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dy Nov 12. 2021

당신 잘못 아닙니다

차사고를 당하고

 오늘의 나는 선물이다. 프레전트(Present)는 현재와 선물이란 두개의 의미를 갖고 있고 그말은 자주 듣게 되기도 하지만 실감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같은 날, 그 말을 하는 것도 괜찮지싶다.


차사고를 당하고 난 다음, 차는 폐차 직전이고 에어벡은 터졌으나, 나는 멀쩡하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오늘이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의 내가 없다면 미래의 나 역시 없는 것이지만, 과거의 나는 존재했다. 그리고 그 과거의 내가  미처 종료하지 못한 일들이 떠올랐다. 죽음 직전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회한이 남을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차사고를 당했다.

차사고를 냈다.


많이 다르구나. 나는 차사고를 당했다라고 말하고싶다. 내가 좌회전을 하고 있었기에, 거의 대부분 좌회전하는 사람의 잘못이 된다고 하는데, 내 기억으로는 앞에서 오는 차가 없었고, 초록불에 마주오는 차가 없으면 좌회전이 가능하기에 생각없이 돌고있는 중이었다. 그랬는데, 갑자가 다른편에서 내게 다가오는 차를 발견하게 된다. 순간적으로 차 속력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차사고 개요는 아래 상자에 담았다. 되도록이면 객관적으로 쓰려고 했다.


사건 개요
10월 17일 12시경 Waterloo 외곽에 있는 Heidelberg 마을 Lobsinger Line과 Kressler가 만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당시 나는 그린 불빛을 받고, 마주오는 차가 없어서 차를 꺽고 있었는데, 왼편에서 갑자기 나를 향해오는 트럭을 발견했다. 바로 속력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엑셀을 밟았는데, 차 뒤쪽이 강하게 부딪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곤 내차가 멈춰섬과 동시에 운전석 창문쪽에서 에어백이 터졌으며, 나는 핸들을 손에 대고, 꿈인가 잠시 생각했다. 1분 정도 그 상태로 있다가, 차밖에 연기가 오르고 있음을 발견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했으나, 안전벨트가 너무 꽉끼게 매어져 있어서 풀수가 없었다. 쓰고 있던 선글라스가 벗겨졌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

간신히 안전벨트를 풀고 에어벡을 제치고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때 반대편에서 한 청년이 내게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그 청년의 차와 내차가 부딪친 것이다. 내차는 심하게 파손되어 있었다. 나는 무척 떨렸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청년의 차는 뒤쪽이 보였는데, 괜찮아 보였다. 그때 그 청년이 와서 내게 “괜찮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대답한 뒤,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내 잘못이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그렇지?” 하면서 마음에 안심을 했다. 너무 심한 사고였지만, 그 청년이 잘못했다고 하니,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그 청년이 “경찰을 부를까? 부르지 말까?” 해서 잠시 그 청년이 잘못을 인정했으니, 우리끼리 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불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을 부르라고 했다. 그 청년은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청년은 나중에 물을 갖다주겠다면서 자신의 차에 가서 생수 한병을 꺼내다 주기도 했다. 약간은 쌀쌀한 날씨였는데, 나는 겉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몇명이 나와주었다. 추위 때문인지, 놀라서인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한 여성이 내게 겉옷을 주며 입고 있으라고 했다. 나중에 그 여성은 다른 겉옷을 가져와서 내게 주었던 것과 바꾸자고 했다. 그리고 헌옷이니 입고가도 된다고 말해줬다. 아니면 가까운 곳에 있는 편의점에 맡겨놓으면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너무 감사했다.

후에 그 청년의 부모가 와서 함께 있었다. 나는 사촌오빠에게 전화했더니 비교적 멀지않은 곳에 있던 오빠가 30여분 후에 와주었다. 그리고 CAA에 전화해서 차를 토잉해가게 접수하는 일은 남편이 맡아서 해주고 있었다. 차는 좌회전하려던 그 모습에서 왼쪽머리가 조금 돌아가 서있었고, 상대방차는 그다지 상처입지 않았는데, 내 차가 그만큼 파손된 것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내 차는 바퀴 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졌고, 운전석, 그옆 좌석, 뒷좌석쪽의 창문쪽에 있는 에어벡이 터졌으며, 차 밑으로 긴 쇠줄이 떨어져 덜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개스통이 깨졌는지 기름도 흘러나온 것 같았다. 경찰이 오고나서 내게 먼저 물어봐서 위에서 언급한 대로 말했다. 그 경찰은 청년과도 대화를 했는데, 나는 그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경찰에게 "그 청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느냐?”고 물으니, 경찰이 그렇지 않다고, 그 청년도 그린불빛에 달렸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내쪽이 그린이면 청년은 빨간불에 달렸다는 이야기인데, 둘중에 한명이 잘못 알고 있던지, 거짓말했던지 하는 상황이 됐다. 나중에 다가온 청년에게  “네가 잘못했다고 내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그런 적 없다"고 말했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고 놀라면서 물었더니, 경찰은 이 자리는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 청년이 떠나가고 경찰은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으니 자신이 조금 더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근방에 주유소를 낀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에 가서 한참 있다 왔다. 그러고 하는 말이, 내 차를 뒤따르던 다른 차가 좌회전하는 것이 그 가게 CCTV 화면에 잡혔다고 했다. 그 당시의 신호등 색은 구별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경찰이 말하기를 내차를 뒤따르던 차가 좌회전했다는 것은 그당시 내가 받고있는 신호등이 그린불빛이라는 반증이 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더 조사해서 문제가 있으면 연락해주겠다고 했다. 토잉차가 올때까지 경찰은 수신호로 차들을 지나가게 해줬고, 경찰은 여러모로 많은 애를 썼다.


1초만 내가 더 속도를 냈다면 나는 내게 오는 차에게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 혹은 1초가 늦었다면 나는 운전석 가까운 곳을 부딪쳐 더 큰 사고로 이어졌을까? 그 순간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그 청년이 말을 바꾸자, "내가 빨간불에 좌회전했나?" 자문해보게 되기도 했다. 그런 기억은 전연 없지만, 만에 하나 그럴 수도 있을까, 지금도 고개를 흔들게 된다.


사촌오빠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을지라도, 방어운전하는 민첩성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사고는 순간적이고, 중요한 건 두쪽 다 몸이 성하다는 점이다. 그 청년은 앞길이 창창한데, 자신의 잘못으로 나오면 보험료가 올라갈테고, 여러가지 걱정되는 일들이 많아, 자신의 불도 그린이었다고 기억을 바꾸어버렸을 수도 있다.


마침 사고난 날이 일요일이라 보험 브로커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차를 토잉카 회사로 가져가게 하고, 키치너 오빠와 함께 오빠네 가게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아직 떠나지 않은 언니가 있어서 언니차를 타고 집으로 오면 되는 일이었다.


사고가 난 날은 오랜만에 미국에서 엄마를 보러온 동생부부와 또 한 동생, 그리고 캐나다 가족들이 거하게 만남을 갖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동생집에 의자를 전해줘야 해서, 그 의자를 실을 수 있는 남편의 큰차를 타고 갔었다. 그전에는 너무 육중해서 그 트럭을 운전하지는 않았었다. 말하자면 첫번째 끌고 나간 차를 그렇게 형편없이 부숴버린 것이다.


원래는 1박2일 보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돌아가기로 한 날 아침, 남편에게 문자가 왔었다. 오랜만에들 만났는데 하룻밤 더 있다가 와, 이렇게 말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너그러움"을 사방에 알리는 계기도 되어서, 차마 "아니야, 그냥 집에 돌아갈께" 하지 않고, 바로 "그래도 되겠어? 함들텐데" 하면서 그 열매를 단숨에 삼켰었다.


엄마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는 것을 누가 할까, 그전날 고민했는데, 시간에 쪼들리는 동생 대신(나도 쪼들리긴 하지만..) 내가 할까?며 자원할 마음도 있었는데, 그 트럭을 끌고 도시에 들어가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데 모두의 생각이 미쳐서, 나는 집으로 바로 돌아오기로 결정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3일간 홀로 일했을 남편에게 늦은 점심이라도 챙겨줄 수 있게 되어서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보험회사에서는 오랫동안 연락이 안왔다. 차를 폐차하려면 수리 비용이 차 가격의 80% 이상이어야 하는데, 우리 차 견적은 71%로 나와서 숙고중이라는 소식을 전해받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는 이왕 사고가 난 것, 폐차 처리하고 나중에 구입하게 되는 것이 유리했다. 고쳐서 다시 타고싶은 생각이 들지 않음이 첫번째 이유이고, 겨울에 차 한대로 생활할 수 있으니, 굳이 트럭에 나가는 몰게지를 부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폐차처리하게 되면, 몰게지 남은 것을 보험회사에서 갚아주는 것으로 해결된다.


며칠전 드디어 연락이 왔다. 차를 폐차하기로 했다면서. 그날 누구의 잘못으로 나왔는지, 한번 더 확인해야 했는데 그것을 잊고 묻지 않았다. 동네 보험회사 브로커에게 물어본 결과, "경찰 보고서에 민디의 잘못으로 적혀있지 않다. 걱정하지 말아라"는 답이 왔다. 그 이야기를 듣고도, "정말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하는 물음이 다시 나오려고 했다.


"당신 잘못 아닙니다" 이말을 그렇게 듣고싶었던 것같다. 내 몸이 다치지 않아서 그런지, 왜 그렇게 그것에 집착하게 될까? 눈감고도 운전할만큼, 온몸의 감각이 살아있는데, 빨간불에 좌회전했다는 말은, 내자신이 부정당하는 것같았던 것 같다. 나를 사랑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그 믿음에 대한 보답을 해주고 싶은 게다. 내차를 박은 21살의 청년은 자신의 잘못으로 나오면 호된 홍역을 치를 것이다. 그럴줄 알면서도 "그건 그가 치뤄내야 할 일"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누가 확성기에 대고 "네 잘못 아니야"라고 해주길 기다렸던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몇번에 걸쳐서 네가 잘못한 것은 아닌 것같다는 말을 들었었다. 보험회사 본사 직원에게도, 동네 브로커에게도, 경찰에게도.. 


혹시나 내가 잘못하지 않았나? 나를 믿을 수 있나? 그런 점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명확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다. 피해자가 분명한 데도,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소리를 듣지 못할때 갖게 되는 불안감을 조금은 알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차사고를 당하면서 몇가지 반성을 했다. "나의 한계를 깨닫자"는 것이다. 트럭 운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자원해서 의자를 날라다주기로 했고, 그 의자 때문에 트럭을 끌고나가 사고를 당했다. 만약 조금 짧은 내차였으면 같은 상황이었더라도 뒤를 받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명백히 나의 한계가 있는데, 나는 자주 그걸 망각한다.


그리고 또하나는 죽음준비를 제대로 해놓자이다. 이렇게 말하고도 또 얼마간의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 확실하다. 통장은 남편과 조인트 어카운트를 만들어놓아야 하고, 아이들에게 주는 유언장도 작성해놓아야 한다. 유언장이 없으면 많은 것이 어려워지지 않겠나?


지난번 7명의 여인들이 함께 모였다. 그중 막내가 나였고, 70중반의 언니까지 계셨다. 어쩌다 유언장, 요양원, 장례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건강을 이야기하던 데서 화제가 점점 더 노숙해져간다. 유언장을 작성하라는 말을 들은지도 몇년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이러고 있다. 내년안에는 꼭 이런 것들을 모두 잘 정리해놓자고 다짐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함께 갑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