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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Oct 29. 2021

함께 갑시다

The Glen을 걷다

같이 걸어온 길이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긴 길이었는 데도, 아직도 서로의 보폭에 맞추지 못한다. 우리 부부 이야기이다. 추구하는 바가 조금씩 다르고, 삶에서 우선해야 할 것에 대한 다른 생각으로 불협화음이 난다. 막다른 골목에 부딪친 것 같은 어두컴컴한 날을 맞기도 한다.


물론 밝고 환한 빛 가운데서 우리의 만남은 우연은 아니었어, 라면서 서로를 지긋한 눈으로 바라볼 때도 많았다. 그런 날들만 이어지면 좋겠지만, 은퇴를 앞둔 요즘, 서로의 다름에 또 한 번 놀라게 되고, 속수무책이다. 


그러고 보면 결혼 전 "나와 똑같은 사람"을 만났다고 느꼈던 그날의 일은 "기분 탓"이었음을 깨닫게 된 이후로 "같은 듯 다른 사람"을 깨닫는 동안 벌써 인생 후반전쯤에 들어섰다. 별다른 불협화음이 없었던 날도, 잘 맞는다는 착각 아래 서로의 발톱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은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다.


지난번 함께 걸었던 트레일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릴 수 없다. 생생하게 바로 기록하지 않았던 것을 조금 후회한다. 그날은 우리의 만남이 더욱 빛이 나고, 긴 길을 오래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 나온 김에 사진도 사용할 겸 그날의 산책에 대해 말하자.


The Glen을 꼭 다시 가보고 싶었다.

몇 년 전 겨울에 갔었다. 그때 얼음과 눈으로 덮여있어서 웅장함에 놀랬었고, 그다음 해인가 다시 갔다가 눈이 덮인 그곳에 사람발자국도 없고, 길도 제대로 안 나서 너무 위험해서 중간에 발을 되돌렸다. 


추수감사절 월요일 모처럼 가게문을 닫고 둘이 길을 나섰다.

그다지 유명해 보이지 않는 Bruce Trail의 한 구간인데, 이번에 다시 가보고 또 반하고 말았다. 바위가 병풍처럼 양쪽으로 쳐진 길이 꽤 길게 이어져있다. 지붕만 막는다면, 위급 시 대피장소가 될 수 있겠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끼 낀 바위로 둘러쳐진 길을 보는 재미가 있다. 바위는 절편 같은 돌덩이가 사람 손으로 쌓은 듯 놓여있다. 어떤 바위는 미처 자리를 잡기 전에 "스톱"소리에 몸을 땅에 부리지 못한 채로 서있는 바위도 있다. 바위들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다,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한발을 들고 있는 모습이기도 했다. 


어떤 길은 바위와 바위틈이 벌어져서 겨울에 눈이 와서 그곳에 쌓이면 틈조차 감춰졌겠다 싶다. 그런 부분을 크레바스라고 부르던가? 몸이 다 빠질 만큼 넓이가 크진 않지만, 발 하나가 빠지면 꽤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겨울에 그 길을 통과했던 생각을 하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이 길은 단층애로 유명한 나이아가라에서 시작하는 부루스 트레일의 한 구간이다. 부루스 트레일은 Niagara에서 Tobermory (토버모리) 북쪽으로 800km에 이르는 상당한 길이의 트레일로 곳곳에 절벽과 바위길이 포진되어 있다. The Glen을 검색창에 쳐보면, 미국의 지명이 나오기도 하고, 나이아가라 근처에도 있다. 이곳의 더 그렌은 그다지 유명한 곳은 아니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찾기 힘들게 트레일  입구도 아주 작게 표지판이 있고, 길가에 차 몇 대가 주차되어 있기도 하다. 구글 맵에서도 찾기가 힘들다. 혹시 몰라 주소를 이곳에 올린다. 178865 Grey Rd. 17 West Georgian Bluffs Ontario(1km north of indian Acres Rd.)



Tobermory가 무명에서 유명해진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이, The Glen이 유명해지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닐까 싶다.  바위가 쌍벽이 되어 바람을 막아주는 산길을 거의 1km가 넘게 걷는 것이 그리 신이 났다. 바위에는 이끼가 끼고, 나무들이 자라기도 한다. 


사실 이 길을 찾지 못할 뻔했다. 분명히 가는 길에 있었는데, 한참을 숲을 걸어도 그 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지나쳤던 아랫길 쪽으로 들어섰다. side Rd쪽이 아니라 Bruce trail로 지나가야 병풍바위를 만난다. "저쪽으로 가보면 어떨까?" 했던 것은 나였지만, 그저 그런 양념을 쳤다뿐이지, 나의 잘남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같은 길도 수많은 갈래길이 있어 잘못 들면, 에센스를 놓치게 되고, 그 길에 대한 감상이 그렇고 그렇게 끝나게 될수도 있는 법이다. 경험과 촉각이 제길을 찾게 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기울여 들어야 할때가 많다. 그래서 혼자보다 둘이 더 나은 것이다. 위의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굴곡이 있는 부분이 바위병풍길이다. 그 길을 모두 잘 찾기를..


두 나무가 열린 지붕이 되어 서로를 지탱해주는 곳에 자리를 잡고 집에서 싸가지고 간, 간식을 먹었다. 떡과 고구마, 과일이었던가? 부부처럼 서로 엉키어 서있는 두 나무를 자세히 바라보며, 역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게 부부의 모습이지 하면서 그 나무들에게 "부부"라는 닉네임을 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나무가 거의 죽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함께 자라다가 결국 한 나무는 죽고, 그것을 떨쳐내지도 못하고 이고 있는 건장한 나무를 한참 바라봤다. 부부나무로 명명했다가,  죽은 한 나무를 걸치고 있는 그 모습에서 "부부"를 지워내고 있는 나를 본다. 누구나 겪게 될 부부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부부관계를 지향할 때니, 한편이 온전히 짐을 지고 있는 것을 보는 마음이 무겁다.


미처 발을 땅에 대지 못하고 멈춘 두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바위에 자라나는 나무의 생명력

더 그렌을 걷다보니, 낙엽밟는 소리가 생명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아우성처럼 울려퍼지는 평평한 오솔길도 있고, 깊이를 알수 없는 크레바스 같은 함정이 기다리고 있는 곳도 있으며, 눈이 호사스런 바위벽에 쌓인 스릴만점의 지점도 있었다. 물이 보이는 늪지대도 저멀리 보인다.


800km에 이르는 긴 트레일중 5km 길에는 좋은 풍광뿐 아니라, 크레바스처럼 위험한 곳도, 빨간색, 노란색 독버섯이 자라는 곳도 있었다. 어둔 밤에는 야생동물들도 있을테고, 겨울엔 길을 잃어버릴 위험도 있다. 


두 나무, 서로 엉켜있다. 왼쪽 나무는 죽어가는 듯.
더 그렌에는 이런 길이 길게 이어져있었다.
낙엽이 깔린 길도 있고.
색만으로도 독버섯임을 알 수 있었다. 예쁜 빨간 독버섯.
노란 독버섯도 보였다.
바위밑에 쉼터...

그날은 축복처럼 좋은 기분으로 길을 걸어서 앞으로의 우리의 길에 자양분이 될것 같았는데, 그날의 영양분의 효과가 얼마후에 바닥나는 것을 보고, 조금 실망중이다. 트레일 후 바로 글을 썼다면 조금 긍정적인 글이 되었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일어날 일이 안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현재는 함께 움직이는 일이 힘들어지면서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위기가 온듯도 싶다. 시간이라는 귀중한 보배를 갖게 되면 무엇을 먼저 할까? 더 그렌이 포함된 부루스 트레일 800km를 우리 부부가 정복해야 할, 세미 은퇴후의 1번 리스트로 하면 어떨까 싶다. 그 길에서는 더 그렌에서 보지못한 또다른 아름다움을 품은 길들이 있을 것이다. 위험스런 일들도, 피곤함도 끼어들겠지, 그러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 필요한 존재임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마음과 몸을 단련시켜야겠다. 그정도의 길을 함께 숨을 섞으며 걷다보면, 그간 안맞던 것까지 맞추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맞출수 없다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더 고급진 단계로 들어갈 수도 있다. 작은 것들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우리의 인생의 원대한 목적에만 서로 마음을 맞출 수 있다면 그것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런데 그의 1번 리스트도 나와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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