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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Nov 28. 2021

"김치"에 진심

동네 친구와 함께 김치의 날 행사

가만 있어보자, 모두 몇 가지 재료가 들어갔는가 헤아려 보자.

배추, 무, 파, 양파, 생강, 새우젓, 멸치액젓, 찹쌀가루, 갈색설탕, 고춧가루, 소금

휴 간신히 문턱을 넘었나 보다. 11가지(이상)의 재료들이 모여 22가지 이상의 효능을 지닌 음식이 된다는 김치, 이를 기념하여 "김치의 날"이 11월 22일이 되었다 한다.

한국에서 작년부터 기념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도 아르헨티나에서도 김치의 날이 제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다.


여기 캐나다 온타리오 작은 마을에서도 이날을 기념한 행사가 있었다. 민디네 집 부엌에서 2명의 아낙네와 함께 김치 담그기 행사를 벌였다. 독자 중에 몇 명은  기억하리라, 지난번 새로 이사한 집 정원 청소 모임에서 파생된 이야기다. 나는 그날 소피아를 따라갔다가 파트락 점심시간에 내가 가져간 김치를 내놓았다. 그 김치에 지대한 관심과 함께 김치 담그는 법을 알고 싶다는 킴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다. 옆에서 소피아도 자신도 김치에 흥미가 있다고 맞장구쳐줬다.


처음엔 진심이 아닌 줄 알았다. 그랬는데, 킴에게서 연락이 왔다. 김치를 담가야겠는데, "바다소금"을 넣으라고 했는데, 그걸 구하기가 어렵다면서 어떻게 구해야겠느냐는 질문이었다. 다른 절임 소금으로도 될 거라 말해줬다. 그런 다음 며칠 후 키치너 가는 길에 한국식품에서 약간 작은 크기의 바다소금, 고춧가루, 멸치액젓을 몇 개씩 더 사와 그것을 가게 선반에 올려놨다. 킴은 나중에 가게로 와서 고춧가루와 소금을 사 갔다. 그녀에게 유튜버 망치(Maangchi, 한국식 영어로 한국음식을 소개한다)의 영상을 소개해줬다. 킴은 나중에 자신이 담은 김치 사진을 보내주었다. 언젠가 동네 산책길에서 만난 킴에게 김치 맛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면서 다른 비교대상이 없으니, 지금으로선 최고의 맛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가 만나기 전에 킴은 이미 김치를 혼자 담갔던 것이다.


대망의 22일 날, 킴은 자신이 담근 김치를 작은 통에 담아왔다. 그래서 맛을 봤더니, 약간 짠 것을 제외하고는 잘 담아졌다. 킴의 김치는 내가 첫 번째 담갔던 망했던 그 김치의 기억을 소환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절인 배추를 제대로 헹궈내지 못했던 것. 내 김치는 아예 먹을 수 없었던 반면 킴의 김치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킴은  "망치" 아줌마의 비디오를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고 했다. 그것도 비건 김치로. 새우젓과 멸치액젓이 들어가지 않고, 야채 국물을 내서 만들었다고. 이쪽 동네에서도 김치 재료를 구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나 기본양념 등을 갖춰놓으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살 수도 있을 것이기에 우리 가게에 한국식품 코너를 조금씩 늘려나가야겠다는 야무진 생각도 해본다.


The Day of Kimchi


When: Nov. 22nd 3pm... for ladies

                            7pm... for gentlmen


where: Mindy's home

What to bring: dessert and container(if you can)


I am exited(and a nervous) to host Kimchi Day.

I hope the Kimchi turn out well

But in any case I am sure we will have a good time together!

See you then.


이날의 행사를 위해 전날 밤 사촌 오빠네를 찾아갔다. 한국식품을 하는 오빠이기에 배추 한 박스 등 김치재료와 그날 먹을 수육용 돼지고기도 샀다. 그리고 한국 과자 전병까지. 오고 가고 4시간 운전, 그리고 오다가 돌에 맞아 차 앞유리가 살짝 금이 가는 불상사까지 발생해서, 그것을 상쇄할 만큼 의미 있는 시간이 되어야 했다. (아 근데 오빠가 돈을 받지 않았다. 남편이 지어준 한약에 대한 보상이라며.. 내참)


배추 1박스에 12포기쯤 들었던 것 같다. 배추가 속이 꽉 차서 무척 무거웠다. 5포기를 두 사람에게 줄 생각을 했고, 7포기를 미리 절여놨다. 나도 망치의 유튜브를 보니, 30분마다 절인 배추를 뒤집어주면, 2시간이면 다 절인다는 다소 의외인(?) 소개가 있었던 터라, 3시부터 시작하면 7시 저녁식사 전까지는 담글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해봐야, 혼자서도 담글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계획했다.

배추 절이는 것을 보여주고 따라 하게 했고(사실 절이는 부분은 나도 늘 어설프다), 찹쌀풀을 쑤고 투명해진 순간에 갈색설탕을 넣는다. 킴은 찹쌀풀을 맡았는데, 김치 담글 때 언제나 찹쌀풀 쑤는 시간이 지루하고 오래 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날은 순식간에 잘 쑤어져서 깜짝 놀랐다. 역시 본인이 하는 것보다는 지루한 일은 누군가를 시켜야 한다는 교훈을.^^


무 채썰기 또한 내가 어려워하는 작업 중 하나이다. 주로 남편에게 부탁한다. 채칼로 썰다가는 마지막에 내 손가락 바깥쪽까지 갈게(?) 된다. 피 묻은 김치가 되는 순간이다. 무 채 썰기는 소피아에게 부탁했다. 내 경험을 말해주며 너무 마지막까지 썰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무 4개를 너끈히 채칼로 잘 썰어주었다.


문제는 배추에서 생겼다. 30분마다 위치를 바꾸며 절여주었어도, 충분히 절지 않아서 처음에 내가 절여놓았던 것으로 우선 담기로 했다. 내 것 네 것이 없이, 잘 절여진 놈들을 골라내 킴에게 깨끗이 남은 소금기를 씻어내라고 했다. 총 3번은 헹궈주어야 한다. 잘 절여지지 않은 배추는 큰 통으로 다시 옮겼다. 망치 유튜버는 아마도  소금을 넉넉하게 뿌리는가 보다. 양재기에 찬물을 담아 찹쌀풀 냄비를 넣고 식혀놓았어도 충분하지 않아, 여러번 저어서 훈기를 날려 보냈다. 찹쌀풀은 미리미리 해놓는 것이 좋다.


이제 모든 재료를 넣고, 잘 섞어주면 된다. 김치속은 절여지고 있는 배추까지도 담가야 했으므로 조금 많다 싶을 정도로 만들 셈으로 양념들을 들이부었다. 그런 다음 양념과 무 파와 함께 섞는 것을 두 사람에게 시켰다.

나는 수육을 삶고 잡채를 만들고 상차림을 준비하는 동안 두 사람은 김치 속을 버무리기 시작한다. 소피아는 배추를 삐딱하게 반쯤 엎어놓고 양념을 바르고 있어서, 킴의 모습을 보고 배우라고 했다. 킴은 아무래도 한번 경험이 있는지라 잘하는 편이다.


킴에 의하면 자신의 남편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번에 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녀는 던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보탰다.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뭐, 했는데 다음 기회에도 그가 올지 모르겠다. 킴은 두 사람 몫을 하려고 그러는지 남편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화제에 남편도 등장시키고, 1인 다역을 잘 소화했다. 소피아는 한국 전통에 대해 조금 찾아보고 왔는지,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전통적으론 그랬는데 요즘엔 식탁을 사용한다고 했더니 전통적인 식사를 해보자고 했다. 숟가락과 젓가락도 사용하면서. 자신은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하니, 시간을 충분히 들여 천천히 먹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5명이 상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나는 키가 크고, 다리가 긴 그렉이 앉아서 먹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정작 킴이 앉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앉아서 겉절이와 함께 한국음식 시식회를 하게 됐다. 소피아하고는 가끔씩 만나 산책을 하는데, 이렇게 하루 종일 함께 있었던 적은 또 처음이었지만, 그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나와서 전연 불편하지 않았다. 킴과 소피아는 때때로 내가 모르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아는 사람들 이야기에 나도 흘러들어 함께 말을 섞기도 했다.


소피아가 가끔 들여다보는 노인이 최근에 거실에서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 병원에 연락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노인은 예전에 내가 한번 언급한 노인으로 요양원에 들어갈 때가 되었는데 집에 있다가 그런 사고를 당했다. 소피아가 들여다보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노인은 병원에 옮겨졌고, 요양원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고 소피아는 말한다. 노인의 집 냉장고와 주변 음식물을 치웠다고 한다. 내가 안타깝다고 말했더니, 소피아는 자신은 그 노인이 그런 말로를 맞게 될 것 같았다고 말한다. 예전부터 집 청소할 사람도 부르고, 노후를 도모했어야 하는데, 이리저리 핑계를 대고 혼자 그렇게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자식들도 아버지를 보고싶어 하지 않고, 단 한명의 딸이 아버지의 집이 대충 치워지면 한번 방문하겠다고 해서, 돈을 들여 집청소를 주선하는 일을 소피아가 했는데, 노인이 그런 일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노인을 돌봤던 소피아의 말에서 냉정함이 흘러나온다. 정신도 조금씩 흐려져간다는 짐(노인의 이름)은 이제 집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그날 대화를 하면서 킴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듣게 됐다. 킴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다는 것. 자신들까지 인구 포화 상태인 이 지구에 더 보탤 이유가 없어서 그런 결정을 했는데 잘한 결정인 것 같다고. 남편과 오랫동안 오토바이를 탔는데, 최근에 오토바이 라이딩에서 은퇴했다는 말도. 아직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큰 사고가 없었느냐는 나의 질문에 한번 큰 사고가 있었는데 자신의 몸이 약간 언 길 위에서 마치 슈퍼맨처럼 앞으로 쑥 뻗어나가는 경험을 했다고 해서 놀라게 했다. 지난 일이니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얼마나 끔찍한 사고였을지 상상할 수 있다. 킴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고, 여자의 몸으로 건설현장에서 일했으며, 결혼초에는 방 하나 정도의 크기인 캐빈에서 살기도 했다고 하니, 평범한 삶은 아니었던 것 같다.


소피아는 독일에서 온 첼로를 켜는 여인이다. 캐나다에서 독일로 공부하러 갔던 남편을 만나서 결혼해서 영국으로 갔다가 캐나다로 왔다는 말은 그전에 들었다. 소피아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내게 이야기해주는데, 거기에는 아픔들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소피아가 이야기하면 그런 것이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고, 모두 그런 어려움들 속에 살아가는구나 공감하게 된다. 건강에 문제가 있어서 후세를 갖지 못하게 될 아들 이야기를 할 때도, 첫 번째 남자와 헤어질 때 딸이 곤란을 겪었던 일도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면 그것이 삶을 구성하는 한 요인인 것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그녀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마음놓고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렉은 귀를 기울이는 스타일의 남자였다. 비행기 사고가 났었는데 그 사고로 가까운 사람 2명이 유명을 달리했다고도 말했다. 그가 어렸을 때는 엄마가 간염이어서 어린 자식들이 엄마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던 이야기는 소피아에게 들었고. 막내동생은 형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 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기도 했다. 그렉은 여인네들이 담근 김치를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다. 아직도 절여지고 있는 배추를 보면서 그 "양"에 놀라는 눈치다. 한국 김장의 장면을 본다면 뒤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아픔들을 지니고 살지만, 또 이렇게 만나 함께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소피아가 가져온 후식은 "베이크 사과"였다. 독일식 다른 이름이 있겠지만 사과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오트밀, 각종 너트를 채우고 메이플 시럽을 넣고 오븐에 구웠다. 아주 달콤하고 맛이 있었다. 독일 후식이었기에 "독일식"으로 우리는 모두 다시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잘 구워진 사과가 얼마나 맛있고 모양이 그럴싸한지, 사진을 찍었는데 흔들려서 이곳에 올리는 못하는 점이 속상하다.


그렇게 그날의 시간들이 흘러갔다. 본인들이 버무려 비전문적으로 김치통에 담은 김치를 한통씩 가져갔다. 이날 김치에 쓰인 고춧가루는 한국의 언니가 사촌 오빠네 농장에서 사서 일일이 고춧대를 따고 방앗간에서 빻은 100% 서산 품종의 고춧가루다. 캐나다와 미국의 가족들 먹으라고 언니가 부쳤는데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운송료)이 비싼 귀한 고춧가루다. 두 친구에게 고추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김치와 함께 고춧가루를 백에 담아 조금씩 주니, 너무 귀한 것을 얻어간다며 좋아했다. 마치 빨간색 금가루를 가져가는 듯이 말이다.


이번 모임을 통해서 한번 더 느낀 것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젓가락을 잘 쓰진 못하지만 열심히 노력했고, 앉은뱅이 식탁에 앉아서 문화의 진수를 맛보고자 했다. 킴과 소피아가 우리 집 부엌세간 중에서 가장 관심 있어했던 것은 김치냉장고이다.


킴이 너무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좋은 선물을 줘서 감사하다, 너의 부부와 네 나라의 문화를 조금 더 알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문자가 왔다. 그래서 "당신이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보여줘서 이 일이 시작됐다"면서 앞으로 기회를 더 만들자고 답글을 보냈다.


이렇게 페이슬리 김치의 날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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