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년이 온다>를 읽고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김대중과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을 나쁜 사람으로 알고 자랐다. 경상도와 전라도 출신 사이에 싹튼 지역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환경이었다. 악한 감정은 없더라도 전라도에 관련된 것을 편한 시선으로 대할 수는 없었다. 노무현 정권 말 무렵 상경했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이 전혀 달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몇 년이 지나고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영화를 접하고 마음 깊이 아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근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마음 한구석이 죄책감으로 편치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의 생존자와 유족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책한다는 구절에 알 수 없는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내가 부산에 있을 때,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사실 잘 떠오르지 않는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불편한, 번거로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핍박받은 사람들의 지나간 이야기 정도로 인식했던 듯하다. 요즘에야 인터넷과 스마트폰 덕분에 어린 학생들도 비교적 객관적인 정보의 접근성 혜택을 누리지만, 나는 상경을 해서야 물리적, 지리적 환경에 얽매이지 않는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이제는 편견이 걷혀서일까.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임에도 집단적 죄의식이나 책임감 같은 마음 아픔과 미안함을 느낀다. 소극적으로 바라보았던 예전과는 달리 남 얘기 같기만 한 어느 지역만의 사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80년 봄, 서울로 이사 왔다. 그리고 그녀가 살던 광주 집으로 이사 온 소년이 5.18로 희생됐다. 그녀는 자신이 차가운 장판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숙제를 하던 방, 그 부엌머리방을 소년이 쓰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10살이었던 그 해의 무더운 여름을 건너오지 못한 소년을 생각하며 괴로운 마음을 힘겹게 드러낸다. 5.18의 살육은 한강에게 깊은 문학적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역사의 부채는 작가만이 지닌 것이 아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없었다면 87년 대통령 직선제가 가능했을까. 국민의 저항을 군부 세력이 두려워하기나 했을까. 이들의 희생 덕에 우리 모두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소설 첫 장에 나오는 한 어린 소년은 궁금해했다. 나라가 죽인 시신을 사람들이 굳이 태극기로 감싸고 애국가를 불러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어린 소년의 질문을 기억했던 마지막 즈음에 등장하는 화자는 그때 자신이 질문을 받았다면 이렇게 대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많은 이가 희생된 안타까운 누군가의 일이라고만 생각한 때가 있었다. 역사 수업에서 한 줄로 정리한 필기에 지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이제라도 마음 깊은 애도를 빌어본다. 더 많은 애도가 이어졌으면 한다.
#한강 #소년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