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이란 미신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by 누스
강 철저 씨(21세, 대학생)는 세 시간째 컴퓨터 앞에 우두커니 앉아 빈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전공 수업의 리포트 마감이 반나절도 채 남지 않았는데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 단 한 글자도 적어 내려갈 수가 없다.

강 철저 씨는 학부를 조기 졸업하고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다. 특히 이번 과목은 지망하는 랩의 교수님이 담당하시기에 누구보다 잘 해내서 두각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런데 졸업 일정에 맞추느라 전공 수업을 무리해서 신청한 데다가 남은 시간에는 학부생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보니 과부하가 온 것일까? 요즘 도통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다음 주에 있을 시험 준비는커녕 당장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들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학창 시절 강 철저 씨는 모범생 그 자체였다. 철저 씨 사전에 지각이나 결석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숙제 한 번 빼먹은 적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는 중요한 내용을 놓칠세라 선생님 말씀을 모두 받아 적어서 별명이 녹음기였고, 그날 배운 것을 모두 복습하기 전까지는 잠을 자지 않는 독종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했지만, 모든 새내기들의 로망인 축제와 미팅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 “공학 박사 출신 법조인 되기 10년 계획”을 실천하려면 그야말로 노닥거리며 낭비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 입학 후로는 모든 것이 어려워졌다. 일단 공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재들 사이에서 상위권에 들기는 쉽지 않았다. 더 열이 받는 것은 도서관에 박혀 사는 철저 씨와 달리, 어떤 이들은 책과는 담을 쌓고 연애 사업이나 하면서도 성적은 A를 받는다는 점이었다. 노력과 별개로 평가받는 현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졌다. 누구보다 정직하게, 누구보다 완벽하게 학생의 소임을 다 해온 강 철저 씨이다. 그런데 요즘은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 이러다 낙제를 하고, 대학원에 불합격하고, 법조인이 되지 못하고… 인생 전체가 망할 것만 같은 공포가 엄습한다.


강 철저 씨는 완벽주의자이다. 지금까지는 뛰어난 머리와 그보다 더 지독한 노력으로 그만의 완벽한 이상을 훌륭하게 성취해왔다. 하지만 한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 돌아가던 그의 톱니바퀴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가 세운 완벽한 세상이 무너지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완벽주의를 “결함 없이 완전함을 추구하는 태도”라고 정의한다. 뜻만 보면 그다지 별나지도 않고, 높은 학업 성취도를 강조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수혜자(피해자?)들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다만 정신 건강 분야가 늘 그러하듯 지나치면 병이 되고 불편해진다. 이러한 완벽주의에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비현실적이다. 완벽주의자의 목표는 높다 못해 이상적이다.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완전한 세상, 완전한 타인, 완전한 자기 자신을 꿈꾸느라 가장 중요한 진리를 잊는다. 바로, 현실은 결코 완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불완전한 몸뚱이로 불완전한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이 세계가 원래 불완전하다는 이치를 도무지 인정하지 못한다. 물론 더 나은, 더 좋은 것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희망할 뿐이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현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할 일들을 비교적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예컨대 실수, 실패, 좌절, 장애물, 시행착오처럼 달갑지 않은 것들 말이다.


둘째, 경직되어 있다. 완벽주의자의 생각은 탄성 없는 각목처럼 딱딱하다. 자신이 세운 촘촘한 원칙들로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고, 변화나 타협은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약속을 지키려는 신의나 목표를 이루려는 의지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강 철저 씨가 조금만 융통성을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괜히 소화하지도 못할 만큼 많은 과목을 신청해서 낙제 위기에 처할 바에야 조기 졸업을 포기하는 쪽으로 말이다. 강 철저 씨의 우려와는 달리 한 학기 늦게 졸업한다고 해서 대학원에 영영 입학하지 못하거나 인생이 쫄딱 망하는 파국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의 사고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기에 모든 상황을 흑과 백, 성공 또는 실패와 같이 이분법적으로만 해석한다. 두 극단 사이에 놓인 다양한 가능성은 고려하지 못한다.


셋째,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된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완벽주의의 기저에 깔린 감정을 두려움이라고 본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대개 “완벽하지 못하면 나쁜 일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식의 가정을 한다. “완벽하지 못하면 나의 결점이 모두에게 드러날 것이다, 실수 한 번으로 내 인생이 영원히 망할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등 완벽하지 못함의 결과를 비합리적인 수준으로 과대평가한다. 때문에 그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필사적으로 완벽을 추구한다.



완벽주의의 결과


완벽주의자는 자신이 예상하는 가혹하고 암담한 일을 피하기 위해 철저하게 완벽을 기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결과는 지극히 허술하다. 특히 학교나 직장처럼 수행과 성취가 중요한 곳에서 완벽주의는 완전히 비효율적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생각하면, 과제의 난이도는 껑충 뛰어오르고 부담감이 커진다. 그러면 게으름과는 거리가 먼 이들도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고 자꾸만 일을 미루게 된다. 가끔 심리 검사를 받으러 오는 학생들 중에, 지능과 주의력에 문제가 없고 오히려 성실한 모범생인데도 미술 시간 내에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다거나 기한 내에 숙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검사를 해보면 대개 완벽주의 성향이 걸림돌이 되곤 한다. 머릿속으로 이상적인 작품을 구상하느라 미처 도화지로는 옮기지 못하거나, 시작을 하더라도 마음에 들 때까지 거듭 수정하며 하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설령 첫 발을 내디뎠다 해도 목표 지점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장애물이 즐비하다. 완벽주의자들은 체계를 무척이나 중요시하는데, 이로 인해 자질구레한 규칙과 질서를 세우고 여기에 발목이 잡혀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물론 어쩌다 뛰어난 능력으로 목표치를 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는 동안 연이어 성공만 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다음에는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릴 수 있다. 그리고 남들이 볼 때 괜찮은 성취를 했더라도, 스스로 세운 “완전한” 목표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들의 경직된 면모는 대인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사람을 사귈 때에는 절대불변의 원칙이나 통제가 잘 통하지 않는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자신이 고수하는 의견을 적당히 굽혀 타협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윤리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먼저 살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너무 양심적인 바른생활 사나이보다는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파악하고 능청스럽게 임기응변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능숙하게 사람을 사귄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는 대개 높은 도덕적 기준을 달성하는 데에 급급해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일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타인뿐 아니라 자신의 사소한 결점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은 민망할 정도로 부자연스러워 보이고, 그 앞에만 서면 감히 우스갯소리도 삼가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생긴다. 그는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냐”는 물음에 절대 아니라고 정색한다거나, 술자리에서 오가는 가벼운 야한 농담에도 기겁할 수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선하고 옳은 것을 지향해야 인류가 점점 발전하겠지만, 그렇다고 땅을 밟고 살면서 먼지 한 톨 묻지 않을 거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처럼 엄격하고 고루한 완벽주의자들이 먼지가 폴폴 날리는 인간 세계에 물 흐르듯 섞여 들어가기란 쉽지가 않다.


완벽주의는 타인을 향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자신만의 이상적인 기준을 남들도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무자비한 칼이 된다. 몇 년 전 방영된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는 높은 교육열을 둘러싼 사회적 병폐를 풍자해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서야 한다며 아들들을 겁박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우리는 자녀를 위한답시고 그럴싸하게 포장한 완벽주의의 병리를 엿보았다. “나 자신에게만 엄격하지 남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완벽주의가 “최소한”이나 “당연함”으로 둔갑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행여나 인간이 지켜야 할 하한선을 마음속에 품고 여기에 못 미치는 사람은 으레 자격 미달로 치부하지는 않는지, 점검해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完璧은 본래 흠이 없는 구슬이라는 뜻이다. 그 구슬을 무균실에 넣고 보존한다면 완벽함을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무균실에 갇혀 고이 보관되는 전시물이 아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흐름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하며 조금씩 낡아간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인생에서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미신이다.


그렇다고 인생은 원래 불완전하니 아예 넝마가 되도록 방치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만, 허구의 완벽이 아닌 현실의 최선을 택하자. 뜻대로 되지 않아 씁쓸할 때가 많겠지만, 실망은 조금만 하고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로 다시 일어서자. 오점이라 여기는 그 실패는, 사실 열심히 살아보고자 노력하다 생긴 대견한 발자취이다. 그러니 해지고 빛이 바랜 귀퉁이도 너그럽게 봐주자.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고쳐 쓰려 애썼던 나의 손때 묻은 인생을 사랑스럽게 여기자. 그래도 괜찮다. 당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기에.




* 참고 자료

Raphael M. Bonelli, <완벽의 배신>

Tal Ben-Shahar, <완벽의 추구>


* 표지 사진 출처: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