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반항은 내 마음의 거울이었다
아이들이 제 목소리를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첫째 성현이를 양육하며, 저는 늘 조심스럽고 주눅 든 엄마였습니다. 성현이는 어릴 때부터 나뭇잎이나 스티커를 뜯고, 화장실 비누를 녹이거나 방향제를 비워버리는 행동이 반복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누군가에게 사과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시간이 늘어갔습니다.
그 속에서 둘째 아이는 제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엄마표 학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엄마표 영어, 자기주도학습, 책육아 같은 방대한 정보들 속에서 저는 점점 조급해졌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성현이에게 집중되었던 제 공부가 어느새 둘째에게까지 확장되었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나쁜 엄마가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 불안은 결국 행동으로 드러났습니다. 하루아침에 미디어를 차단하고 영어 영상만 틀어주기, 학습지와 책으로 집안 공간을 가득 채우기.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둘째가 2학년이 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3학년에 올라가자 아이는 결국 울면서 저항했습니다.
첫째와 둘째 모두와의 갈등이 겹치자 집안은 늘 긴장했습니다. 아이들은 자유가 억압된다고 느꼈고, 저는 더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결국 집안에는 서로의 목소리가 부딪히는 불협화음만 남았습니다. 모두가 지쳤고, 어느 순간엔가 우리는 강제로 정적을 유지해야 하는 상태까지 왔습니다.
그제서야 인정했습니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우리가 치유해야 할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이 안에서 드러나는 우리 자신이다.”
— 가브리엘 로스(Gabrielle Roth)
하지만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 몰두하느라 정작 저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저는 엄마표 교육과 잠시 이별하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모두가 깊은 우울로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는 제 내면 아이와 마주하기 위해 책을 붙들었습니다. 잔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은 날엔, 목소리를 내어 책을 읽으며 제 안에서 쌓여 있던 독기와 긴장을 흘려보냈습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이 제 목소리에 과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 목소리 안에는 제가 숨겨두었다고 믿었던 불안, 미움, 절망, 분노, 원망, 그런 감정의 잔향이 그대로 섞여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 진동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느낀 것이겠지요.
이렇게 저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내 목소리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에서 모든 갈등이 시작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막막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감정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고, 왜곡된 부분을 고쳐나갈 수 있을까.
어디에서부터 다시 나를 세워야 할까.
그 질문들 앞에서 저는 한동안 멈춰 서 있었습니다.
내면을 다독이듯 바라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