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덴마크의 제이콥, 그리고 흔한 취소 문화

by 민네

2년만에 만난 그는 살이 조금 더 오른 듯 했지만 여전히 그때 모습 그대로였다. 새로 새겼다는 오른팔 아래 안쪽의 ‘이동진’이란 이름은 ‘ㅣ’자 부분만 빨간색이었는데 뭔가 세련되보이게 달리 색깔을 넣어봤단다.

저녁을 집에서 해먹으려다 아쉽게 점심에 만난 우리는 최근 생겼다는 핫한 푸드마켓으로 갔다. 팟타이, 커리, 햄버거, 팬케익 등 다국적 음식들을 파는 트럭 형태의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더운 날씨 덕에 음료 한 잔씩을 먼저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더니 영상통화를 하려 했다. 한국은 저녁 8시쯤이라 마침 통화하기에도 좋은 시간이었다.

화면에 나타난 낯익은 형은 안 본 사이에 머리가 조금 시원해지신 듯 했다. 2년 전이었지만 얼굴과 목소리와 분위기가 자세하게 기억났다. 한국에 있는 가족 중에 영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제이콥은 내가 영상통화를 도와줄 수 있는 걸 좋아하고 고마워했다. 내년에 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할 계획인데 성남에서 같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자고 했다. 얼마든지 그러겠다고 말했다. 형은 동생의 늘어난 흰머리와 결혼을 걱정했고 동생은 형처럼 자기도 곧 머리가 빠질까 모르겠다며 웃었다.


각자 주문한 비프커리와 덴마크식 감자볶음요리는 둘다 맛이 좋았다. 그가 먹어보라며 사 온 길쭉한 덴마크 스타일이라는 돼지껍데기 튀김은 태국 식당에서 먹어본 것과 맛이 똑같았다.

그는 내가 북유럽에 대한 궁금증을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고 충분한 답변도 받을 수 있는 이었다. 완벽한 덴마크인이면서도 한국에 대한 이해도도 있어서 이야기하는 시간들이 만족스러웠다.


그때 내가 못 봤던 곳들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식사 후에 번화가로 나섰다. 여전히 작은 도시지만 여기저기 건물을 올리고 있는 공사 현장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사용하지않는 항구에 새로운 건축물과 아파트들을 짓는 하버 프로젝트가 한창이라 했다. 멀리 보이는 저 건물이 여기 덴마크 제3의 도시 오덴세에서 가장 높은 층수가 될 거라고 했는데 17층이라 했다. 역시 귀여운 동네다. 집값도 작년에 비해서 좀 올랐는데 여전히 수도 코펜하겐에 비하면 1/4, 제2도시 오르후스의 1/2이라 나쁘지 않은 편이란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오후 4시엔 잔디깍는 이가 방문하기로 했고 5시에는 (그는 작곡과 뮤지컬 음악 등을 학생들에게 사르치는 일을 한다) 개인 레슨이 잡혀있다고 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집까지 차로 데려다 주려면 잔디깍는 기술자 방문을 4시 반으로 바꾸는 게 나을 것같다며 가능한지 문자를 보냈다. 얼마 후에 답장을 받았는데 몸이 좋지 않다며 일정을 그쪽에서 취소했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설명을 하곤 아무 일 없다는 듯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너무 급작스러운 취소가 아니냐고 물었다. 괜찮단다. 언제로 하자는 시간 변경도 없었다. 이런 일은 흔하다며 개의치 않아했다.

실은 자기도 어제 학생과의 수업을 취소했다며 컨디션이나 기분이 최선을 다해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것같으면 종종 그렇게 한다 했다. 특히나 날씨 좋은 날엔 날씨를 즐겨야 하니까 더더욱 그렇다며. 학생들이 불만을 갖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학생들은 오히려 수업이 취소됐다고 좋아한다했다.

다른 예를 들어 물어봐야할 것같았다. 예를 들어 나는 내일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할 계획이 있고 오늘 꼭 잔디를 깍아야 하는데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에서 일방적으로 취소를 하면 당황스럽거나 화가 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거짓말로 아프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 것도 다 감안해서 받아들인단다. 사람들은 그런 일이 생기면 실망은 할지언정 화가 나거나 불만을 제기하진 않는다고. 서로에 대한 예의나 신뢰에 대한 문제, 또는 상대방의 시간을 뺏는 행위이지 않냐고 물었는데 그렇지 않다며 오히려 학교에선 선생님들이 병가를 공식적으로 낼 수 있는 날이 9일이 있다며 일상적인 문화라는 점을 설명했다.

스웨덴에서 회사에 다니는 누군가는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면 일이 굴러가는 게 신기하다고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또 스웨덴에서 다른 일 때문이긴 했지만) 이 나라는 너무나 인간적으로 자애롭다고 불평했던 현지인의 말도 떠올랐다. 아무래도 선생님이나 공무원 같은 공공기관에서보다 회사같은 사적 부분에서는 조금 덜 해이하고 일에 책임을 지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잔디깍는 일도 민간 서비스가 아닌가 의아해하면서 갸우뚱거리고 말았다.


짧은 시간이나마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고 반가워했다. 다음 번에 올 땐 스웨덴은 스킵하고 바로 덴마크로 오라고 말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세 개의 큰 섬으로 이루어진 덴마크에서 가장 큰 지역인 유틀란트를 둘러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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