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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r 06. 2022

MD와 MD가 만나다

세미 은퇴의 목전에서

그로서리 선반을 닦는다. 물건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유효기간이 지난 물건이 많이 눈에 뜨인다. 먼지를 닦으며 선반밑으로 내려놓는다.  맨 위 선반에 있는 물건들이 특별히 먼지가 많이 끼었다. 윗선반은 먼지방지용으로 물건을 올려놓지 말고, 비워놓기로 한다.


키가 큰 남편은 꼭대기 선반에 물건을 채워놓기를 좋아한다. 나는 그것이 언제나 눈에 걸린다. 이제는 재고를 줄일 겸 윗선반을 비워놓는 것에 동의를 얻어냈다. 장사를 같이 하다보면, 이렇게 작고 미묘한 문제에 호불호가 갈려서 부딪친다. 


남편이 가게를 볼때는 진상고객이 더 많이 출몰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내가 분석하기론 남자들은 호시탐탐 상대방을 짓밟을 기회를 엿보는 게 아닌가싶다. 나는 일년에 한번 일어날까말까한 고객과의 불편한 상황이 남편에게는 꽤 자주 발생하니 말이다. 


지난 1년 동안 우유값을 밑지고 팔았다는 사실을 며칠전 알게 됐다. 소속해 있는 준 프랜차이즈인 "프로그램 스토아"의 프로모션으로 우유를 꽤나 싸게 판지가 몇년이 되었다. 우유값이 싸서 그것만 찾는 손님들이 있고, 나름대로 가게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었다. 공급가보다 싸게 팔고 그 차액을 리베이트로 보충해준다. 프랜차이저의 명령을 잘지킨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미 1년전에 그 프로그램이 폐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유값이 더 올라서 알아보다가, 본부로부터 우리에게 통보했었노라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됐다. 원래 우유는 리베이트를 받아도, 이문은 한백당 25센트가 될까말까한데, 그나마 리베이트가 안나오고 있었으니 이럴수가. 가게를 떠나면서 동네 사람들에게 어떤 보답을 해야하나 했는데, 그들은 모르지만 그런 서비스를 했다 생각하기로 한다. 가게는 깊이 알수록 그다지 매력적인 사업은 아니다. 그야말로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편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 예전에 가게해서 돈벌었다는 선배들의 전설이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전설에 불과할뿐이다. 


지난 28일 드디어 이 가게와 건물이 팔렸다. 컨디션 해제가 되었고, 5월2일날 인수인계가 끝나면, 25년째에 들어선 우리의 가게인생이 마무리가 된다. 울고 웃는 이야기들은 25년안에 다 들어있다.


선반을 정리하면서 내가 신경을 쓰지않고 가게를 해왔다는 사실을 더 확인한다. 어떤 쪽이냐면, 나라면 이런 물건 이렇게 많이 사다놓지 않았을텐데. 왜 "토마토 소스안에 있는 콩" 깡통이 이렇게 많은 거야? 이러니 유효기간이 지나지, 이렇게 화살을 돌린다. 그래도 지난 1년간 최선은 아닐지라도 가게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고나니 "우습게 보이던 가게경영"에 남편의 에너지가 어떻게 고갈되어 왔는지 좀 깨닫게 됐다.


동생들이 언니가 친정식구들 때문에 왔다갔다 하는 동안 "형부가 고생한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그는 나의 잦은 출타를 민망하지 않게 해줬지만, 사실 출타후에 그의 신경이 예민해진 것을 느끼곤 했다. 가게에 헬퍼가 없게 되고, 내가 없으면 하루종일 혼자 가게를 봐야 하니 왜 안그렇겠는가? 나는 최소한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자주 이런 상황에 부딪치곤 했었다.

그 "어려움"이 가게를 파는 것에 도움이 됐다. 언젠가는 가게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걸 실천할 적정 타임을 아주 잘 잡았다는 생각이다. 그때 즈음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의견을 조율하고, 작은 생각까지 나누려 했다. 그것에 대해선 지난번 글에서 밝혔었다. 


2월 27일 밥을 하는데 남편의 호출이 있었다. 메디슨과 다니엘이 왔는데 물어볼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날이면 조건해제의 날이어서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릴 때였다. 무슨 문제가 있나, 내려왔다. "재정" 문제가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재고"에 대해서 물어봤다. "불꽃놀이"가 잘 팔리는지. “여름"에 조금씩 나간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불꽃놀이는 꽤 돈이 나가는 품목들이다. 인벤토리에 대해 걱정이 되어서 왔던 것같다.


그 다음날 완전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재고를 최대한 줄여줄 것"을 요구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돈에 큰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었나 보다.  김치담을 때 필요한 멸치액젓을 몇개 사다놨는데, 그것이 팔릴 것 같지 않아서 거둬들였다. 날짜가 지난것, 너무 물건 값어치가 없는 것들을 모두 뺄 예정이다. 


앞으로 되도록이면 물건을 채우지 않고 견뎌나가기로 한다. 날짜 지난 물건, 버릴건 버리고, 모아진 두 박스는 닉의 엄마가 왔을 때 남편이 권유했더니 가져가겠다고 했다. 아무에게나 가져가랄 수는 없는데, 남편은 가끔씩 날짜 지난 칩스와 그로서리 등을 그집에 주곤 해서, 그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나도 깡통제품, 콩, 감자 등을 가져왔다. 


조건 해제의 그날, 그녀는 나의 굳어있는 표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자신의 시어머님도 3년전 가게를 처분했는데, 무척 맘고생하셨다면서, 이제 조금만 있으면 끝날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마지막 사인하러 와서 이런저런 질문에 남편은 일일이 답변해줬고, 앞으로 시간나는 대로 트레이닝도 시켜주겠다고 했다. 대부분의 거래처를 유지하니, 하나씩 인수인계를 해줘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두집의 계약이 완성됐다.


메디슨은 가면서 민디, 데이빗! 메디슨, 다니엘!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처음엔 그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우리 모두 같은 알파벳 첫자를 지닌 부부였던 것이다. 


메디슨은 내가 이 가게를 살때를 돌아보게 한다. 겁이 많은 나는 그때도 이 가게가 우리것이 될수 있으려나 조마조마했었고, 드디어 구입하게 되었을때 엄청 기뻤던 기억이 났다. 나는 그들의 처분을 바라는 사람처럼 있긴 했지만, 메디슨도 이 건물을 구입하면서 여러가지 마음고생과 또 희망 사이에 있겠구나 싶다. 어린 아들을 키우는 뉴욕과 토론토라는 도시에서 살았던 젊은 엄마인 그녀가 작은 마을 가게경영자가 되려고 하니, 얼마나 큰 변화일까? 그러나 그 둘을 보건데 가게 경영을 오래할 것 같지는 않다. 모델일과 기타 사업으로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어쨋거나 그들이 가게를 지키는 동안 매일 300달러치의 스크래치 티켓과 로또를 사는 복권여인 린다를 만나게 될 것이고, 어설픈 새주인을 길들이는 린다 모습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문을 열자마자 담배를 사러 오는 도로시 여사는 우리가 떠나가도 계속 아침 손님이 될것이다. 그들은 동네 사람들에게 이 가게를 계속 경영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아마도 한참 동안 듣게 될 것이다.


가족을 위해서 밀크를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인 것을 파악하게 될 것이고, 공짜로 받은 중고매장에서 누군가 물건을 사가면 살짝 흡족한 마음이 들 것이다. 다른 생각할 시간없이 바쁘면 좋겠지만, 따분히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고, 가끔씩은 로터리에서 잭팟이 터져서 기뻐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처음 낯선 동네에 들어와, 묵언수행하듯 말없이 가게를 경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판도가 벌어지겠지. 메디슨은 특유의 붙임성으로 동네 젊은 여성들과 쉽게 친해질 것 같다. 


미국 시카고에서 동생 둘이 자동차로 올라왔다. 엄마와 아픈 큰언니를 보는 게 목적이긴 하지만, 우리를 축하하는 것도 여행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동안 눌렸던 마음을 활짝 펴고 마음놓고 웃었다. 


앞으로 두달간 짐을 싸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면 될 것같다. 

나이든 MD는 이렇게 세미은퇴의 목전에 와있다. 젊은 MD는 침체된 이 가게에 젊은 숨결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아하, 벌써 우리가 사는 아파트에 살 사람이 정해졌다는 소식이다. 1호실에 이사오게 되었다고, 남편에게 신고(?)한 손님은 젊은 부부와 그 어머니, 그간 아픔이 많았던 가족이다.  메디슨 가족은 2호실에 머무를 예정인지, 어쩔 것인지 자꾸 호기심이 일지만, 더 많이 알려고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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