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이 설렜던 이유 중 하나는 그녀와의 만남이었다. 도대체 (북)유럽 사람들 마음속의 키워드는 무엇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제 스웨덴에서 7개월을 생활한 그녀를 만나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같은 팀에서 일했다. 그녀는 스웨덴 본사의 요청으로 한국 직원 중 우수 인재로 발탁되어 (그녀의 말에 따르면 인생에 1도 계획이 없던) 스웨덴으로 가게 되었고, 북유럽을 좋아하는 나에게 언제든지 놀러 오라며 내가 아마도 가장 처음으로 방문할 듯한 사람일 것 같다고 장난삼아 얘기했을 텐데 그 말이 현실이 되었다.
글로벌 프로젝트로 공기를 정화해주는 기기를 개발 중이었고, 유럽과 한국이 주요 마켓으로 지정됐다. 나는 한국의 마케팅 담당자로 참여하며 특히 공기가 좋지 않은 지역이자 제품의 핵심 시장인 한국에서 필요한 스펙 사항과 소비자 및 시장 환경 등을 설명하는데 역할을 다했다. 글로벌 프로젝트팀은 유럽과 한국의 제품 담당자로부터 요청 사항들을 수렴했고, 나는 유럽 시장의 요구사항이나 소비자 반응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예를 들어 한국은 (공기 정화 기기가 심각해진 공기 질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제품들을 봐도) 일반적으로 성능이 가장 중요시되고 (디자인으로 소비되는 제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소비자들이 파워나 기술적 스펙 수치 (예. 900W, 99.9% 먼지 제거력 등)를 가장 우선적으로 또는 중요한 구매 결정 요인으로 꼽는 반면, 유럽에서는 소비자 리서치 결과 등을 보더라도 (제품군 전반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나 신뢰할 만한 기관의 인증 등 외엔 디자인이 (성능보다) 중요한 구매 요인으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코드를 천으로 입혀 좀 더 프리미엄 한 디자인 외관을 연출하자는 의견까지 들었었는데 한국에서는 이런 부분은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니다. (물론 제품마다 구매 요인은 다르지만 좀 더 보편적인 관점으로 초점을 두고자 한다.)
다른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들, 예를 들어 유모차나 그릇, 청소기 등도 한국에서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폭발적 인기에 지사를 설립하거나 사업을 확장하고, 한국이 주요 마켓 또는 테스트 베드로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곤 했다. 트렌디함과 선도 기술을 지향하는 한국의 엄청난 열성(?)은 같은 한국인이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런 환경 탓에 개인적인 성향과는 무관하게 시장의 니즈와 소비자들의 성향을 파악하려고 업무상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사정으로 유럽에서의 마케팅은 (물론 국가마다 다르지만) 소비자들의 어떤 점을 포인트로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어떤 점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는지 궁금해졌다.
같이 지낸 며칠 동안 그녀는 혀를 내두르기 바빴다. 베짱이들도 이런 베짱이들이 없다는 거다. 내가 여기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요, 라는 물음에 그녀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릴랙스(Relax)예요, 릴랙스.”
그들의 관심사는 그저 쉬는 거라는 거다.
특히나 햇빛이 쨍쨍한 날엔 슬그머니 다들 이른 퇴근이 암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긴 겨울과 어두운 날이 많아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많고 워낙 햇빛이 귀한 곳이라 주택가나 공원 가리지 않고 태닝을 하는 건 이해가 가긴 하지만 어쨌든 여기 사람들이 미쳐있는 건 햇빛과 릴랙스라는 설명을 재차 들었다. 언뜻 보기엔 이 곳 사람들은 이미 릴랙스하고 있는 환경인 듯한데 또 릴랙스를 추구한단 말인가.
다른 한국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도 그들의 피드백은 비슷했다.
“이곳 사람들은 너무 나약하고 게을러요.”
온실과 같은 환경과 문화에서 지내와서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빠르게 일 처리를 하지 못하는 듯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참고로 이 의견은 전형적인 일 잘하고 열성 넘치는 한국인들이 내놓은 의견이다.)
우선 회사생활에서 가장 불만인 사항 중 하나는 프리 미팅(Pre-meeting)이 너무 많다는 거다. 본격적인 미팅에 앞서 갈등(Conflict)이나 논쟁적인 사항을 줄이기 위해 의견을 조율하는 미팅으로 미팅 자체도 많고 본 미팅과 결론에 다다르는 과정이 너무 길다고 했다. 갈등을 싫어하고 화합을 강조하는 문화 탓에 미팅에서도 사람들이 누구 하나 잘 나서려고 하지도 않고 준비도 잘 해오지 않는다고. 게다가 의견 조율은 반드시 되어야 하므로 모두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해서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고 한다.
스웨덴 친구와 식당에 가서 자주 겪는 논쟁 중 하나는 직원들의 느린 반응이라고 했다. (식당뿐 아니라 서비스에 관한 한 비슷한 모습인데) 한국인 친구는 직원을 재촉해서 빠르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스웨덴 친구는 직원을 재촉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니 좋은 서비스 질을 제공할 수 있는 템포의 패턴이 모두가 만족하는 ‘효율적’인 서비스일 거라고 했단다.
아무래도 너무 다른 사회적 문화적 배경 탓에 ‘행복’이나 ‘만족’, ‘효율’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다. 사람들은 사랑하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상대방과 의견 일치를 경험하거나 특히 다투는 과정에서 나의 성향과 취향 등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는 법이니까. 다른 문화 안에 들어가 있을 때도 비슷하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자각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녀는 스웨덴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게 되었다고 몇 번이고 말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모두의 인정을 받는 유능한 인재였다. 어린 나이에도 모든 영업팀 부장님들과 맞장(?)을 뜨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으며, 말발도 좋고 일 처리도 빠르며 매우 논리적이었다. 성과 중심의 한국 사회에서 촉망받는 전형적인 한국형 인재였다.
사실 그녀가 스웨덴이 답답하고 느려서 너무 안 맞다고 할 때 조금은 놀랐다. 그녀도 내가 북유럽의 느긋하고 평등한 문화를 좋아했던 것처럼 그곳의 문화를 꽤 좋아할 줄 알았다. 역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갈 수 없는 체험적 한계가 있는 동물임을 실감했다. 물론 스웨덴이 좋은 것도 많지만 아직은 좋은 것 반, 안 좋은 것 반이라고 말했다. 더 빨리 더 생산성 높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답답하게 느끼며 한국에 돌아갔을 때 어떻게 적응을 할지에 대한 고민도 된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지각을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지각이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서 유동적으로 출근하면 되기 때문에 특별히 지각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했다. 정말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북유럽과 잘 맞겠구나 싶어서 그녀가 정말 부러울 따름이었다. 느긋하게 출근할 수 있고, 갈등(Conflict)을 싫어하기에 직설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화합을 추구해서 내 성향과도 맞을 테고,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이런 환상적인 근무 환경이 세상에 존재한다니. 내가 환상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근무환경도 누군가에게는 ‘비효율’ 투성이일 수 있다는 점이 새삼스럽게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흐린 날이 잦은 스웨덴에서 사상 최고의 날씨라는 30도에 가까운 햇빛 쨍쨍한 날이 유례 없이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에 친구의 스웨덴 친구들을 함께 만나 피크닉을 즐기기로 했다. 편하게 누울 수 있는 잔디밭을 물색하며 걷는 와중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눕거나 자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채로 날씨 그 자체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친구는 다시금 얘기했다.
“이런 베짱이들”
그렇다. 내 눈엔 한가롭게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행복한 그들이 누군가의 눈에는 게으르고 나약한 베짱이로 보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생각해보니 티비 프로그램도 대부분 미국 드라마나 쇼 프로그램이 많았다. 현지 방송은 재미없다고 듣긴 했지만 왜 이곳 방송이 많지 않나 궁금했는데 사람들의 ‘니즈’가 별로 없다는 점이 한몫하지 않을까. 아니면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추구하는 성향 덕에 재미있는 프로가 나올 수 없는 이유가 동시에 작용하거나.
잘 알려진 것처럼 연금이나 병원비, 교육비 등 복지가 잘 정비된 탓에 돈 들어갈 걱정이 없는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북)유럽 사람들은 저축하지 않고 그 해 모은 돈으로 어디를 여행갈지 등이 주된 관심사다.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것도 어쩌면 이와 관련될 법도 하다. 반대로 우리가 유행에 민감한 건 생존을 위해 최신 기술을 개발하고 쫓아온 습관이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문화와 합쳐져 여전히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문화로 형성된 게 아닐까 어설픈 추리를 해본다.
덴마크에서 만난 어느 중년 여성은 자기네 동네에 일본 스타일로 꾸며놓은 정원이 있는데 거기에 가니까 맥박이 떨어지면서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고 긴장을 풀 수 있어서 좋았다며 나에게 추천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깜짝 놀라며 웃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시골인 동네에서 무슨 릴랙스를 또 찾는다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자연이 있어도 자연을 더 찾는 이곳 사람들처럼 우리도 경쟁 속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더욱 변화의 칼날을 다지는 모습이 우리에겐 익숙한 듯하다고 느껴졌다. 장단을 비교하는 게 아니라 처한 상황이 워낙 다르다 보니 환경에 맞게 발달되고 형성된 대비되는 두 지역의 모습이 더욱 또렷하게 다가오는 듯했다.
그녀와 지낸 3일간의 짧은 만남이 유독 아쉬웠다. 마지막 날 밤늦게까지 수다를 떠느라 이른 아침 시간 출발에도 불구하고 두 시간의 취침 시간마저 아깝게 느껴졌다. 답답하게 느껴지는 스웨덴에서, 많은 것이 벅차게 느껴지는 한국에서 각자 또 잘 살아내다가 다시 만나 이야기할 날을 고대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