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톡홀름에 도착하기 위해

긴 여정의 시작

by 민네


공항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렌다. 새벽 비행기라 걱정했지만 그래도 노을이 예쁘게 물들어 설레는 마음만큼 예쁜 사진이 찍혔다. 보통 북유럽으로 갈 땐 핀란드 헬싱키를 제외하고는 직항이 없기 때문에 유럽 항공(핀에어, 루프트한자, 아에로플로트 등)을 이용해서 8~9시간을 간 뒤 유럽(헬싱키, 프랑크푸르트, 모스크바 등)에서 다시 1~2시간을 이동하여 북유럽(코펜하겐, 스톡홀름, 오슬로 등)에 도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나 이번엔 가는 날과 오는 날이 정해져 있었던 데다 최대한 머물러 있는 시간을 오래 확보하기 위해 두바이 경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유 대기 시간을 포함해서 1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20시간을 걸려 가다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을 듯해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여행의 설렘에 견준다면 뭐든 눈 감아 주지 못하랴.


새벽 1시가 넘어 출발하는 비행기 안을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랍에미레이트 항공을 처음 탔는데 내부가 꽤 좋아서 비즈니스석을 잘못 탔는지 착각할 만한 내부 자재와 좌석 너비가 눈에 띄었다. 천장에도 별 모양이 반짝거렸고 기내식에서 사용되는 냅킨이나 사소한 포장재 하나에도 신경 썼다는 느낌이 들어 뭔가 오일머니의 명성이 느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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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새벽 비행은 힘든 걸까. 한 주를 피곤하게 보내고 바로 여행길에 올라서인지 불편하게 자면서 악몽도 꿨다. 꿈에서 차 뒷좌석에 타고 있는데 웬 벌이 들어왔다. 열린 창문으로 벌을 쫓아내려는 와중에 옆 사람은 벌이 나간 줄 착각하고 열렸던 창문을 닫는 게 아닌가. 나는 벌이 내 팔이 앉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깜짝 놀라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안 나갔!!!(다고)"

딱 세 마디를 외치고 내가 내 소리에 놀라서 깼다. 다들 자는 시간이라 고요 속에 외침이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화들짝 놀래며 함께 깼다. 부끄럽고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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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 기내식


약 9시간의 비행 동안 두 번의 기내식이 나오고 나서 창 밖으로 밝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두바이에 다다라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모래 위에 도시를 만들었다는 게 실감이 났다. 모래만 가득하던 땅이 시간이 갈수록 모래를 걷어내고 도로와 작은 건물들을 듬성듬성 배치해놓았다가 이내 모래 바닥 위에 더 많은 도로와 더 많은 건물들을 빼곡히 지어놓은 풍경이 펼쳐졌다. 다음엔 두바이도 꼭 여행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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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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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간의 두 번째 비행, 두바이에서 스톡홀름까지


드디어 9시간 30분의 첫 번째 비행과 6시간 30분의 두 번째 비행이 끝나가려나 보다. 작은 섬들이 무수히 잘게 떠 있는 북유럽 지형이 창 밖으로 나타났다.

'다시 북유럽이구나. 또 오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착륙한 땅의 풍경도 한눈에 차분함이 느껴졌다.


북유럽에서 가장 자주 들른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은 이제 정겹지만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공항 내부를 찍었다. 걸어가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순간의 감흥을 기억하고 싶었다. 한국을 벗어나는 일은 꽤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인 데다 특히 이 먼 곳까지 왔다는 사실이 들뜨고 즐겁기만 했다.

스톡홀름 알란다(ARN) 공항 내부



입국 심사대에는 의외로 줄이 길었는데 중동 등지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속에 같이 얼마간을 기다리는데 잠깐이었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이 느껴졌다. 무사히 입국 심사를 통과하고 짐을 찾아서 나온 뒤 친구가 일러준 대로 스톡홀름 교통카드를 구매하기 위해 안내데스크에 줄을 섰다. 예전엔 시내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교통비를 냈는데 그때그때 끊으면 약 5천 원 정도인 걸 이번엔 3일 권으로 끊었더니 313 SEK (약 38,000원)이라 이동 횟수를 생각하면 더 이득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SL카드 앱이 있는 걸 찾았지만 3일권 구매가 헷갈려서 그냥 안내데스크에서 구입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방법도 기차와 버스가 있는데 이제까지 기차만 이용하다 친구가 버스가 더 저렴하다며 알려주었다. 버스는 두 종류가 있는데 알란다 익스프레스는 20분, 일반 공항버스는 40분이었고 추천해준 대로 조금 더 저렴한 일반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앱을 다운받아 간단하게 결제할 수 있었다. 가격은 99 SEK(약 12,000원). 대부분의 북유럽 도시들의 이동수단(비행기, 기차, 버스 등) 티켓과 (관광용) 시티카드 등은 앱과 카드만 있으면 웬만한 결제는 다 되는 터라 이번에는 환전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기차 안의 커피와 빵 카트 결제도 카드만(!) 가능하다.


스톡홀름의 교통카드 SL 어플(좌)과 3일권 카드(우)


KakaoTalk_20180622_135355324.jpg 공항-시내 간 이동하는 저렴한 버스 티켓 앱


40분가량 걸려 친구가 일러준 정류장에 도착했다. 얼마 만에 보는 단조로운 형형색색의 북유럽 건물들인가. 6월의 기분 좋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풍경이 꿈만 같아 얼른 사진을 찍었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니 잔디밭에 누워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냥 웃음이 났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풍경을 마주한 채 앞으로 뒤로 사진을 찍고, 멈춰 서서 보고를 반복했다. 맑은 날이 일주일 내내 지속되는 게 흔치 않은 이곳에서 역대 최고의 날씨라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기분이 좋아서인지 날씨 탓인지 6월의 공기 속에는 가장 여유롭고 행복한 기분들만 가득 담겨있는 듯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공원 끝 코너에서 하얀 얼굴을 한 누군가가 보였다. 선글라스를 한 여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그녀를.


6월의 스톡홀름


도착한 버스정류장 앞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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