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법
왕 연희 씨(42세, 주부)는 두 아이의 엄마이다. 손재주가 좋고 잡다한 세상 일에 관심이 많았던 연희 씨는 어려서부터 야무지다, 똘똘하다는 소리를 줄곧 들어왔다. 학교 성적이 아주 뛰어나진 않았지만 일찍이 적성을 찾아 들어간 전문대에서는 수석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회사에서도 나름 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을 받아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또래들에 비해 높은 연봉을 받았다. 그러다 거래처 직원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꽃다운 나이에 결혼을 했고, 두 살 터울의 토끼 같은 자식들을 얻은 후로는 전업 주부로 살아가고 있다.
원래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 바로 직장에 복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이 감기에 장염에 수족구까지 걸려 오는 바람에 피치 못하게 가정 보육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게다가 남편은 업무 특성상 야근이 많고 양가 부모님도 멀리 계시다 보니 육아는 오롯이 연희 씨의 몫이 되고 말았다. 유치원에만 가면 반드시 일을 시작하리라 결심했지만, 막상 둘째까지 유치원에 보내고 나니 이미 경력이 단절된 지 6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용기를 내어 작은 회사들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어봤지만, 하나같이 연희 씨의 나이와 경력 단절 기간을 부담스러워하며 고용할 수 없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최근 들어 왕 연희 씨는 자주 생각에 잠기곤 한다. 워낙 바지런한 성격이라 아이들이 유치원에 간 동안에도 끊임없이 집안일을 했는데, 요즘엔 몇 시간이고 소파에 누워 멍하니 있을 때가 많다. 연희 씨는 젊고 날씬하고 능력 있던 왕년의 자신이 그립다. “참 좋았었지” 하며 과거의 영광스러운 날들을 곱씹어보다가, 이내 후회스러운 일들을 떠올린다. “승진하고 결혼할 걸, 아이 낳고도 그만두지 말 걸, 하나만 낳을 걸…” 영화에서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해보고, 그에 따라 달라질 휘황찬란한 미래도 상상해 본다. 하지만 펑퍼짐한 몸매에 목이 늘어난 원피스를 걸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아이들이 하원할 때까지 할 일이 쌓여있지만, 연희 씨는 솜처럼 무거운 몸을 다시 소파에 누이고는 상념에 잠긴다.
마음속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달콤한 추억에 젖기도 하고, 꿈을 이루는 모습을 그리며 흐뭇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공상에 빠져 산다.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검사와 면담으로 면밀히 살펴보면, 대개 현재 상황과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쾌하지 않은 현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서 상상으로나마 만족감을 얻으려는 시도이다. 한편으로는 자기 위안의 방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맛본 즐거움은 신기루와 같아서 현실로 돌아왔을 때 깊은 괴리감과 허망함만 남기고 금세 사라진다.
어떤 생각은 사람의 발목을 잡고 고통의 심연으로 끌고 간다. “나는 왜 이 꼴로 살고 있나? 나는 왜 우울할까? 내 성격 탓일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이처럼 괴로운 경험에 끊임없이 몰두하는 현상을 정신과 용어로 반추Rumination라고 한다. 먹이를 게워 내어 다시 씹는 되새김질처럼, 반추는 고통스러운 생각과 감정을 소화시키지 못하고 곱씹는 행위이다. 우울증의 한 증상이자, 우울감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이미 생각의 주인은 나 자신이 아니다. 병리적인 반추든 현실 도피성 공상이든 간에, 일단 생각이 나를 삼키면 주도권을 행사하기가 어렵다. 그저 생각 님께서 휘두르시는 대로 무기력하게 휘둘리며 더 깊은 우울로 끌려 들어가고, 그러는 동안 아무도 돌보지 않은 나의 현실은 더욱 열악해진다. 그러나 지지 말자.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아직 희망은 있다. 나를 삼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네 가지 전략을 기억하자.
지금 당신은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잠식된” 상태이다. 그리고 물귀신과 같은 그 생각은 당신을 골탕 먹일 뿐, 현실을 개선하는 데에는 하등의 도움도 주지 못한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깨달았다면 주저 말고 마음속 on/off 버튼을 눌러 생각을 꺼버리자.
잠에서 깨어나듯 생각에서도 깨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몽롱해진 공기를 뒤흔들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작용이기에, 내면에서 아무리 파리채를 들고 휘저어 봐야 밖으로 내쫓을 수 없다. 그러니 생각의 힘으로 생각을 이기겠다는 헛된 꿈은 꾸지 말자. 대신 눈, 코, 입, 귀, 그리고 피부의 감각을 직접 자극해서 내면에 집중된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다. 알람시계가 시끄러운 소리라는 청각적 자극으로 우리를 잠에서 깨우듯이, 창문을 열어 맑은 공기를 마시거나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몸을 움직여보자. 취향에 맞는 아로마 오일로 가볍게 어깨를 마사지하는 것도 좋다. 만약 이 단계에서 충분히 환기가 되지 않는다면 즉시 세 번째 전략으로 넘어가자.
말 그대로 두 발로 도망쳐야 한다. 감각을 깨우는 것만으로 부족할 때에는 생각에 휩싸인 그 공간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니 백일몽이나 반추에 빠질 것 같은 기미를 감지한다면, 즉시 일어나 밖으로 나서자. 가볍게 동네 산책을 하든지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든지 상관없다. 대단히 효율적인 일을 해내리라 기대하지 말고 분위기를 바꾸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지금 당장 움직이자.
생각에게 빼앗긴 주도권은 앞선 전략들로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확실히 힘을 다지고 싶다면? 서둘러 일상으로 복귀하자. 물론 밀린 일들을 보면 기운이 빠질 테고, 다시 자책과 무기력의 수렁으로 자신을 던져 넣고 싶은 유혹이 찾아온다. 하지만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얼른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작고 쉬운 일을 시작하자. 전날 먹고 치우지 않은 컵라면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일부터 문제집을 펼쳐 단 세 문제라도 풀어보는 것까지, 당신의 일상 중에서 가장 쉬운 일부터 시작하라. 그렇게 얻은 효능감을 동력으로 삼아 다음 벽돌을 올리자. 조금이라도 힘이 있을 때 견고하게 담을 쌓아야 언젠가 또 들이닥칠지 모르는 물귀신으로부터 마음을 지킬 수 있다. 현실에 대한 애착과 만족감이 높을수록 생각으로 도피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리고 나의 현실을 사랑스럽게 만들기 위해선 평소에 부지런히 가꾸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 전략을 실천하기 어렵다면 필자의 이전 글을 참고하시길 바란다. <미루기의 늪에서 살아남는 법> )
생각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인간 고유의 정신적 작용이다. 그러니 생각하며 살자. 다만 생각에 삼켜지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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