 마치 자신의 전부를 여기에 맡긴 채 즐기려는 사람들로 입구부터 흥분상태다. 배고프면 텐트에서 대충 먹고 갈증 나면 맥주를 마구 마시고 비 오면 젖고 젖으면 씻고 씻으면서 웃고 웃으면서 행복하다. 


매년 여름 우버제에서 열리는 유럽 최대의 ‘우버제 레게 축제’ 현장에 도착했다. 킴 제 호수가의 조용한 분위기와 달리 침지에서 고작 기차로 15분 거리인 우버제는 매년 8월 한여름이면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레게 축제로 흥분의 도가니요 젊음의 용광로이다. 


축제장의 메인 무대로 가려면 입구에서 팔찌를 확인한다


며칠 동안 플랫폼을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삼삼오오 아이들의 정체를 안 것은 며칠이었다. 심상치 않은 헤어 스타일과 섹시한 옷차림새가 아무리 봐도 뭔가 일이 일어날 것 같은데 그냥 유럽 아이돌이라 방학이고 여름이고 캠핑을 가나보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나 알고 보니 단순한 피크닉이 아니라 바로 레게 축제장에 자리를 잡기 위해 한 달 전부터 대규모 이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매년 여름에 축제를 하지만 근래 들어 축제기간에 꼭 비가 내려서 더욱더 열기가 축축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레게 마니아들로 이미 우버 제행 기차는 거의 만석 상태이다. 물론 나야 레게음악은 잘 모르지만 음악 축제라고 하니 무슨 기록할만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호기심의 발로에서 시작된 걸음이다. 



비가 오면 쌀쌀한 알프스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라의 차림으로 놀고 있다. 비키니는 비키니대로 코트는 코트대로 빗속에 엉킨 바닥의 진흙을 바르며 들리는 사운드 따라 흥얼흥얼 마음을 띄우며 어울리고 있다. 길거리로 나오지 못한 친구들은 비를 피해 텐트 속에서 병맥주를 마시며 같이 흥분하고 있다. 비록 비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정신없이 내리고 있지만 젊은 열기를 막지는 못한다. 그러나 축제의 열기를 충분히 즐기기엔 날씨가 좋지 않다. 사운드가 아무리 크게 축제장 전체에 울려 퍼져도 빗속에 범벅이 된 축제장은 이미 혼란의 상태다.


비가 오니 축제장은 텐트촌이 된다


쌀쌀한 빗방울에 옷깃을 여미며 강바람을 막아 보지만 축제에 빠지진 못한 객은 노을을 등지며 강 쪽으로 걸어간다. 축제의 평균 연령은 적어도 15세? 대부분이 틴에이저들이며 대충 봐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인다. 우리야 제대로 된 축제를 대학교에 가서야 경험하지만 여기는 부모님과 같이 온 초등학생들도 있을 만큼 이미 세계적인 음악축제로 명성을 날리고 있단다.  


올해 축제기간에는 단 하루 빼고 계속 비가 내렸다고 하니 지난밤부터 내린 비로 비포장 도로가 많은 축제장은 이미 질퍽해져 신발과 바짓가랑이가 엉망이 된다. 일단 오늘 같은 날은 깔끔 뜨는 걸 포기해야 한다. 공연장 중앙 무대를 주변으로 빼꼭히 들어선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의 텐트가 놀라울 따름이다. 가만히 보니 형형색색 펼쳐놓은 텐트는 축제와 관련된 세트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3박 4일의 축제를 즐기기 위한 숙식장소인 것이다. 



군데군데 일정한 간격으로 들어선 공중화장실로는 도저히 이 많은 방문객들의 배설을 시원하게 소화할 것 같지도 않다. 축제장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우버제 마을의 논밭에 텐트와 함께 무대 설치를 시작한 것이니 볼일 보는 곳이 바로 야외 화장실이라고 해도 좋겠다. 


멀리 급한 남학생들이 울타리처럼 보이는 그물 쪽으로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각자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고 있는 그들을 똑바로 보고 있는 내가 오히려 당황스럽다. 뽀얀 분홍색 속살을 그대로 내보이며 자연스럽게 물줄기를 뽑아내는 모습이 그저 귀엽기만 하다. 취기가 있어서인지 다들 자기 할 일(?)만 할 뿐 전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눈치 볼 여력도 없거니와 눈치 볼 필요도 없는 자유 세상 아니겠는가. 역시 축제장의 꽃은 맥주가 아니던가.  이미 꽃밭에 젖어 정신없이 놀고 있으니 꿀 따러 온 나비가 다른데 관심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텐트촌을 지나 강둑에 올라서면 여름 내내 자주 내린 비로 강물은 푸른색을 잃고 흙탕물이 되어 거센 물살로 흐르고 있다. 작년 이맘때 같으면 저 푸른 물에 아이들이 멱을 감으며 물장구치고 놀텐데...... 올해 날씨는 수영복은 고사하고 선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날씨가 안 좋다. 



“다시는 우버제 안 올 거예요” 

“과테말라에서 어제 도착했는데 계속 비만 내리고 너무 짜증 나요”


남자 친구와 남미에서 같이 레게 축제에 놀러 왔다는 여대생의 표정에는 이미 잔뜩 화가 나있다. 도착하자마자 비가 와서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억울해서 2박을 텐트에서 추위에 떨며 보냈단다. 이미 여자 친구의 짜증을 받아주고 있었던 남자 친구는 친구의 불만에 그냥 옆에서 웃기만 한다. 날씨도 날씨거니와 프로그램에 나와있는 레게 가수들도 많이 불참했다는 데 더 화가 난다고 한다. 긴 비행의 여독을 채 잊기도 전에 축제의 흥분이 아닌 기분부터 상했다는 그들은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바지에 묻은 진흙을 털어낸다.


유럽 최대의 레게 축제는 매년 여름 독일 우버제에서만 하는 것으로 유럽 도시를 순회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미 이 시기에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일정을 넣고 있는 추세이다.


과테말라 친구들처럼 유럽까지 단지 3박의 축제를 위해 달려오는 마니아들이 매년 증가한다고 하니 우버제의 명성을 점점 커 가겠지만 이 도시는 단 3일 외는 너무나 한적한 독일의 전형적인 시골마을 그대로이다. 오히려 옆에 있는 침지가 더 휴식하고 놀기에는 좋은 동네이지만 이 동네에선 오히려 이렇게 요란한 올나이트 축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다양한 독일 그대로 
화끈한 독일 그대로 
멋있는 독일 그대로


축제도 몸도 마음도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축제의 열기를 기차역 플랫폼은 진흙의 두께로 말해준다. 


얼마나 많은 참가자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고 축제장에서 비비고 다녔는지 플랫폼 여기저기 진흙으로 엉망진창이다. 축제가 끝나고 청소하기가 쉽지 않겠다. 조용한 것을 은근히 생활처럼 습관 된 시골마을에 일 년에 단 3박을 이런 흥분의 도가니로 24시간 보낸다는 게 이 마을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알프스의 작은 마을은 축제기간에만 논밭이 임시 무대로 바뀐다


“우리 딸은 절대 도시로 이사 가자고 해도 안 간대요,

그 비싼 축제 티켓을 안 사도 매년 공짜로 오리지널 레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나? 하하하”


20년 이상 이 마을에 살면서 1시간 10분씩 매일 아침 시내까지 기차로 출퇴근하는 아빠의 심정은 그저 가족들이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그냥 이곳에 살고 이곳에 머물 거란다.


도시에서의 문화생활을 따지지 않고

도시에서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잊고


가족들과 조용한 마을에서 오순도순 사는 것이 곧 아이들의 행복이요 가족의 기쁨이라는 그의 한마디에 가슴에 찡 남는다. 



이 마을이 살아가는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박한 행복마인드에 잠시 고개를 숙이며..... 어두운 빛을 뚫고 시내로 들어가는 기차 소리에 잠시 정신을 놓는다.






<레게음악이란?>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에서 발전한 음악 장르로서, 레게는  '현재 유행하는'이란 뜻을 가진 자메이카식 영어에서 따온 말이다. 1960년대 후반 스카와 록스 테디에서 발전한 레게는 아프리카 음악과 캐리비안 음악,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9년에서 1961년 사이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스카는 자메이카의 전통음악인 멘토를 기반으로 발전한 음악 장르였다. 1960년대 중반 자메이카 음악가들은 스카를 좀 더 느리게 연주하면서 오프 비트를 가미했고 알톤 엘리스는 이 음악을 자신의 음반에서 록스 테디라고 불렀다. 1960년대 말이 되자, 음악가들은 리듬을 보다 느리게 하고 다른 여러 가지 효과를 가미하여 레게를 만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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