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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Oct 09. 2021

작은 마을 큰 뉴스

동네 호텔 철거작업에 부쳐

요즘 우리 동네의 가장 핫(hot)한 뉴스는 동네에서 가장 큰 건물, 그리고 제일 오래 비워놓았던 "페이슬리 인 Paisley Inn" 건물 철거에 관한 것이다.  동네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3층짜리  이 건물은  동네가 잘나갈때 호텔과 식당으로 그 존재를 과시했었다.  그 건물 1층은 70년대 말까지 Rowe's Tavern으로 스테이크등을 파는 동네 사람들의 아지트였다. 이 동네 토박이들은 그 식당에 많은 추억들이 있다. 그러나 관리가 어려워진 것인지 식당이 문을 닫고 그 건물은 그동안 두어차례 주인이 바뀌었다. 주인이 들고 나며 건물은 나이가 들어가고, 보수가 늦어지면서 낡아갔다. 마침내 그 건물을 철거하겠다는 주인이 나왔을 때 그걸 반대했던 운동도 일어났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이제는 동네의 흉물이 되어가고, 누군가 그것을 재개발하면 좋겠다는 것이 대부분 동네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몇명이 합작으로 그 건물을 사들였고, 마침내 시의 허가를 받아, 철거의 날이 다가왔다. 철거가 계획되었던 그날, 갑자기 동네에 그 건물을 철거하기 전 "Farewell" 행사가 있다는 것이다. 그날 그 건물이 보이는  작은 기념탑앞에서 "이별식"을 가졌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건물이 바라보이는 세네탑(cenotaph)의 작은 광장에 모여들자 초록색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할아버지가 파이프를 연주하며 행진하며 들어선다. 무언가 "비장함"이 음악속에 섞여있다. 단 한명이 연주하는 그 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로 묶이는 효과가 있었다.



페이슬리의 얼굴이기도 했던 그 건물은 1853년 동네가 처음 세워졌을때 지어졌으니, 장장 168년의 역사를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이 건물을 인수하게 된 동업자중 한사람인 가렛의 인사말이 있었는데, 자신도 작은 마을 출신자라며, 자신의 동네는 이제는 도시에 먹혀들어가 더이상 작은 마을의 운치를 찾을 수 없어 아쉬운 중에, 이 마을의 일원으로 맞아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렛과 다른 두명의 설계사, 건설업자가 함께 하는 이 사업은 이들의 첫번째 프로젝트로 볼수 있다. 이들은 페이슬리에 있는 다른 건물들도 함께 매입했는데, 앞으로 페이슬리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돈을 목적으로 한 개발업자 그 이상의 꿈을 지닌 사람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득하다. 사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투자한 그들이 그리는 그림을 범인으로서 상상하기 어렵지만, 자신이 살아온 마을에 대한 소회와, 이 건물들을 사는데 협조해준 부동산업자, 마을 유지 등의 도움을 언급하며 마을발전의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그의 말에 점수를 크게 주고 싶다. 그는 새롭게 지어질 건물은 빌려줄 아파트와 판매될 타운하우스 등이 될 것이고,  1층엔 상업적 용도로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부서지는 건물 모양과 비슷한 모습의 건물이 들어설 것이라고 말해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다.


건설업자가 "이 마을의 건물들을 매입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미세스 존스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말을 했다. 그는 "엄마를 돈으로 살수 있으면 그녀를 내 엄마로 하고싶다"고 유머를 던졌는데, 그 미세스 존스톤은 초등교사 출신으로 동네의 유지라고 할수 있다. 그녀는 남편이 운영하던 카누샵과 집등을 팔면서, 이 동네에 도움이 될 사람에게 팔기위해 애쓰고 있다는 소식을 친구를 통해 들었다. 아마도 미세스 존스톤에 의해서 동네에 매물로 나온 꽤 큰 덩치의 건물들을 이들이 사들인 것 같다.



이날 세네탑에 모인 사람들은 대략 보기에도 100명은 넘어보였다. 1천명이 조금 넘는 마을에서 그정도의 사람들이 나온 것은 꽤나 성대한 행사였다고 볼 수 있다.


그날 이후로 그 건물이 부서져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폭탄을 동원해 한번에 건물을 쓰러뜨리는 그런 방식은 아니었다. 포크레인으로 일일이 부수고 들어내는 작업이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벽돌은 벽돌끼리, 쇠부치는 쇠부치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한편에 모아놓더니 어제 보니, 그 모든 것들을 일일이 가려담아서 가져가고 깨끗이 치운 것을 보게 되었다. 아직 옆건물과 붙어있는 한쪽편의 건물이 앙상한 기둥에 의지해 쓰러지지 않고있다. 옆건물 때문에 일일이  망치로 깨부수려는 게 아닌가싶다. 먼지가 나는 작업을 할때는 물을 수차례 뿌려가며, 작업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는데, 험악할 것만 같아보였던 3층 규모의 호텔 해체 작업이 어떤면에선 아름다운 행위예술처럼도 생각되기도 했다. 종료되지도 않았는데 땅까지 평평하게 골라놓은 그 모습은 더욱 그런 느낌이 들게 한다.


작은 마을이라 작은 일에도 들썩들썩하는 건 맞다. 그러나 뭐가 큰일인가? 동네에서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운명을 함께 하다가, 이제는 생명력을 잃고 비둘기들의 안식처 정도의 역할밖에 못하고, 최근에는 건물 붕괴에 대한 위험까지 있었으니, 이렇게 해체되고 평탄작업이 된뒤에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작은 동네의 큰 이슈가 아닐 수 없다.



미세스 존스톤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지난 여름에 친구 소피아가 미세스 존스톤집에서 "정원 청소 및 파트락이 열리는데 참여하겠냐"고 물어왔다. 그녀가 집을 팔고 새집을 샀다는 것을 소피아를 통해 들었고, 그집에 한번 갔던 적이 있었다. 그집은 동네 막다른 골목에 있었는데, 숲자락에 맞물려서 공원안에 있는 집처럼 보였다. 정원이 넓기도 했지만, 집뒤쪽으로 난 작은 동산과 붙어있어서 여느집과 다른 느낌이었다. 그집을 다시한번 보고싶은 생각도 있고, 정원 관리라 하니, 그것 또한 돕고싶은 생각이 들어 함께 하기로 했었다. 그날 마침 캠핑장에서 오는 날이라, 나는 파트락 음식으로 무엇을 만들까, 캠핑에 가기전부터 걱정을 했다. 그래서 내가 결정한 메뉴는 주먹밥과, 김치였다. 너무 약소하지만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않아서 캠핑전에 소스를 만들어갔다.


미세스 존스톤의 집 마당에는 많은 아줌마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집앞 화단이 울창한데 죽어가는 것, 너무 광범위하게 자라서 다른 것들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등을 뽑아내면서 정리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알려주는 것을 열심히 삽질하면서 뽑아냈다. 미세스 존스톤 혼자 사는 집이지만, 함께 돕는 그들에게서 느끼는 향기는 그녀는 혼자 살지 않는구나 하는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일만이 아닌, 우리의 일을 하고 있는 느낌.  이런 사람들이 있어 동네가 나름 활기를 찾고 모양을 잡아나간다 싶다.


일을 끝내고 점심을 먹기전, 역사가 오래된 그집을 둘러봤다. 아직 이사짐도 제대로 풀기전이었는데, 옛집들이 그렇듯  공간 공간이 협소하게 나뉘어 있어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요즘처럼 벽이 최소한도인  넓고 확트인 그런 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주 귀여운 작은 화장실이 있는 이층방은 앙징맞았다. 손님용 침실로 쓰면 마춤하겠다 싶었다.


모던한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어느 한군데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없었으나, 함께 구경했던 사람들은, 무척 관심을 갖고 그 집의 가치를 높이 쳐주고 있었다. 손볼 데도 많고, 약간은 불편하고, 어둡기까지한 그 집의 가치를 알게 되면 그들의 문화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려나 모르겠다. 이집 역시 100년은 훌쩍 넘은 고옥임에 틀림없다.


그날 가져온 음식들을 펼쳤는데, 나의 주먹밥과 김치도 주목을 받았다. 두명이 내게 언제 김치담는 것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것이 그들의 진심이었을까 하는 의구심 한편에 나름대로 실천할 수 있는 날을 계산해본다.


자신의 집과 가게를 팔때에도 거래가 마을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고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다음에 같은 마을안에서 낡은 집을 다시 사서 그 집의 정원을 손보고 있는 그녀를 보노라니,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그녀의 큰아들은 몇번의 결혼을 했고, 몇년전 세상을 떠난 그녀 남편의 까닭스러운 성격으로 미루어 그녀의 삶도 굴곡져 보였는데,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차츰 배워가고 있다. 그런 부분들은 그녀를 이루는 겨우 몇퍼센트에 해당하는 사실임에도, 그것으로 그녀를 규정짓는다.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하고 있는 이 "고질병"에서 언제나 헤어나올지 모르겠다.


페이슬리 인으로 마지막에 불리던 건물의 분해작업으로 페이슬리 역사를 생각해본다. 170여년 전에 스코틀랜드인 정착했다고 알려진 이 마을의 역사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우리들도 그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고 있다는 사실이 꽤나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곳에도 원주민이 있었을텐데 그들에 대한 기록은 찾기 힘들 것이다.


어느날 가게를 보는데, 젊은 여성 두명이 들어선다. 한명은 아시안으로 생겼더라. 그녀가 음료수를 사가지고 나가면서, "한국분이세요?"라고 물어봐서 "어머 그런데요. 반가와요" 했더니, 본인을 "Short Film"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 동네에 필름을 찍으러 왔다고 한다.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물으러 와도 될까요?"해서, 완전 반가운 목소리로 "그럼요. 도움될 게 있다면 기꺼이 돕지요" 했는데 감감무소식이다.


이 작은 동네에서 무엇을 찍으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이 왔다는 사실 자체도 뉴스거리가 된다.  동네 터줏대감들은 나만 빼고 모두 잘들 놀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사실 뜨네기, 신참들도 여긴 많다. 누가 놀아줘야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끼어들어 스스럼없이 함께 놀아야 한다. 나는 간신히 친구의 옷자락을 붙잡고 끼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리고 김치의 날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 기사를 읽으면서 알게 됐다. 김치의 날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불러 김치담는 것을 보여주고, 밥한끼 먹으면 좋을 것 같다. 11월 22일 그날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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