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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Apr 18. 2021

우리 마을 은퇴자들의 모습

세미 은퇴를 꿈꾸며

이렇게 작은 마을에도 부동산 열기가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동네에 "for sale"이 붙은 집이나 건물들이 하나씩 팔려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새로운 사람중에 가장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60대로 보이는 앞집의 "죠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가게에 처음 들렸을 때, 자신이 아는 "한국친구"가 "네 이름이 한국말로 무엇을 뜻하는지 아냐며, 자신을 골려먹었다"며, 그 뜻이 뭐냐고 묻는다. 나는 웃으며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손을 휘저었지만, 아마도 그는 이미 알고 있으면서 모른척 시치미를 떼는지도 모른다.


죠지가 들어온 건물은 그전에 가구점을 했던 곳인데, 사장이던 어머님도 세상을 떠나고 아들 혼자서 고군분투하다가, 더이상 경영할 수가 없어서 매물로 내놨었다. 가구점은 인수하지 않고 건물만 팔린 시점이 2년 정도 되었다. 상당히 큰 건물이고, 가구점 주인이 그동안 잘 관리해왔는데, 도회지 사람이라던 새주인은 한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다. 그런 다음에 새주인은 이 건물을 다시 시장에 내놓았고, 죠지가 이걸 사서 들어온 것이다. 가구점 주인은 자신의 건물이 한사람을 거쳐가는 동안에 15만불 정도 올라버렸다고 아쉬워했다. 그가 건물 관리에 정성을 들이던 것을 잘알기 때문에, 그의 서운함도 이해할만 했다.




어느날 가게를 보던 막내가 내게 와서, 죠지가 저녁먹으러 오라고 했다고 한다. 온가족 초대를 했고, 다른 동네 사람들도 초대했다고. 몇번이나 와서 말했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무척 서운해할 것이라는 것이다. 남편에게도 같은 초대의 말이 와서, 가줘야 할 것 같긴 했다. 코로나 이후로 사람들의 초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초대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스스럼없이 할수 없는 "대사"가 되어간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와달라"고 하는 그의 초대에서 남다른 그의 면모를 엿볼수 있다. 그것도 케네디언 스타일로 며칠전에 초대장을 보낸 것도 아니고, 오늘 저녁에 꼭와, 이런식이었으니 말이다.


가게문을 닫고 그집(건물)에 갔더니, 벌써 여러 사람이 와서 앉아있었다. 우선 변호사 부부, (새로 이사왔다는) 모르는 젊은 가족, 가구점 옆 건물에 사는 조앤네 부부 등이 눈에 띄였다. 죠지의 부인이라고 소개한 여인은 토론토에 사는데, 주말이어서 딸과 함께 왔다고 한다.


그날의 음식은 모두 죠지가 만들었다. 그는 그리스 사람이다. 자신의 음식을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면 기쁘다는 그는, 있는 동안 자리에 앉지 않고 왔다갔다하면서 서빙과  방문자들과 대화한다. 그의 부인과 딸은 교사라고 했다. 부인은 토론토에 있는 아들에게 집을 물려줬고, 지하로 짐을 옮겼는데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고 정리되면 올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남편은 죠지가 안내해서 건물 이곳저곳을 보고왔다. 내가 "나도 데려가지" 했더니 옆에 있던 죠지의 부인이 "다음에 내가 오면 한번 구경시켜주겠다"고 말해줬다. 가구점일때 와봤는데, 곳곳에 공간이 많다. 그 넓은 곳을 어떻게 다 활용할지 모르겠다. 우리 동네에서 크고 반듯한 건물중 하나로 꼽힌다.


돼지고기 요리, 닭고기 요리, 샐러드, 감자요리 등등이 있었는데, 마침 나는 그때 한주간 1일1식을 하던 참이었기 때문에 고기 요리는 먹지않고, 야채만 조금 먹었다. 간단한 초대라고 생각했는데, 꽤 많은 준비를 하고 동네사람들을 불렀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면서 음식을 먹는 자리여서 그랬는지, 비밀회합을 하듯 스릴만점의 저녁이었다. 그당시엔 미장원, 식당등이 문을 열던 때였지만, 자유롭게 소통할 때는 아니었다. 나는 내옆에 앉아있는 조앤과 대화를 많이 했다. 겉으로 보기엔 오만한 "백인여인" 처럼 생각됐는데, 소근소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눠줬다. 커텐만드는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도 은퇴를 한것이다. 은퇴 이후엔 노인들 병원 데려다 주는 일등을 하다가, 며칠전에 옆동네 "달라라마"에 취직했다고 했다. 파트타임 일인데, 그날 인터뷰하고 그 담날부터 출근했다며, 그렇게 쉬운 취직(?)은 처음이라고 웃었다. 돈 때문이라기 보다는 소일거리로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자신의 남편도 오랫동안 다니던 홈 하드웨어 일을 그만두고, 옆마을 월마트에 다닌다고 했다. 저녁시간에 물건을 정리하는 일인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하며, 큰 부담없고, 책임질 일이 적어서 만족해하며 일한다고 말한다.


그의 남편은 내게 "예전에 글을 쓴다고 들었는데, 잘되고 있느냐"고 물어서 깜짝 놀랬다. 이 동네로 이사오고, 동네신문 담당자와 우리집에서 조기유학중인 아이들에 관한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것 같은데,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너무 놀랐다. 내가 하는 이런 작업이 "글쓰는 일"에 속하긴 하나, 바로 그렇다고 말하긴 쑥쓰러웠다. 옆에서 딸이 "엄마가 지금도 글을 쓴다"고 거들어주었다.


죠지는 그 건물에 많은 꿈을 갖고있는 듯이 보인다. 말하자면, 꿈꾸던 것을 현실로 갖게 되어서 무엇을 할까 즐거운 고민에 빠진 사람의 모양이다. 아침만 제공하는 식당을 만들까 생각한다며, 몇번인가 아침식사를 만들어 남편에게 갖다주어서 나도 맛을 보곤 했다. 어느날은 점심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더니 자신은 손이 커서 음식이 꼭 남으니, 남은 음식가져오겠다고 했던 적도 있다. 남편은 죠지를 다 믿는 편은 아니다. 약간은 "떠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점심을 안먹고 기다리라는 그의 말을 믿지 않더니, 결국 그는 그날은 음식을 가져오지 않았다. 어떤 날은 담배를 사가면서, 집이 하도 넓어서 어디에 지갑을 놨는지 몰라 그냥 왔다고 하면서 담배를 달라고 하기도 한단다. 물론 그집에서 일하는 아이를 시켜 돈을 보낸다. 계산이 분명한 캐네디언같지 않고, "정스런" 한국사람과 닮은 점이 있는데, 그점 때문에 오히려 주민들과 충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누구라도 그의 건물앞에 지나가다가 그와 부딪치면, 한동안 함께 말을 나눠야 한다. 토론토에 있는 친구들을 다 데려올 것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발언도 가끔 한다. 우리 가게 건물에도 관심을 갖는다. 헐값에 어디 넘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자신의 건물을 리노베이션하러 토론토에서 "가이"들이 오면 우리 건물을 보여주고 싶다고 그런다. 그러더니 엊그제 두명의 건장한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줬다. 그의 "가이"들이다. 쌍둥이처럼 덩치가 비슷한 그둘은 무쇠로 만들어진 것같은 몸을 갖고 있었다. 소파를 한사람이 척척 들것 같은 무시무시한 근육덩어리 남자들이었다. 조금 소설을 쓰자면, 죠지가 어떤 조직의 보스여서 이 마을의 덩치 큰 건물과 비지니스를 접수하여, 이 마을을 거점으로 무슨 모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중고가게를 다리밑에 연 남자도 죠지의 친구라고 들었다. 그의 가게 입구에 무지개색 장식이 되어있는 걸로 봐서 그는 "게이"라는 동네사람들 수군거림이 있었다.


린다는 "죠지"에 대해서 비판적이기도 하다. 그녀도 "죠지"의 초대자리에 우리가 간 다음날 저녁에 갔다왔다고 했다. 그녀에 따르면 "죠지"와 그 부인은 이혼했고, 이제는 친구 사이라고 했다. 이것이 맞는 말인지는 얼마동안 시간이 지나봐야 알것 같다.


린다를 소개하자면, 우선 이말을 해야할 것이다. 그녀는 몇달전에 우리 가게에서 3달러짜리 스크레치 티켓을 샀는데, 75,000달러 잭팟에 당첨되었다. 남편이 "이거 어때?" 하며 추천해준 그 티켓이었단다. 그녀는 그 고마움의 댓가로 남편에게는 500달러, 가게를 자주 보는 막내에게는 300달러를 선물로 줬다. 예전에 우리 가게에서 산 복권으로 10만 달러 정도의 잭팟에 맞은 두명의 우체국 직원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선물을 주진 않았었는데, 린다는 그런면에서 후한 편이다.


여기저기 부동산에 투자해놓은 것도 있고, 자신의 사업도 하는 린다는 알부자이기도 한데, 외모상으로는 사자머리에 부스스하고, 성격이 급하고, 가게에 들어오면 한번에 100달러 정도 스크레치 티켓을 사는 속없는 사람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최근에 또 스크레치 복권에서 큰돈이 들어와서인지 복권에 지출하는 비용이 더 늘기도 했다.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린다는 "이제는 가게를 접고 좀 가볍게 살아보고 싶다"는 남편의 이야기에 "이럴 때는 돈을 잘 모아야 할때"라며 "이 가게는 자신이 볼때 cash cow로 꼭 붙들고 있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캐쉬 카우란 말을 몰라도, 그 의미가 들어와서 사전을 찾아보니 역시나 꾸준히 돈버는 건물, 사업이란 뜻이란다.



그랬던 린다가 진지하게 "이 건물을 팔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와서, 어느날 건물을 보자고 요청하는 그녀에게 전날 후다닥 청소좀 하고 집을 보여줬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리의 "세미 은퇴"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린다는 가게에는 관심이 많이 없고, 2층에 있는 세개의 아파트를 세를 주면 꽤 좋은 벌이가 될것이라고 생각하는 듯싶다. 렌트 사업에 관심이 없고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도 하지 않는 우리에 비해서 린다는 이 건물의 잠재가능성에 주목한다.


가게를 경영할 사람을 따로 찾고 있노라는 이야기도 들리고, 우리와 흥정에서 서로 맞아야 하니,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린다는 우리에게 이 건물을 왜 "cash cow"라고 해서 건물가치를 올려놓았는지, 지금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죠지"와 마찬가지로 "린다"도 떠벌이 일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에 의해 조용한 동네가 들썩인다.


마지막으로 폴과 헬렌을 이야기하자.

그들은 올때는 정말 화려하게 등장했다. 폴은 은퇴한 교수였다. 그는 이런 작은 마을, 예전에 방앗간이었고, 20여년간 비어있던 건물을 (분명히) 싸게 사서 들어왔다. 5층짜리 건물, 온갖 새들, 작은 짐승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있던 그 건물을 치우고, 재정비하고 그렇게 은퇴의 고된 나날이 열렸다. 그 당시의 동네신문에 따르면 폴은 자신의 은퇴를 시작할 꿈꾸던 곳을 찾았다고 좋아했다. 은퇴는 고단했던 삶을 쉬는 것이었어야 하는데, 그는 아직도 에너지가 많은 60대였던가 보다.


그 안에 있는 온갖 쓰레기를 치우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골이 아프다. 동물들의 시체, 그들의 분비물, 옛 주인이 남겨놓았을 잡동사니들이 몇트럭으로 실어나갔다고 들었다. 그 이후에도 건물을 재정비하는 일은 어땠을까? 그런 과정을 거쳐서 "Nature's Mill Works"라는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1층 한쪽편엔 주인들이 살고,

그 한쪽편에 기념품가게가 생겼다. 많은 예술작품들과, 손작업으로 탄생한 것들, 그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들인 특이한 물건들이 진열되었었다. 그리고 2층은 전시관을 만들었다. 동네 화가들이 그린 그림, 그릇등 공예품들, 손뜨개 작품들, 사진들이 그곳에 걸려있었고 때때로 전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매년 정초에는 동네 사람들을 불러 작은 파티를 열었다. 우리도 몇번 초대받았는데, 우리는 그 모임에 한두번 참석했던 것 같다.  정착 초기 때라 언어등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쭈빗대게 되니, 한두번 초대에 빠지자 이제 그 초대장은 오지않게 되었던 것같다. 이제는 그런 일을 할수도 없게 됐고, 할사람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방앗간 건물은 강을 낀 수풀을 뒤쪽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 수풀은 우리에게 고비와 달래를 제공해주는 자연밭이다. 폴과 헬렌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그랬는데, 얼마전 폴과 헬렌이 이 동네를 떠났다. 뱅쿠버에 있는 딸 곁으로 이사를 간것이다. 은퇴후에도 정력적으로 살던 그 둘은 이제 70중반쯤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찾아떠나는 그들을 보기 위해 남편과 나, 그리고 친구 소피아가 함께 다녀왔다. 폴은 정신이 반쯤 나간듯이 보였는데, 그전날 자동차사고가 났다고 말해줬다. 그 차를 고치러 갔다줬다고 하면서, 갈때까지 일이 끊이지 않는다고 머리를 흔든다. 버려진 방앗간을 고쳐 사람살만하게 만들어놓고, 가게까지 만들어서 페이슬리에 볼거리를 제공했던 그들이었기에 서운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고, 저렇게 헤어지는 게 사람살이 아니겠나? 벵쿠버에 가면 연락하라고 했지만, 우리 모두 마지막 만남이라는 걸 안다.



우리도 이 동네에서 산지 23년이 되었다. 죠지처럼 오늘 저녁 밥먹으러 와, 이렇게 초대해주기도 하고, 린다처럼 당첨금을 나눠주기도 하는 이런 동네가 내가 꿈꾸는 "이웃과 터놓고 지내는 동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네친구와 산책도 할 수 있는 곳이니 말이다. 그런데 아직도 꿈을 찾아 헤맨다. 첫째로는 이곳은 머물곳이 아니라, 떠날곳으로 머리속에 박혀있고 이웃과 소통한다고 할때 한국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나보다.


린다 때문에 "세미 은퇴계획"에 조금 더 힘이 실린다. 남편과 건물을 처분한후 어떻게 살고싶은가? 어떤 가당찮은 계획이라도 한번 테이블에 올려보자고 말했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니지만, 새롭게 판을 짜고싶은 마음은 있다.


폴과 헬렌처럼 자신들의 꿈의 건물을 사서, 새롭게 정비하고, 작은 갤러리를 만드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조앤과 그 남편같이 가벼운 파트타임으로 소일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린다처럼 "투자목적으로 건물"을 구입하여, 새로운 소득 소스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앞집의 죠지도 어쩌다 만난 건물에 빠져서 무엇을 해야할지 정하지 않고, 이걸할까 저걸할까 고민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오늘은 산책하면서 보니, 꽤 넓은 터를 가진 집을 사서,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는 노부부를 만났다.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정원에 수선화가 많이 자라있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니, 자신들은 캐나다 북쪽, 이누잇들이 살기도 하는 옐로우나이프에서 인터넷으로 집과 터를 보고 반하여 이사들어왔다고 소개한다. 그들이 이사온후 집이 참으로 아름답게 변한 것을 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남편과 돌아오는 길에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린다의 습격(?)으로 인해 조금 피부적으로 다가온 세미은퇴후에는 가능한한 단순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려면, 많은 것을 정리해야 하는데, 집이 없이 살면 어쩔수 없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아직은 머나먼 이야기가 될지 모르지만, 건물을 처분하게 되면, 당분간 캠핑 트레일러에서 살아보면 어떨까 싶다. 처음에는 그냥 떠돌이로 돌아다닐 생각을 했는데, 남편의 한의원이 요즘 선전하고 있어서, 가까운 곳에 정박하고 일을 하면서 트레일러에서 사는 것이다. 몰아서 환자를 받고, 나머지 시간, 여행이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돌아다닌다. 트레일러를 끌고갈 때도 있을 것이고, 차로 여행할 수도 있다. 다행이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먼곳으로의 여행도 갈 수 있을 것이다. 중간중간 시간과 여유가 되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할 수도 있다.


이런 꿈을 오랫동안 해왔던 것처럼 매일이 새로울 그날을 생각하면 설레인다. 살면서 모아놓은 많은 잡동사니, 가구들을 처리할 절호의 기회들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들을 내안에 장착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이 지으신 나의 모습을 회복하는 기간"이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


그러다가 어디에서 정착해야 할지 판단이 서면 그때서 살곳과 살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계획이 단순해서 금방 지칠지도 모르지만, 최대 1년 정도 떠돌이생활을 한 다음에 정착하고 싶다. 그때되면 아무래도 "안주에 대한 꿈"을 다시 갖게 될것이다.


태어나서 (마치) 처음으로 내 멋대로 새삶을 설계하는 느낌이다. 예전에도 그래왔는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가슴과 머리를 열어놓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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