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위스키
금요일 같은 목요일의 밤공기가 사뭇 마음을 들뜨게 했다. ‘불목’을 외치며 셋이서 나란히 길을 건너 도착한 곳은 눈에 익은 연남동의 위스키바.
지나칠 때마다 '저곳은 꽤 어른 느낌이 나는 곳이야' 하는 생각에 통유리 너머로 흘깃흘깃 훔쳐만 보던 가게였다. 모노톤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바는 '쉬크'나 '모던'이라는 글자를 자신 있게 내뿜는 듯 했다.
마침 바텐더를 마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빈자리가 셋 있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아니 술을 폭넓게 사랑하는 주조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친구는 바텐더와 친숙한듯 가벼운 인사를 하고 다른 일행과 나는 메뉴도 없다는 위스키 바 내부의 모양을 눈에 익히기 바빴다.
친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마치 프랑스어 같은 외국어를 주고받듯 유창하고 숨 쉬듯 가볍게. 외국어를 마스터한 사람처럼 생소한 위스키의 언어를 주고받는 모습은 마치 유능한 국제변호사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게 했고, 그 언어는 낭만적인 어느 유럽의 언어같이 느껴졌다. 옆에 앉은 친구가 유난히 낯설었다.
"이 친구는 위스키를 처음 마시는 거라 좀 소프트하고 덜 스모키 한 걸로 주셨으면 하는데요, 아란 괜찮을까요."
"네, 아란Arran 몰트로 드릴께요. 그리고 원래 드시던 거로 칵테일 드릴까요. 오렌지를 섞어..."
스트레이트로 한 모금 입에 들어온 아란은 곧장 뜨겁게 한 바퀴를 둥글게 돌면서 퍼지더니 캐러멜 같은 끈적함과 깊고 달콤한 맛을 풍겨냈다. 신기했다.
친구가 주문한 위스키 칵테일은 오렌지 껍질을 향수처럼 뿌려 잔 위와 잔 주위에 뿌려졌고, 손잡이 부분에 스치듯 부드럽게 문질러 향을 담아냈다. 오렌지 스프레이가 투명한 칵테일 잔 위에 날아가듯 뿌려지는 모습은 모노 톤의 배경 덕분에 백화점의 오가닉 화장품 매장의 천연 향 스프레이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르 어떨까요."
"아 파르페 아무르 좋네요. 그걸로 주시고요."
"이건 바이올렛 사워예요."
"그리고 디사론노로 아마레또 사워 한 잔도 주세요."
"글렌모렌지로 마셔볼게요."
"발레친은 스모크향이 강하네요"
난생처음 듣는 위스키의 언어들은 목요일 밤과 어쩐지 꼭 잘 맞는 듯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