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를 읽고
초반부를 읽는 동안 많은 영화가 스쳐 지나갔다. 설국열차, 울버린 엑스맨, 더랍스터, 아일랜드 등등. 개념 일부분이 비슷한 것도 포함해서 이 소설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 꽤 많겠다 싶었다.
쓰여진 시기는 1930년대, 소설 속 배경은 2500년 경. 생생한 묘사하며, 요즘의 추세로 봐선 2500년 경에는 실제로 소설에서 쓰여진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도 꽤 든다.
인간은 병(Bottle)에서 태어난다. 태아는 더 이상 사람 몸에서 잉태되지 않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가족도, 관계도 없는 세상. 개개인으로만 존재하고, 만인은 만인의 것으로 일부일처제는 들어보기만 한 유물 같은 관념이다.
<1984>,<우리들>과 함께 <멋진 신세계>는 디스토피아 소설의 3대 고전이라고 한다는데 많이 들어보았던 <1984>와 비교한 내용이 재미있다.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 소설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두 소설이 그리는 디스토피아가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닐 포스트먼에 따르면, 오웰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공포와 기만이 지배하는 세계이며, 올더스 헉슬리가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욕망과 말초적인 자극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오웰이 책을 금지할 자들을 두려워했다면, 올더스 헉슬리는 아무도 책을 읽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책을 금지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을 두려워 했다고 할 수 있겠다. …” (나무위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디스토피아란 역(逆)유토피아라고도 한다. 가공의 이상향, 즉 현실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묘사하는 유토피아와는 반대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을 가리킨다.’)
이 책을 함께 읽고 독서모임에서 사람들끼리 얘기할 때 가장 큰 관심을 끈 소재는 ‘소마(Soma)’라는 마약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5단계)이 정해져 있고 감정도 무의식적으로 훈련되며 애초에 선별된 계급별로 지능이 조작된다. 신분에 맞추어 직장을 배분하기 때문에 원하는 지위에 오르지 못해 좌절할 일도 없고, 하위계급이라고 학대나 착취를 당하지도 않는다. 어느 누구도 불행하지 않고, 굶주림과 실업, 가난도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도 전쟁도 없다. 그래도 혹시 생길 수 있는 우울감 등이 찾아올 때는 이 ‘소마’라는 마약을 복용하면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아무런 불만도 없다.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소마라는 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들 말했다. 하나 소설 속의 소마는 말초적인 욕구만을 만족시키고 깊은 생각을 할 필요게 없게 만들어 국민을 우매하고 통제하기 쉽게 만드는 약물이라고 한다.
존이라는 인물은 이 세계와 동떨어져 존재하는 현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존재하는데 그 곳 사람들은 5단계 계급에 끼지도 못하고 ‘야만인’으로 분류된다. 소설의 끝부분에는 존과 이 신세계를 만든 문명국의 통치자 무스타파 몬드가 이런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신세계인) 문명국은 통치자가 세상을 지배할 목적으로 개인의 행복은 신경 쓰지도 않고 세상을 안정화시키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곳이다. 존은 문명국과 야만국 사이에서 괴로워하다 자살을 선택한다. 그가 신에 의지하거나 셰익스피어를 읽을 때 느꼈던 행복감은 문명국에서는 허락되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처럼 살면 안락할지는 모르나 신과 셰익스피어가 주는 행복감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개인이 행복한 사회, 개인이 고민하고 꿈 꿀 수 있는 세상을 바랐을 것이다. 인간적인 가치를 보존하려면 (소설에서 말하는) 원시사회의 불편, 즉 우리가 겪는 세상살이의 어려움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문명국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기계나 다름없다 느껴졌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동시에 세상살이의 어려움도 동시에 감내하면서 사는 것이라는 게 위로처럼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