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별하고 싶어요
"라캉이 말했잖아요,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김영하의 산문 <보다>를 읽고 모인 자리에서 20대 친구가 말했다.
"이 구절을 보면서 저도 느꼈어요. 남들이 예쁜 원피스 입은 걸 보면 나도 막 찾아보게 되고, 누가 엄마랑 전시회를 다녀온 걸 보고 저도 엄마에게 전시회를 가자고 했거든요."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친구라 의외로 느껴졌는데 허당같은 고백이 귀엽게 들렸다. 나도 최근에 지인이 입은 명품 원피스를 보고 일주일을 밤마다 몇 시간씩 검색하며 집착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혼자 피식 웃었다.
20대 친구와 내가 공감했던 구절은 이렇다.
'우리의 내면은 언제 틈입해 들어왔는지 모를 타자의 욕망들로 어지럽다. 그래서 늘 흥미롭다. 인간이라는 이 작은 지옥은.'
얼마 전에 산 책의 라캉 챕터를 읽어봤다.
'라캉의 '욕망의 그래프'를 가만히 보면 화살표가 그래프 전체를 이어주고 있죠? 이건 상상계, 상징계, 실재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중 하나만 끊어도 모든 원이 흩어져버리게 되죠.
이 세 영역은 매 순간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하나가 풀리면 모두 풀려버리니 하나를 따로 떼어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끝없이 상징의 연쇄 속에서 움직이고, 그 와중에 끝없이 멈추어 의미를 만들어내며, 매 순간 모든 것이 가능한 자유와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안을 동시에 느끼고 있죠'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과 실재와 의식과 무의식과 상상이 뒤섞여 결코 분리될 수 없이 이어져 있다니,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나를 발견했다고 해서 스스로에게 실망은 좀 덜해도 되지 않을까. 아직은 자신 없지만 곱씹어 생각해보게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