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미술관>을 읽고
예전에 친구에게 명화가 그려진 엽서를 선물받은 적이 있다. 뒷장에 적힌 편지에는 미술관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만났을 때 마음이 아련해져서 한동안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적혀있었다. 참으로 감수성이 풍부하다고 느꼈다. 그림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나서 다시 보면 무언가가 머리로 이해하면서 느껴지는 듯한 적은 있었으나, 사실 나는 그림에서 무언가를 느끼는 타입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구원의 미술관>은 내게는 생소한 책이었다. 저자는 힘든 시기에 그림으로 위로받은 경험을 토대로, 미술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담담한 감동을 전한다.
저자 강상중은 규수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재일교포의 아들로 태어나, 융화되기 힘든 일본사회에서 도쿄대 교수로 출세한다. 성공한 그도 자신과는 달리 자살을 선택한 아들의 운명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인생에는 가능성으로 무장해서 뭐든지 될 것같은 때가 있고,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때도 있다.
이 책에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무기력한 일본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며, 무기력에 빠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주어진 상황을 견디고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위로와 성찰이 담겨있다. 일본의 특수한 상황뿐 아니라 현재는 모더니티의 번영이 끝나고, 모더니티가 쇠퇴하는 몰락의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자신이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 무기력한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자는 그림에서 답을 찾는다. 그가 젊은 시절, 도피하듯 떠난 유학 중에 '자화상'(1500년)이라는 그림을 마주하고 처음 그림 앞을 떠날 수 없는 경험을 한다. 예수같은 모습을 한 화가 뒤러가 그린 결연한 눈빛의 자화상을 보고서는 '나는 여기에 있어. 당신은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묻는 듯 느꼈다고 한다.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깊이 자각한 사람의 모습을 느꼈고, 과거의 인물로부터 시대를 초월한 위안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림 하나로 삶의 전환기를 맞은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할만큼 그 시기를 회상한다.
그리고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마네, 클림트, 에곤 실레 등 유명 작가들의 그림부터 동서양의 다양한 작품들을 죽음과 재생, 기도, 정토, 에로스 등의 주제로 엮어서 소개한다. 각 그림은 시대배경과 상세한 설명이 덧붙여지기도 하지만 어떤 그림들은 순수하게 배경지식과 상관없이 저자의 개인적인 취향대로 감상하기도 하는데 저자도 말하지만 굳이 이해하지말고 각자의 감상대로 느끼기만해도 충분하다는 말은 미술 감상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듯해서 반갑기도 하다.
책에서 가장 감동을 받았던 부분은 동식물에 관한 그림을 이야기하는 <7장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다. 두꺼비나 벌, 딱정벌레 등이 무심하게 그려진 그림은 저자의 설명으로 감동이 배가 됐다. 과거나 미래없이 '지금, 여기'라는 한순간만을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동식물들이 어쩌면 어리석은 삶의 방식을 산다고 보여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반대로 과거를 지워없앨 수 없기에 후회하고 미래를 고민하기에 앞날의 불안감을 감당하지 못해 주저않기에 그만큼 고통을 안고 살며, 인간의 '예지'의 능력을 획득하는 대가로 불행까지 짊어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생물들은 과거의 아픔이나 미래의 불안감에도 붙들리지 않고, '지금, 여기'의 반짝임만으로, 즉 '무심'으로 살아가기에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닌 매순간을 완전히 불태우듯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다. 현재를 묵묵히 살아가는 법을 배운 셈이다.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가장 잘 나타낸 부분은 <10장 받아들이는 힘>에 소개되는 도예인 듯하다. 보통 예술 작품은 작가의 전적인 컨트롤 하에 탄생하지만, 도예는 작가가 빚고나서는 가마의 불이라는 작가 외적인 요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할 수 있는 최선은 다 하돼, 나머지는 불에 맡기고 결과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결과물을 부숴버리고 다시 빚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교훈과 일맥상통하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실은 한자로 된 고사성어보다 영어 문장이 더 떠올랐다. I will do my best, and god will do the rest. 동서를 막론하고 지혜를 구하는 자세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고작 미술 작품에서 위로를 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자는 감동하는 힘에 대해 역설한다.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사람은 더 이상 그 무엇에도 감동하지 않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무언가를 보고 감동할 수 있다면 그건 살아갈 힘이 되살아났다는 뜻입니다." 무언가에 감동하는 힘이란 곧 살아가는 힘이라는 말에 따뜻한 위로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