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생학교"

엄마의 요양원 입학기

by mindy

요양원 오시기로 하면서 가져갈 옷을 골라놓고, 그곳에 일일이 표시가 나게, 천을 깃대어 바느질해 놓으셨다. 요양원에 가면, 옷들이 모두 섞일텐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렇게 구별해놓으셨다고 하셨다. 그런데 엄마가 도착하자 마자, 일하는 사람들이 엄마의 옷을 모두 수거해갔다고 했다. 옷에 이름표를 달기 위해서라며. 그리고 집에서 가지고온 옷걸이도 필요없다며, 도로 가져가라도 했다. 그곳서 일해주시는 분들이 옷장 정리도 다해드릴테니, 아주 안심하라고 했다며 엄마는 믿기지 않는 표정이시다.


엄마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것들을 가져오셨다. 가져갈 것 하나하나에 얼마나 신중을 기하시는지, 삶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니, 남는 것은 정말 보따리 몇개로 축소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봤다.


엄마의 방에 처음으로 들어섰을 때, 아 이런데라면... 숨을 들이쉬었다. 휠체어가 들락날락할 수 있게 엄마의 방문은 보통 사이즈보다 훨씬 컸다. 침대와 옷장, 서랍장이 깨긋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엄마와 동생이 먼저 들어와있던던 지라, 나는 엄마집(?)의 첫번째 방문자가 된 느낌이었다. 원장 선생님이 테스트후에도 동생이 내려온 다음에 올라가야 한다고 해서, 로비 한쪽편에서 나는 오래 기다렸다. 나중에 텔레비전을 날라줘야 하니, 둘이 올라가는 걸 허락해달라고 간청해서, 간신히 엄마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약간 상기된 엄마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계셨다.


방은 아주 넓직했다. 화장실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넓은 공간이었고, 그곳에는 엄마가 사용할 치솔, 치약, 틀니통까지 엄마의 이름이 다 붙여져 진열되어 있었다.


전면이 큰 유리창으로 되어있었고 침대에 앉으나 누우나 밖을 바라볼 수 있어 숨이 트인다. 엄마의 방은 6층이어서 토론토 미들타운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내가 감탄을 하면서 밖을 바라보자니, 엄마가 어떠냐고 물었다. 너무나 마음에 든다면서 엄마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주 좋다고 하셨다. 방이 서향인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그런것까지 바랄 수 있겠냐고, 그것 하나 빼고는 아주 좋다고 하셨다. 엄마의 아파트는 1베드룸과 거실, 부엌이 있었지만 이 방은 엄마의 방과 거실을 합해놓은 정도 크기라고 봐야할까? 그러니, 삶이 줄어든 기분보다는 부엌이 없어서 밥해 먹을 공간도 없는 쾌적한 호텔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다.


나보다 먼저 올라왔던 동생은 6층 담당자와 함께 그곳 시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큰 발코니가 있어서 날씨가 좋을때는 야외활동도 가능하다고 한다. 야채를 키울 수 있고, 꽃도 있다고 한다. 나는 보지 못했지만, 작은 정원이 그곳에 있다는 말만 들어도 안심이 된다.


벽에 붙은 프로그램을 보니, 아침운동도 하고, 노래모임도 하고, 거주자들이 월례모임도 한다니 공동으로 모이는 널찍한 공간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좋아하는 가요무대 공고가 붙어있는 걸 보니, 텔레비전을 같이 볼수 있는 공간이 있다싶다.


누구나 말을 붙일 수 있는 간호사가 밖에 대기해 있어서, 어르신들의 어려움을 직접 해결해준다. 내가 그곳에 있을 때에는 점심식사 시간이 다가온다면서, 조금 후에 방문해달라는 어떤 분의 전갈이 있었다. 첫날이니, 엄마의 식사모습을 잠시 참관해도 된다고 한다. 우리가 정리하느라 가지않고 있었더니, 담당자분이 모시러 왔다. 음식은 서양식과 한식이 있다고 어떤 것을 드시겠느냐고, 물어와서 한식을 먹겠다고 했다. 식당에는 삼삼오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앉아계셨다. 엄마는 조용한 할머니와 함께 식사를 하시게 되었는데 곁눈으로 보니, 한 테이블에서는 활발한 대화가 오고가고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선 간호사가 할아버지께 음식을 떠먹여주고 있다. 그분 외에도 몇분 더 옆에서 시중을 드는 분들이 있었다.


테이블은 모두 투명 칸막이로 막아있어서 안전해보였다. 나중에 식당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여쭤보니, 음식이 아주 맛있게 나왔다고 했다. 엄마는 소고기, 닭고기, 돼지고기등을 먹지 않는 페스크 베지테리언이어서 이번에 그 이야기를 해주니, 영양사가 깜짝 놀랐다. 많은 음식이 고기를 사용해서 하는데, 어쩌나 하면서도 그래도 계란, 생선등을 먹는다하니 안심하는 눈치였다. 그날 먹은 음식은 시금치, 김치, 생선전에 된장국이었는데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엄마의 입맛에 맞았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엄마방으로 돌아와서 텔레비전 연결을 했다. 엄마가 집에서 보시던 한국 텔레비전이 나오는 채널을 이곳으로 옮겨서 설치했다. 잠이 안오면 텔레비전이라도 있어야 가능하니, 엄마의 안심요소가 한가지 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엄마방으로 가는 동안 모두 방문을 열어놓고 있어서 다른방을 잠깐씩 들여다봤는데, 액자와 많은 보조의자등, 여느 집 거실과 다를바 없이 아늑한 곳도 많았다. 그러고보니, 엄마는 너무 많이 내려놓으신 것이 아닌가싶다. 당신은 이땅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것처럼, 미니멀리즘이란 말은 모르시면서 그걸 실천해내셨다. 조금 더 지내다보면, 무엇이 더 필요할지 우리에게 말해주시리라 본다.


그리고 이날 간호사가 요청한 몇가지를 해결해야했다. 가령 엄마가 요양원에서 아플때, 바로 응급실로 가겠는가, 아니면 회진을 오는 의사를 기다려 그때 진료를 받을 것인가와, 심폐소생술을 할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작성해야 했다. 새집으로의 이사와 새환경에 대한 놀라움으로 "사무적"인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엄마에게 간호사가 이야기한 내용을 알려주며, 어떻게 하시기를 원하시냐 하니, 응급상황엔 병원에 가야할 것이고, 심폐소생술까지 해서 목숨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 서류에 사인을 받아 간호사에게 갔다주니, 언제든 수정할 수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해줬다.


코로나가 오기전에는 프로그램등이 모두 활발하게 진행이 되었다고 했다. 4층부터 6층까지 환자들이 있는데, 주일에는 예배를 같이 보고, 가끔씩 미용 봉사를 나오는 사람들에게 머리손질을 받기도 하고, 공연등 볼거리들도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의 활동을 돕는 방법을 꾸준히 연구하고 실행한다고 했다. 미용사인 막내동생도 앞으로 엄마 요양원에 미용봉사를 나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는 중이다. 프로그램 담당자는 내게 와서 엄마가 어떤 문화활동을 좋아하는지 물어봤다. 나는 clay로 뭔가 만들어보고 싶어하셨는데, 그걸 못하고 왔는데 가능할 지 모르겠다고 알려줬다. 현재는 각층마다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며, 소통을 최소화하고 있어서 혹시 모를 전염병 확산에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는 무궁화 한인요양원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내가 30여년전 한인 신문사에 근무했을 때부터 양로원 건립에 관한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건립부터 완공까지 숱한 역사를 가지고 태어난 곳이 무궁화요양원이다. 어르신들이 입주하기 시작하고 잘 운영이 되다가 몰게지 상환이 밀려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 것도 수년전 일이다. 법정관리기관이 이 요양원을 입찰에 붙이게 되어, 교민사회에서 모금운동이 크게 일어났었다. 340여만 달러에 달하는 액수가 모금되어 입찰했는데, 실패하여 영리단체에 넘어가게 된다. 그때만 해도 요양원을 잃어버리는줄 알았다.


그랬는데, 이번 팬데믹이 요양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게 된다. 무궁화 요양원 입수업체가 운영하는 다른 요양원에서 코로나 환자가 많이 나왔고,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영리단체가 운영하는 요양원의 실체가 드러나게 된다. 요양원은 정부에서 보조금도 많이 나오고, 환자에게서도 돈을 받으니, 잘하면 돈이 되는 사업인가 보다. 돈을 우선하게 되면, 요양원의 운영에 하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요양원에 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볼수 있다.


이런 참상이 보도되면서, 입찰에는 성공했지만, 정부의 최종허가를 기다리던 인수업체에 대한 우려가 한인사회에서 강력하게 일고, 탄원서, 텔레비전 탐사보도, 진정서등으로 재고해달라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비대면 공청회가 알렸는데, 이구동성으로 영어가 안되고, 한식을 먹어야 하며, 한국문화를 지켜가야 하는 우리 부모님들을 한인이 아닌 사람들, 관리가 부실한 업체에 맡길 수 없으며, 한인이 관리하는 무궁화 한인 요양원에서는 단한사람의 환자도 나오지 않았던 것등을 자랑스럽게 예로 들면서 우리힘으로 우리 요양원을 지킬 수 있게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 요양원의 가족협의회에서도, 입주 환자도 호소를 했다고 한다.


한인사회 각계가 한마음이 되어 이 운동을 일으켰고, 기사회생의 기로에 지금 서있다는 기사들을 접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모금운동할 때 기부를 했었다. 그때 입찰에 성공하지 않으면 모두 돌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했었고, 입찰에 실패하여 나는 기부금을 돌려받았다. 추진위가 애쓴 것은 알지만, 약속대로 돌려받아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다시 팔을 걷어부쳤으니, 나도 재기부를 했다. 한인요양원 인수추진위원회로는 아리랑 시니어센터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혹시나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주소를 방문해보면 된다.


https://aafcc.ca/ko/who-we-are/



이번 요양원을 방문하고서, 이렇게 완벽하게 운영되는 시설이 있을 수가 있는가, 너무 놀랐다. 물론 치매가 오고, 중증의 환자들은 얼마나 좋은 시설에 있는지, 당신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아직은 정신이 정정한 엄마를 볼때, 엄마의 만족도는 나날이 높아져간다. 한국인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엄마는 이민 30여년만에 한국말이 통하는 고향으로 들어가셨다.



밤에 물을 자주 마시는 엄마는 매번 보리차를 갖다주지만, 바로 바로 치워서, 밤에 마시려 한다고 치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더니, 먼지가 들어가서 안된다며, 작은 마호병을 갖다주었다고 했다. 몸이 병원침대에 맞지않아 잠드시는 것이 불편했는데, 집에서처럼 판자를 매트리스 밑에 깔아줘서 잠자는게 조금 편해졌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주에는 정기회진하는 담당의가 다녀갔다며, 엄마가 통증이 있어서 아침운동등 활동을 잘 안하셔서, 통증 처방을 하루 세번으로 하기로 했고, 밤에 잠을 잘 못주무셔서 수면제를 드린다고 연락왔다. 이제 6주간 엄마의 건강을 살피고, 전반적인 것에 대해서 컨퍼런스 콜을 의사와 엄마, 가족이 하게 된다.


엄마는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에 대해서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신다. 언제나 "죽을 만큼 아파야 죽게 되는 것"이라는 신념아닌 신념을 갖고 계신 엄마가, 그래도 진통제를 꾸준히 챙겨주고, 어느곳이 아픈지 관심써주는 이들과 함께 하면서 안심을 하신다.


엄마말씀에 일주일에 한번은 물속에 전신을 담가서 씻겨주는 목욕을 해주는데, 이게 의자에 앉히면, 한번도 의자에서 일어날 필요가 없고, 목욕탕속으로 들여보내주어서 닦아준다면서, 자랑을 하신다. 목욕한 다음엔 보송보송하게 말려주기까지 한다고 말하신다. 그게 어떤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생의 상상으로는 자동세차하듯이 한다는 이야기인가? 해서 함께 웃었다.


엄마가 요양원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우리는 보고있다. 우리가 겪기전까지는 이런 세상일지는 몰랐으니 말이다. 엄마 한분의 요양원 입소를 위해 참으로 여러 사람이 함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양원 입소를 도와주는 기관의 사람들, 요양원이 지어진 그간의 역사를 지나왔기에 엄마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되고, 우리 가족들의 간절한 기도와 함께 엄마는 마지막 인생학교를 졸업하고, 하나님나라의 새 시민으로 들어갈 날을 꿈꾼다.


엄마의 성공적인 요양원 입소를 마치고, 나도 나중에 이런 곳에서 마지막 생애를 보내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인요양원이 더 생겨야 할 이유이다. 물론 이곳도 사람사는 곳이니, 엄마의 불평이 언젠가 나올 것이다. 그걸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들의 학교생활은 숙제를 해야하고 선생의 말을 들어야 하고 성적을 잘받아야 하는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엄마의 학교생활은 모두가 엄마를 도와주는 그런 생활이 되는 것같다. 그런 일을 하는 담당자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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