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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네 Apr 20. 2018

목요일의 연남동 위스키

난생 처음 위스키

금요일 같은 목요일의 밤공기가 사뭇 마음을 들뜨게 했다. ‘불목’을 외치며 셋이서 나란히 길을 건너 도착한 곳은 눈에 익은 연남동의 위스키바.

지나칠 때마다 '저곳은 꽤 어른 느낌이 나는 곳이야' 하는 생각에 통유리 너머로 흘깃흘깃 훔쳐만 보던 가게였다. 모노톤의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바는 '쉬크'나 '모던'이라는 글자를 자신 있게 내뿜는 듯 했다.

마침 바텐더를 마주 볼 수 있는 작은 공간에 빈자리가 셋 있었다. 위스키를 좋아하는 (아니 술을 폭넓게 사랑하는 주조기능사 자격증이 있는) 친구는 바텐더와 친숙한듯 가벼운 인사를 하고 다른 일행과 나는 메뉴도 없다는 위스키 바 내부의 모양을 눈에 익히기 바빴다.

친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줄줄이 나열했다, 마치 프랑스어 같은 외국어를 주고받듯 유창하고 숨 쉬듯 가볍게. 외국어를 마스터한 사람처럼 생소한 위스키의 언어를 주고받는 모습은 마치 유능한 국제변호사 같은 이미지를 연상하게 했고, 그 언어는 낭만적인 어느 유럽의 언어같이 느껴졌다. 옆에 앉은 친구가 유난히 낯설었다.

"이 친구는 위스키를 처음 마시는 거라 좀 소프트하고 덜 스모키 한 걸로 주셨으면 하는데요, 아란 괜찮을까요."

"네, 아란Arran 몰트로 드릴께요. 그리고 원래 드시던 거로 칵테일 드릴까요. 오렌지를 섞어..."

아란 몰트


스트레이트로 한 모금 입에 들어온 아란은 곧장 뜨겁게 한 바퀴를 둥글게 돌면서 퍼지더니 캐러멜 같은 끈적함과 깊고 달콤한 맛을 풍겨냈다. 신기했다.
친구가 주문한 위스키 칵테일은 오렌지 껍질을 향수처럼 뿌려 잔 위와 잔 주위에 뿌려졌고, 손잡이 부분에 스치듯 부드럽게 문질러 향을 담아냈다. 오렌지 스프레이가 투명한 칵테일 잔 위에 날아가듯 뿌려지는 모습은 모노 톤의 배경 덕분에 백화점의 오가닉 화장품 매장의 천연 향 스프레이를 떠올리게 했다.

"아무르 어떨까요."
"아 파르페 아무르 좋네요. 그걸로 주시고요."
"이건 바이올렛 사워예요."
"그리고 디사론노로 아마레또 사워 한 잔도 주세요."
"글렌모렌지로 마셔볼게요."
"발레친은 스모크향이 강하네요"

난생처음 듣는 위스키의 언어들은 목요일 밤과 어쩐지 꼭 잘 맞는 듯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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