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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Oct 17. 2018

노르웨이가 싫어서

한국이 싫다고? 그들도 노르웨이가 싫데

“노르웨이에선 모든 게 다 비싸. 심지어 우리한테도 비싸. 너무 비싸고 맛있는 게 없어.”

노르웨이 친구들 세 명과 막창집에 앉았다. 그들은 한국이 좋다고 난리다. 이런 고깃집은 드라마에서 자주 나와 외국인들이 와보고 싶어 하는 곳이라고 일러주었다. 식당 내부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처음 먹어보는 막창 앞에서 기대감에 부푼 듯 보였다. 한국이 얼마나 좋은지 맛있는 게 얼마나 많고 재미있는지 내내 감탄 중이다. 한 명은 한국에 온 지 두 달째로 어학당을 다니고, 한 명은 내년에 학사로 지원해보고 안 되면 어학당 오겠다고 하고, 또 한 명은 한국을 1년 사이에 3번이나 여행 왔다. 작은 원형 테이블에 옹기종기 다섯 명이 앉아 불편할 만도 한데 그저 즐겁다. 잘생긴 사장님도 있는 이 식당이 마음에 든다 했다. 금요일 저녁,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홍대의 어느 막창집에서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다.


한국에는 맛있는 음식밖에 없다고 감탄하는 친구 하나는 노르웨이의 어느 한국식당에서 먹었다는 비빔밥 사진을 보여주며 이게 얼마인지 맞춰보라 했다. 아주 고급스럽지도 않고, 아주 허술해 보이지도 않는 그저 그런 보통의 비빔밥 상차림이다. 2만 5천 원 정도가 아니냐고 했더니, 조금만 더 올리란다. 3 만 원, 3만 5천 원, 4만 원까지 올렸더니 4만원 5천 원쯤 한다고 답했다. 나와 다른 한국인 친구는 놀랐고, 그들은 이거 가지고 놀라면 아직 안 될 텐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햄버거 세트도 한국에선 5천 원 정도에 먹을 수 있는데 노르웨이에선 그 정도면 1만 5천 원이라고 했다. 카스 맥주 한 병을 가리키며 여기 4천 원 정도라면 거기선 1만 5천 원쯤 된다고. 술도 너무 비싸서 보통은 바나 클럽에 가기 전에 집에서 1차로 얼큰하게 취한 후 나가는 게 보통이며, 술집은 새벽 두 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그 후에 또 집에 와서 술을 먹는단다.

세 친구들의 고향인 베르겐 (출처: 구글 이미지)


노르웨이의 외식 물가는 기본적으로 너무 비싸 사람들은 거의 집에서만 식사한다고 했다. 심지어 맛있는 것도 없고 괜찮은 식당도 별로 없다고 불만이었다. 그래도 가장 맛있는 게 뭐냐 했더니 ‘냉동 피자’란다. 일반 피자는 보통 종이 맛이 날 만큼 끔찍하다고 하는데 냉동 피자 중 ‘그랜디오사(Grandiosa)’ 라는 브랜드는 맛이 으뜸이란다. 그리고 노르웨이에선 감자가 주구장창 들어가는데 어떤 음식을 해도 감자가 들어가서 너무 질린단다. (예전에 노르웨이 북부에서 감자와 고기를 넣고 끓인 요리를 먹었는데 비교적 추운 지방이라 간을 거의 안 하는지 감자와 고기가 들어갔음에도 이렇게 맛이 없을 수 있는지 싶어 의아해했다) 연어나 청어 등이 유명한 노르웨이에서 생선을 싫어한다는 친구는 더 곤욕이겠다 싶었다. 심지어 케이크도 맛있는 게 없다는데 세 친구 사이에서 그래도 당근 케이크 정도는 먹을 만하지 않냐고 설전이 벌어졌다. 한국에선 왜 이렇게 맛있는 디저트가 많냐고 묻길래 나는 개인적인 생각이라며 사람들이 먹는 거로 스트레스를 푸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많은 우리는 맛있는 디저트에 대한 니즈가 있는 편인데 돈을 벌려는 공급자들은 더 많은 디저트를 연구하고 내놓아서 다양하고 맛있는 디저트들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했다.

그렇게 맛있다는 노르웨이 명물, 냉동 피자 <그랜디오사>


노르웨이에 괜찮은 식당 하나를 열면 잘 될까 물었다. 그들은 물론 잘 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건비도 기본 재료비도 비쌀 테며 세금도 만만찮을 테니 기본적으로 메뉴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면 또 사람들은 비싸서 잘 찾지 못하는 식당이 될 테니 맛있는 음식을 파는 괜찮은 식당이 많지 않은 건 얼추 이해가 될 법도 했다.

냉동 피자 외에 노르웨이에서 그나마 맛있는 것, 또는 좋은 게 무언지 물었다. 잠시 생각하더니 그들은 공짜로 마실 수 있는 ‘물’이라고 답했다. 여느 유럽처럼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있어 마트나 편의점에는 ‘탄산수’ 같은 종류의 물만 판매한다.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물은 정말로 맛있다고 했다. 의료비용이 무료인 것도 마음에 든다 했다. 그리고 서울보다 차가 좀 적은 거? 그 외에는 없단다. (아플 때 병원에 갔던 것 외에도 태어날 때부터 각종 의료혜택을 받아왔을 테고, 무상 교육을 받아왔을 테지만 그들에겐 공기와 같았을 혜택들은 굳이 생각나지 않았을 테다)

노르웨이라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충분한 연금이 보장되는 걱정 없는 나라 아닌가. 팍팍한 경쟁 사회에 살면서 그저 평안하고도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만 생각했건만. 사소한 먹거리의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상상해보니 삶의 활력이 크게 떨어질 법도 하겠다 싶었다.

노르웨이에 관한 불만은 계속됐다. 20대 후반의 회사원 친구는 세금을 33%나 내는데 그게 어디다 쓰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방비 예산이 너무 작아서 군인을 잘 뽑지도 않고, 북쪽 상공엔 러시아 공군이 종종 날아다니는데 러시아가 침략이라도 하는 날에는 보호라도 받을 수 있을지 참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는 돈을 무지하게 아끼는 경향이 있어서 학교 시설에 투자도 적고, 심지어 대중교통에 달린 CCTV도 잘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일 머니가 그렇게 많은데 다 어디다 쓰냐고 했더니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연금에다 많이 쓰는 듯하단다. 밤늦게 귀가할 땐 위험해서 꼭 가족들이 마중을 나오고, 사람들은 옹졸한 데다, 사소한 규칙들(예를 들면 밤 열 시 이후에는 떠들지 말기 등)도 너무 많아 노르웨이는 정말 별로란다. 각종 놀 거리나 즐길 거리도 없어서 심심해서 정말 지겹기만 하다고.

다만 자연은 아름답고 좋다고 했다. 오로라도 가끔 볼 수 있는데 다들 너무 아름답다며 황홀한 밤하늘을 떠올렸는지 그새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노르웨이를 한 번도 와 본 적 없는 한국인 친구에게 그들은 5월에 제헌절이 있는데 큰 퍼레이드 행사도 있고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 모습이 장관이라며 날씨도 좋은 그 시기를 추천했다. 그리고는 다시금 생각하더니 그날은 상점들도 다 문을 닫고 모두가 쉬는 날이라 먹을 데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노르웨이는 결국 이 모양이라며 자기네들끼리 웃기 시작했다. 특별한 날은 다 쉬기 바쁘고, 카페들은 6시면 다 문 닫으니 이런 괜찮은 노르웨이로 꼭 한번 놀러 오면 분명 재미있을 거라고 장난치듯 말했다.

5월 17일 노르웨이의 제헌절에 볼 수 있는 퍼레이드


막창집을 나와 번화가 골목을 지나는 길엔 언제 생겼는지 모를 더 다양하고 화려해진 술집과 카페들이 유혹하듯 늘어서 있다. 노르웨이 친구는 한국의 이런 술집 거리가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다고 거듭 말했다. 나는 재차 강조하며 술집들만 너무 많아서 한국의 번화가들은 정말 별로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론 처음으로 이런 거리의 매력을 순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에 세 번째 여행 온 노르웨이 친구와 노르웨이를 몇 번 여행한 나는 서로의 나라에서 바꿔서 태어났으면 좋겠으며, 가끔 지금 사는 나라를 여행하듯 가끔 오면 얼마나 좋을까 농담 삼아 얘기하곤 했다. 하지만 그날은 노르웨이 친구가 유독 더 적극적으로 바꾸자고 말했는데 처음으로 1% 정도 망설여지긴 했다.


누군가의 말처럼 심심한 천국과 재미있는 지옥 중에 아직 나에겐 심심한 천국이 조금은 더 좋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이든 노르웨이든, 어디에서 태어났건 간에 자기 나라에 불만이 많은 건 마찬가지인가보다. 노르웨이가 싫다는 말이 묘한 위로를 주는 저녁이었다. 노르웨이로 돌아가기 싫다는 친구를 토닥이며 따뜻한 포옹으로 내년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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