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휴가"를 받았던 엄마

요양원생활 위기가 닥치다

by mindy

"의심의 병"이 엄마를 강타했다.

며칠간 아프다는 소식을 들으며, 미리 세워놓은 스케줄을 저울질해 봤다. 한달전부터 약속해 놓은 그 약속을 "엄마 사정"을 이야기하며 펑크내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하는 와중에 막내동생이 엄마를 보러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이었다. 그렇게 그애가 엄마를 보러 갔다 오고나서, 엄마가 조금 나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 다음날 약속까지 완벽하게 완수했다. 그러느라고 여러모로 몸과 마음을 잽쎄게 굴려야했다. 그런데 이렇게 내 일에 골몰할 때 꼭 엄마 일이 터지곤 한다.


그렇게 일을 끝내고 와서 남편을 조금 쉬게 하는 마지막 과업을 달성하려 하는데, 이상한 내용의 전화가 왔다. 나도 저도 바쁜 중이라 조앤언니에게서 자세한 소식을 들으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는 동생의 목소리에 그야말로 서늘함이 깔려있었다. 조앤 언니와의 통화도 자꾸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을 받으면서 하는 전화인지라, 한마디 하다가 끊기고, 한마디 하다가 끊기고. 그 전체 내용 또한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의 상태가 무척 안좋다" "누군가는 가봐야 한다" "내가(막내 동생) 가보려고 하는데, 일이 끝나야 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1박2일간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몇시간이라도 시간을 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제대로 된 사정이나 알아봐야했다.


엄마와의 전화가 몇번 시도후 연결이 됐는데, 엄마 말씀으로는 막내가 당장 오기로 했단다. 숨이 찬 상태에서 하는 말이 감금당하고, 밥도 안주고, 약도 안주고.. 등등 이해못할 소리를 하신다. 간호사에게 전화하니, 엄마가 화가 나셔서 집에 가신다고 짐을 싸는 중이란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드디어 엄마에게 치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에게 전화하니, 자신은 갈수가 없는데 엄마가 너무 화내면서 빨리 오라고 해서 간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당장 막내가 달려오는 것으로 알고 있던데. 그래서 내가 내려가기로 했다.


바로 내려간다고 해봤자, 거진 4시간 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에 도로 공사까지 있어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다. 내가 가는 중에 동생도 일이 끝나는 대로 내려온다고 소식이 왔다. 동생과 의논한 결과 엄마가 일단 그곳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요양원측에 말해서 한 5일간의 휴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그, 충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엄마 요양원실에 갔더니, 씩씩거리는 엄마는 외출복을 입으셨고, 방안에 있는 모든 짐을 다 싸놓고 계셨다. 이불까지. 큰 비닐 봉투에 옷들을 다 넣어놓고, 이불은 다 개서 쌓아놨고, 벽에 걸려있는 시계까지 다 떼어서 가방에 넣어놓으셨다.


그 모습보다 더욱 보기 무참했던 것은 분기충천한 엄마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정말 거의 처음 대하는 모습이어서, 세상이 뒤집힌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는 내가 들어오기 전, 엄마에게 짐은 나중에 가져간다고 하고, 며칠 지낼 짐만 가지고 가라는 말을 했었다. 엄마 말을 다 믿지말라는 말도 했다.


엄마는 얼굴까지 부어서 더 형편없어보였다. 엄마안에 어떤 다른 생명체가 들어가서 이런 것들을 조정하나 싶기도 했다. 나가신다고 모든 짐을 다 싸놓으셨는데, 엄마는 "나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쫓겨나야 하는지, 그건 알고싶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였다.


누구 나가라는 사람은 없는데, 엄마는 누군가에게 쫓겨난다는 듯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중에 동생이 왔다. 엄마가 설명하시는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문제가 생긴날 새벽에 방구석에서 깨어났다. 자신을 못움직이게 여러 장비(엄마는 이것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시기도 했다)로 막아놓았다. 추운데 이불을 아무리 끌어당겨도 이불을 덮을 수 없었다고 했다. 높은 침대에서는 잠이 안오는데, 자주 침대가 높아져 있다고 말하셨다. 그리고 그날은 침대머리가 들려져까지 있었는데, 조정장치를 눌러보니, 작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하나 그전에 있었던 일인데, 엄마의 방문이 한번 잠긴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잠근 사람을 간호사가 찾아서 그사람이 용서해달라고 해서, 용서해주기도 했다고 하셨다. 나중에 (다른) 간호사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방문은 안에서든 밖에서든 잠글 수 없는 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그렇게 전했더니, 그런 문인데 어떻게 잘못 걸리면 문이 잠겨서 그전에도 문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었다고 잘 알고 계셨다. 엄마는 언제, 누가 그런 일을 했으며, 어떻게 그 문제가 해결되었는지도 정확히 설명하고 있었다. 나중에 사실관계가 밝혀질 것이다.


그간 엄마는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는 짝꿍 할머니를 무척 걱정하셨었다. 치매이신 그분이 부당한 대접을 받는다면서 말이다.


우리 둘이 도착해 엄마 이야기를 들어주니, 엄마는 마음 한편이 조금씩 풀기기 시작하는듯 보였다. 자신을 그렇게 대접하는 것은 자신을 나가라는 신호로 알았다며, 그래서 모든 짐을 쌌다고 말했다. 우리는 짐은 언제라도 가져갈 수 있으니, 일단은 작은 짐만 가지고 나가서 무슨 일이 있나 찬찬히 따져보자고 했다. 엄마가 나가려고 하는 것이지, 누가 엄마를 나가라고 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드렸다.


짐을 조금 챙겨서 엄마와 함께 나왔다. 우선은 동생네로 간 다음 뒷일을 생각해보자 했다. 하루 저녁 엄마와 함께 지내고, 우리집으로 모시고 왔다. 긴 운전 때문에 걱정했지만, 한번 쉬었다 다시 움직여서 그런지 엄마가 견디셨다.


엄마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드렸다. 다음날 낮에는 조앤언니가 왔었고, 저녁에는 동생네 가족이 왔었고.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치매"는 아닌 것 같았다. 가끔씩 건망증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억이 아주 소상했다. 당신이 의심병이 들기 시작하자, 당신 스스로 산소줄을 뺐다는 이야기도 했다. 식사양이 적어서 약은 물에 타서 주었는데, 엄마는 약을 안주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이 부분은 간호사와 이야기해서 알수 있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엄마는 조금씩 직원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학대에 가까운 취급을 당하기 시작했다는 착각이 심각하게 든 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잠을 자다가 홀로 움직여서 방구석으로 간 것으로 추정되는데, 누군가 엄마를 옮겼다고 믿고 있었고, 그전에 문이 잠겼던 그날의 기억 때문에 감금으로 발전해서 생각하셨다.


그전에 며칠간 아팠고, 그래서 식사를 제대로 못하셔서 착각이 일어났었을 수도 있었다. 엄마와 대화를 나눠보니, "그런 대접"을 받으며 사는 늙은 노인들처럼 오래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셨다. 반대로 제대로 대접을 못받아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다는 절망적인 마음도 들었을 수도 있다.


얼마전에 엄마의 외로움을 풀어들였다는 글을 썼다. 나는 그 "잘난체 하는" 글이 이런 일을 불러왔나 싶기도 해서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엄마가 겪어야 할 "신고식"을 드디어 치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간 곳은 낭만적으로는 "마지막 인생학교"이지만 그렇게 가벼운 곳은 아니다. 아픔속에서 의심이 자랄 수 있는 그렇게 상처받기 쉬운 장소이다.


우리집에서 이틀째 자기 전에 동생과 함께 엄마가 누운 침대에서 동생은 다리를 나는 팔을 주무르면서 엄마를 지켜봤다. 숨이 차서 곧 멈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말도 잘 못하신다. 나는 병원에 가자고 몇번을 말했지만, 엄마는 요양원으로 들어가서 그분들에게 맡긴다고 병원행에 대해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엄마가 말한 것을 종합해 엄마의 착각일 것같은 부분을 조금씩 교정해 드렸다. 그리고 엄마 말대로 그렇게 엄마와 맞지않는 곳이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했다.


어쩌면 누구나 의심하는 "요양원의 노인에 대한 처우문제"에 대해서 엄마도 은연중 걱정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의 마음이 약해졌을 때 엄마의 의심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그런 생각에 빠지게 되었을 수도 있다.


엄마가 다시 들어가시기로 한날 아침, 엄마의 기분이 한결 나아지신 것 같다. 함께 차타고 가는 동안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지나간 것에 너무 몰두하지 말고, 앞으로 잘 살아나가야 하는 이야기를 위주로 했다. 엄마의 딸들이야 엄마에 대한 촉각을 세우고 살지만, 요양원 직원들은 여러 사람들을 돌보니, 엄마에 대해서 그렇게 딸들만큼 신경쓰지 못하니, 그런 걸 감안하라는 당연한 말도. 말을 하고 보면, 그런 것도 모를 엄마도 아니고, 엄마는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중간 지점쯤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맥도널드 애플파이를 사서 드렸다. 그러면서 힐끗 보니, 예전에 곱던 그 얼굴로 거의 돌아가 있었다. "악"이 빠져나가고 "선"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를 느낀다. 물론 아픔 때문에 앞으로도 엄마 얼굴이 붓고 모양이 형편없어 질때가 오겠지만, 마음만은 모두에게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진 우리 엄마의 본모습을 잃지 않길 간절히 바래본다.


나는 엄마에게 예전에는 "전쟁에서 싸움잘하는 사람이 영웅이었다면, 이제는 간호사, 의사등 의료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영웅이라고 생각한다"고 내 이야기를 보탰다. 코비드가 아니더라도, 열악한 요양원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의 노고를 가벼이 여길 수는 절대로 없으리라.


엄마에게 혹시라도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딸네 집에서 생활하고 싶으시면 말씀하시라 했더니, 당신이 있던 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곳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엄마는 이번 "억지 휴가"에서 우리집에서 사위와 딸과 있었던 시간이 좋았다고 말씀해주신다. 마치 마지막 말씀을 하시듯. 그리곤 이틀 남은 휴가를 반납하시고 엄마의 공간으로 돌아가셨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엄마에게 더 자주 연락하고, 엄마의 고충을 미리 들어드리고, 이번처럼 의심을 키우지 말고 제때제때 풀어낼 수 있도록 연락체제를 강화하자고 자매들과 의견을 나눴다. 다시 들어간 요양원에서 엄마는 다시 편안함을 느끼신다. 너무나 친절하고 잘 돌봐주는 직원들에 대한 칭찬이 다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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