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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Oct 15. 2021

특별했던 땡스기빙 데이

아이들이 음식을 장만하다

30분마다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체스를 두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사위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중에 물어보니, 30분마다 물을 갈아줘야 했단다. 얼음덩어리처럼 언 터키를 사와서 인터넷이 알려주는 대로 얼음물에 담갔다가 뺏다가, 다시 찬물에 담갔다가 또 냉장고에 넣다가 별 요동을 다 친다. 터키를 녹이는 것에 들이는 정성이 요리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터키 녹이는 것을 잘하지 않으면 식중독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에 지침대로 따라야 했다고 나중에 말한다. 


추수감사절에 맞춰 올라오면서, 이번 땡스기빙데이 디너는 "우리들"이 만들면 안되겠느냐고 문자가 왔다. 나는 원래 "안된다"고 말하는 걸 최고로 어렵게 여기는 사람이다. 하트를 뿅뿅 보내며, 그래주면 좋겠다고 했다. 애들이 다 커서 엄마집에 오면서 자신들이 음식을 준비한다고 하니, 이게 웬 복이람 싶었다.


더군다가 모든 재료들을 본인들이 준비해온다 하였다. 그렇게 터키 디너가 일요일밤 계획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도착한 토요일 저녁은 내가 준비한 음식을 먹었다. 에피타이저로 녹두죽을 쑤고 갈비를 굽고, 오징어 우동 볶음을 하고,  그 다음에 엄마의 묵가루로 묵을 쑤었다. 아이들은 최고의 음식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이 말하는 최고의 상은 매번 새롭게 경신된다. 그전에는 캠핑에서 먹었던 음식이었고, 이번엔 처음 먹어보는 오징어 우동볶음이 인기가 있었다. 최고의 음식은 특별히 음식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마주 대하며, 사랑을 나누며 먹기에 그때마다 기막힌 특식이 되는가 싶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오징어로 만든 음식을 먹으니 단연 화제는 오징어 게임이다.  절반 정도의 에피소드를 시청한 아이들을 위해 내용을 유포하지 않아야 했다. 내게 오징어 게임은 가장 불행한 두 그룹을 보는 일이었다. 돈이 없어서 게임으로라도 그 상황을 이겨보려는 사람들이 첫번째였지만, 돈이 많아서 할일이 없는 구토나올 것 같은 세계 0.01%안에 들 부자들, 그들 말이다. 어떻게 그렇게 희망없는 사람들을 등장시켜, 드라마는 흥미롭게 만들었는지, 한국사람이지만 제작진의 창의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둘째는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한국사람이 되고싶어 안달한다"고 한마디로 요약한다. 존재감 없었던 한국이 어느새 정상에 우뚝 선 느낌을 갖게 된다. 꾸준히 탐구하고 밀어부치고 시도하고 노력하는 한국인이 많아 그덕을 은연중 보게 된다.


각설하고 그래서 우리집에서도 뽑기를 해보기로 했다. 밥을 다 먹고, 아이들과 설탕을 녺여 뽑기를 만들어보았다. 설탕이 잘녹는 양은 국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스탠레스 스틸로 했는데 생각보다 더디 녹더라. 그리고 사위보고 베이킹 소다를 뿌리라고 했더니 너무 많이 넣어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장모의 "외마디 비명"에 사위가 꽤 놀랐을 게다. 어떻게 뽑기를 만들긴 했는데, 멋지게 나오진 않았다. 제대로 그 양을 넣었었다면 모양이 나왔을까?. 쿠키만드는 것으로 찍어서 함께 하나씩 들고 뽑기를 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보다 뽑기 모양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리고 그 뽑기를 들고 혀로 핥는 남편과 사위땜에 우리 모두 배꼽을 잡는다.



"뽑기"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니, 남편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뽑기가 "도시"에서나 볼수 있는 놀이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초등 5학년때 서울로 "유학"왔다. 유학생이었던 셈이다.^^

나의 하루는 뽑기가 있는 동네 공터에서 마무리된다.  낮은 의자에 앉아 연탄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 모르는 그런 불앞에서 열심히 설탕을 녹이는 아저씨. 둥그런 양은스푼에 있는 설탕이 녹으면 기적의 가루를 뿌린다. 그러면 노란색을 띄면서 그 모양이 부풀어 오른다. 그것을 철판에 탁 내려쳐 떨어뜨리고 납작하게 한 다음, 모양을 찍어 하나씩 준다. 처음 받을땐 따뜻한데, 금방 식어 딱딱한 사탕캔디가 된다. 나는 그걸 정성들여 안전한 부분부터 살살 떼내기 시작한다. 그 쫄밋한 마음.  모서리가 약간 부서지면, 너무 속상하여 침으로 살살 발라 모양을 잡아서 들여밀기도 한다. 아저씨는 어떤 때는 모양이 깨져서 다시 하나 더 줄수 없다고도 하고, 어떤 때는 하나 더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저씨의 그날 하루 매상이 얼마나 되었을까 싶다. 오징어게임이 아니었으면 나는 나의 뽑기 놀이를 영원히 기억해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큰언니와 함께 지냈는데, 20대 후반 "철없는" 언니밑에서 함께 사느라 눈물로 날을 새곤 했었다. 그래도 떡볶이, 뽑기, 오징어눈깔등 거리음식을 사먹으며 나름대로 극복을 했던 것 같다. 오징어눈깔 조림? 그 음식을 아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 (신문을 돌돌 말아 만든 종이컵) 한봉지 사서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하나씩 까먹는 그 재미. 짭쪼름한 맛이었는데, 우리 동네에만 있었나? 그런 것을 사먹을 돈이 있었던 것을 보면, 언니는 나름대로 나를 잘 돌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왜 그리 있지 않을 곳에 내가 있었던 것같은 느낌이 드는지 알수 없다. 지금 그 언니는 나를 "구박"했었던 죄목으로 얼마나 내게 잘해주는지 모른다. 오징어게임 때문에 옛 기억에도 빠져보고, 먼 캐나다땅에서 뽑기놀이를 하면서 즐거운 땡스기빙데이 이브를 보냈다.


그리고 대망의 터키 디너의 날.

저녁 6시에 먹을 계획을 잡고 오웬사운드 언니도 초청했다. 아이들은 아침 9시부터 요리를 시작한다. 내가 볼때 거의 하루종일 부엌에 있던 것같다. 나는 간간히 드나들며 송편을 빗기 위해 재료를 준비했다. 


엄마는 "공주님"이니 부엌에 오지 말랜다. 그 말이 너무 좋았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힘들게 요리를 할지는 몰랐다. 터키를 굽는 데만도 여러 공정이 들어가고, 애기양배추(Brussels sprouts), 당근, 버섯 스터핑, 그레이비, 매쉬드 포테이토, 크렌베리 소스 등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음식을 다 만들었다. 특별히 터키는 정말 밖은 바삭하게 안은 부드럽게 구워서 어떻게 했느냐고 했더니, 안에 오렌지를 잘라 넣어서 부드럽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모든 음식이 정말 정갈했고, 모든 정성을 다해 만들어서 그런지 환상의 맛이었다.



보기에도 아까운 딸과 사위에게 그런 어려움을 주고 싶었겠느냐마는, 그 아이들의 노력으로 차려진 상에서 우리가 기쁨을 느낄 때, 그 아이들이 반대로 얻게 되는 그 감사함은 그들의 노고를 녹이고도 남는 것임을 알기에 미안한 마음을 접는다. 그렇게 하나씩 배워나가면, 나중에는 음식에 조금씩 도가 트지 않을까?


캐롯과 애기양배추 요리는 아주 보기좋게 졸여진  달콤한 맛으로 그냥 야채맛이 아닌, 풍미가 더해져 인기를 끌었다. 그레이비 소스는 몇시간을 달여내는 모양을 직접 봐서인지, 그레이비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나같은 사람도 그것을 뿌려먹으니 괜찮았다. 나중에 디저트로 호박 파이를 먹었다. 


그날 공주였던 신분을 망각하고 나는 송편을 빗었는데, 반죽이 갈라지고 해서 애를 썼다. 그래서 물을 다시 뿌리고 몇번 더 치대면서 간신히 만들다 보니, 제대로 맛을 낼 것 같지 않아서 포기하는 마음이 컸는데 배가 불러 못먹겠다는 사람들이 인사로 하나씩 먹어보더니, 꽤 맛있다고 해줘서 감사했다. 


 캐나다에 오래 살지만, 터키를 구운 건 몇번 되지 않는다. 아이들 어렸을 때 터키를 준비하지 못했다가, 막내의 칭얼거림을 듣고 급히 상당히 큰 닭을 사서 요리한 적이 있었다.  그냥 대강 넘어가주면 좋았을텐데, 막내에게 "터키가 이상하다"고 들켰던 기억도 난다. 터키를 굽더라도 곁에 김치도 늘어놓고, 전통에서 벗어난 상차림을 하는데, 이번에 아이들을 통해 마침내 진정한 케네디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명절에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가정은 그것이 얼마만한 기쁨인지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막내가 이날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안다. 어떤 명절이 되려나 조마조마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 두사람, 허공을 바라보며 허전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두애가 조금 걸끄러운 사이가 되어서 번갈아가며 방문하고 있다. 막내에게서 "안와도 되겠냐"는  소식을 받고나서야 내 마음에 평안이 왔다.


동생에게 땡스기빙 데이를 양보하려 했던 둘째가, 동생이 오지 않게 되자 바로 올라와 온 시간을 우리들을 위해 대접해주고 갔다.  함께 놀자며 체스 게임까지 가지고 왔다. 어려워 보이는 그것을 지난번 애들에게서 배웠는데, 아이들과 즐길 정도가 되었다. 함께 뮤지컬 "해밀톤"도 시청했다.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딸 사위 때문에 여러 사정으로 오지 못한 막내에 대한 애닯음을 희석시킬 수 있었다. 내년 땡스기빙에는 우리 모두 모일 수 있을지,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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