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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캐런 Oct 31. 2017

독일의 파리 음악의 도시 라이프치히를 기억하다

슈만 박물관 방문 후기



이런, 도착한다고 도착한 것이 마침 월요일이다......


유럽에서의 월요일은 여행자들에게는 아주 한가한 날이다. 대부분의 뮤지엄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문닫힌 슈만 박물관 앞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문 닫는 날인 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뮤지엄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앞에서 가이드를 기다리면서 박물관 내 정원을 둘러보니 마치 애들 놀이터처럼 꾸며져 있다.


여기 박물관 맞아? 웬 애들 놀이터 같은?


지난밤은 아주 푹신한 침대에서 잘 잤기 때문일까? 날이 쌀쌀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컨디션이 아주 좋다. 잠자리만 완벽했던 것이 아니라 슈만의 박물관은 공식적으로 closed 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현지 관광청의 도움으로 오늘 하루 특별히 허락을 받아 이렇게 박물관을 전세내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덤으로 멋쟁이 가이드의 안내까지 받으며 음악가 슈만과 클라라 부부가 8명의 아이를 키우며 실제로 살았던 집, 아니 지금은 슈만의 음악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계단을 보기 위해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음악소리와 아이들의 요란스러운 소리에 정말 어디 근처에 애들 유치원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냥 일반 유치원이 아니라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택된 아이들이 특별한 음악 교육을 받고 있는 음악학교 같은 곳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따르면, 자장가 음악으로 대표되는 낭만파 음악가인 슈만이 아이들을 그렇게 좋아해서 이렇게 그가 살고 있는 집이 지금은 자라나는 음악 꿈나무를 가르치는 음악아카데미이자 현재는 슈만의 뮤지엄으로 복원해서 운영 중이란다. 역시 멋진 마인드를 가진 독일 사람들!


어쩐지 정원으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어린이집 같은 분위기가 왠지 음악가를 위한 고전적인 형태의 박물관 같지는 않더라고.



‘슈만이 무슨 음악으로 유명해요?’


아이폰을 로밍해서 온 일행이 바로 검색해서 슈만의 음악을 내 귀에 들려준다

우와


근데 이 음악이 슈만 건지 누구의 음악인지 나 같은 클래식 문외한이 어찌 알겠니! 여행이란 자고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여기 라이프치히까지 와서야 알게 된 슈만의 음악!


딩딩 땅땅 띠리띠리


슈만이 직접 사용한 피아노가 전시되어 있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리는가 싶더니 사람의 노랫소리가 중간중간에 들리기도 한다. 공연 중인지 수업 중인지 판단이 안 서는 가운데 카메라로 열심히 여기저기 액자들과 사진들을 찍다 보니 아이들의 한바탕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사람이 나온다


어머 안녕하세요 드디어 오셨군요 반갑습니다 이리로 들어오세요


알고 보니, 박물관 측은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취재 여행 중이라는 말에 뮤지엄에서 음악공연까지 준비하며 홀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박물관 문 닫는 월요일까지 이렇게 멋진 공연을 보여주다니... 완. 전. 감. 동. 감. 동.



슈만의 어린 아내 클라라 역을 맡은 가수가 독일어로 노래를 부르면서 중간중간에 내용을 곁들어준다. 그녀의 독일어 공연에 현지 가이드의 영어 설명 그리고 나는 한국어 해석 시도. 여행영어로는 부족한 음악가에 대한 긴 설명이 사실 좀 난감하다. 낭만파 음악에 대한 지식도 없거니와 사전에 슈만이라는 음악가에 대한 상식도 없었던지라 오늘의 공연이 멋진 건 알겠는데 정확히 공연의 내용은 모르겠다. 에고~ 


라이프치히가 어떻게 독일에서도 알아주는 음악의 도시가 되었나요?


질문을 듣고 나 역시 그 부분이 궁금했었다. 독일의 파리라는 이곳 라이프치히에서 슈만부터 멘델스존, 바흐까지 학교 다닐 때 한 번씩 교과서에서나 들어본 유명한 음악가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포스터가 걸려있는 이 도시에서 그런 배경에 대한 정보는 정말 아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에서 프러시아 북유럽을 통해 로마로 쭉 내려가다 보면 이곳 라이프치히가 바로 동서남북으로 교차되는 지점으로 이미 그 당시에도 인구만 오천 명의 거대한 상업도시였다고 한다. 결국 많은 사람들의 왕래로 이미 상업도시로 성장한 데다 이렇게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문화생활에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돈 줄 테니 나한테 이런 공연 좀 해줘, 난 이런 음악 듣고 싶은데 연주 좀 해봐 그렇게 교역을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감상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공연을 요구하게 되었고 그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수준이 높아지면서 도시는 실력 있는 작곡가들을 자꾸 찾게 되었고 많은 작곡가들이 라이프치히로 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단다. 



결국 라이프치히는 독일에서도 음악 관련 공연을 가장 많이 한 곳으로 많은 음악가들이 이곳 라이프치히를 무대로 한 번쯤은 활동을 했다고 한다. 증가하는 음악적 수요만큼이나 다양하고 새로운 음악가들이 실력을 갖추기 위해 또는 공연을 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이에 따라 라이프치히는 중세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도시로서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물론 상당한 부를 갖춘 사람들의 아낌없이 투자와 후원으로 도시의 예술적 무드는 빠르게 성장해 갈 수밖에 없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일까? 12세기 건물부터 21세기 건물까지 다양한 건축물들은 이 도시의 부귀영화를 한번 더 실감하게 해준다. 마치 세기별 건축물의 집합장인 양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는 골목들을 찾아다니면서 돌아다니는 가이드 투어 또한 멋진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 도시는 음악도시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건축역사에서 볼 때도 건축학도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한 매력이 있는 도시이다.



그렇게 가이드를 따라 세기별로 지어진 건물들을 찾아 빠르게 셔트를 누르며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슈만과 멘델스존이 자주 커피를 마시며 음악 토론을 했다는 그 유명한 카페까지 오게 되었다. 그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었다는 테이블은 아직도 많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그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한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이렇게 예약석 메모가 언제나 올려져 있다고...


빗방울에 간간히 눈까지 날리는 이런 3월의 봄을 봄이라고 해야 하나 겨울이라고 해야 하나? 옷을 챙겨 입고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진눈깨비 속에서 그래도 한 개라도 더 보기 위해 라이프치히 골목을 헤집고 다닌 결론은 보고 들은 건 많아 마음은 풍성해도 몸은 역시 춥다는 원초적인 사실. 투어도 좋지만 한 번쯤은 이런 유명한 카페에 한 구석에 앉아 뜨거운 차 한잔을 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생긴다. 도대체 언제 예약해야 저기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으려나?



짓궂은 날씨 탓에 이 도시의 색깔을 카메라에 제대로 담을 수는 없지만 간간히 나오는 햇살 덕분에 화사한 라이프치히의 건물들과 건물 속을 채우고 있는 화려한 디스플레이가 객의 시선을 잡는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표정이 전부가 아니듯 이 도시의 이미지가 지금 이 축축한 느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날씨도 추운데 저기 들어가서 파우스트 얘기나 좀 해볼까요?



쌀쌀한 날씨에 봄날의 햇살까지 기대하고 온 우리들이지만 연이은 빗방울과 눈보라에 어디 아무 데라도 들어가서 얼은 몸부터 녹이고 싶은 우리네 마음을 들킨 것일까? 가이드가 먼저 분위기를 파악하고 실내로 장소를 옮기자고 한다. 역시 센스 짱! 덕분에 좀 더 기분을 업시켜 경쾌한 발걸음으로 도시의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을 한다. 이런 날씨에서는 아무 데다 들어가도 좋고 따뜻한 물 한잔만 마셔도 좋겠다 싶지만 막상 근사한 카페를 들어오니 역시 독일여행인답게 맥주를 주문하게 된다


각자 원하는 음료를 다양하게 시키고 잠시 몸 좀 녹이면서 쉬려고 하는데 현지 가이드는 정말 파우스트 얘기를 진지하게 하기 시작한다. 헉~ 나 그 책 안 읽었는데? (결국 해석 포기) 이렇게 이쁘고 멋스러운 카페에 앉아 파우스트 예기라~ 역시 독일스러운 여행 스타일? 여기저기 삼삼오오 앉아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저기 혼자 우아하게 앉아서 담배 피우는 여인도 멋있고, 저기 연인이랑 눈웃음치면서 웃고 있는 저 커플도 부럽다



그래도 맥주 한잔에 이런저런 속을 달래고 나니 라이프치히의 하루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해석은 포기했지만 가이드의 말을 대충 구성해보니 이 카페 자체가 파우스트에 나오는 스토리를 콘셉트로 꾸몄다고 한다. 빨강, 아니 진달래색으로 장식된 섹시한 다방은 파우스트의 이야기를 알아야만 이해가 된다고 하는데 파우스트를 안 읽은 사람인지라 이곳의 독특한 인테리어가 사실은 난해하고 어지럽기만 하다.


‘한국 가면 파우스트를 꼭 읽어야지’

웬일이니? 파우스트를 읽지 않았다는 내 말에 더 놀라는 가이드 언니의 반응! 헐~


아니 파우스트도 모른단 말이냐며 쏘는 강한 레이저 눈빛. 독일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에 누구나 파우스트를 읽어야 하고 여러 번 접하는 서적이기 때문에 독일 사람이라면 꼭 여기 라이프치히까지 와서 이 카페를 들른다고 한다. 오 그래요? 내년에는 꼭 파우스트 읽고 다시 찾아올게요. 이런 무지한 여행자 같으니라고! 독일을 좋아한다면서 독일인들의 기본 도서도 안 읽고 뭣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ㅠㅠ




<라이프치히 여행 뒷 이야기>


라이프치히를 떠나며..... Leaving Leipzig


라이프치히는 13세기까지 요새와 같은 도시였기 때문에 그 당시의 성곽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당시 성곽이었던 지하가 세계대전을 통해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복구한 뒤 현재는 학생들의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래서 여름에는 야외 공연과 실내 장기자랑 같은 경연을 벌리기도 하지만 평소에도 학생들의 자유로운 휴식공간으로서 바, 레스토랑, 구내식당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바로 이런 곳....... 정말 여름에 찾아오면 제대로 된 라이프치히의 음악적 무드를 즐길 수 있을 거 같은데, 결국 여기를 다시 와야 하는 이유이기도. 


이런 독일의 뒷구멍 너무 운치 있지 않나? 솔직히 다른 나라 골목까지 구석구석 안 다녀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지하 술집, 지하 라이브 바, 지하의 운치 있는 레스토랑......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이런 비하인드 볼거리가 있어 더욱 여름날의 라이프치히를 찾아오는 이유는 아닐는지. 꼭 햇빛을 쬐면서 노천카페에 앉아 우아하게 커피 한잔을 마셔줘야 유럽여행을 제대로 하는 건 아니지 않아? 난 이렇게 지하 바에서 맥주 한잔을 안주 없이 혼자 들이켜도 이런 음침함이 허락되는 이런 독일의 지하 골목이 있어 너무 좋아^^




날씨 좋은 여름에 정말 다시 오고 싶은 멋진 곳. 이 도시가 특별나게 보이는 건 나만의 느낌만은 아니었던 게다. 저도 나중에 와이프랑 꼭 여기 라이프치히에는 다시 오고 싶다는 여행자의 한마디. 우리 와이프가 피아노 선생이거든요. 여긴 나의 허니문 코스로 딱이었는데~라고 아쉬워한다. 그러나 이제 100일 된 아들을 둔 젊은 아빠는 애가 크면 피아노 연주곡을 사랑하는 아내와 이 곳 라이프치히에서 제2의 가족여행을 꿈꾸겠단다.


비록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여행자이지만 나도 왠지 이런 지하 라이브 바, 골목골목 들어선 음악카페, 멋진 레스토랑이 즐비한 라이프치히를 어느 햇살 눈부신 날에 나의 연인과 같이 오고 싶다는 아름다운 상상을 하며 혼자 웃는다. 이래 보아도 저리 보아도 역시 알고 돌아보는 라이프치히는 확실히 환상적이다. 



갈피 못 잡고 방황하는 여인처럼 하루 종일 비와 눈과 햇살을 골고루 보여주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마음이 더 따뜻해지고 떠나는 발걸음이 더 애절한 이 도시의 매력이란? 마치 사랑하는 가족이 모두 남아있는 내 고향을 두고 아주 멀리 떠나는 듯한 그런 기분이라고나? 한국의 고향집도 잘 안 가면서 독일에 와서 왜 이리 고향 생각이 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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