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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dy May 17. 2022

안녕 페이슬리

24년간의 비즈니스를 정리하다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밀물처럼 그간의 일들이 밀려내려 오기 시작한다.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벌써 5월 중순이다. 우리는 이제 새집으로 이사 왔고, 메디슨과 대니엘을 측면에서 돕고 있다. 가게에 온 새 주인들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들은 이 가게를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된 사람들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들이 왜?" 하는 질문이 나온다.


메디슨은 자신의 빵 굽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마음에 있던 건물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왜인지 무척 서운했었는데, 빵을 굽다가 이스트가 없어서 대니엘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가 나를 만난 것이 시초였다고 한다. 그날 가게 계약이 깨진 것을 알게 됐고,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단다.


메디슨은 자신은 빵을 굽는 사람이 아닌데, 왜 그날 빵이 굽고 싶어 졌는지, 설명할 수 없다 하였다. 남편이 대니엘에게 모델일도 바쁠 텐데 왜 이런 일을 하려고 하냐고 물으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대만 출신인 자신의 아버지가 "예쁜 여자(메디슨) 데려다 놓고, 고정수입 하나 없어서 어떡하냐"라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너무 한국식이어서 우리 둘이 함께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 있을 때마다 오라고 해서 트레이닝을 시켰다. 그 와중에 메디슨은 코로나도 감염되고. 서로 상봉하지 못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두 집에 불어닥친 변화를 기반으로,  우리가 살던 곳으로 이사 올 가족들이 이삿짐을 비어있는 곳에 우선 갖다 놓고 호시탐탐 들어오려고 대기 중이었다. 변호사들, 부동산업자들, 은행 관계자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까지 나의 움직임과 함께 크고 작은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변화는 한 사람에게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란 걸 변화의 소용돌이에 서보게 되면서 느끼게 된다. 2층 아파트 3채 중 한 채는 이미 나갔고, 다른 2 채도 빌려줄 계획으로 사람들을 고르는 중이었다. 게다가 사무실도 있으니, 가게 수입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24년간 경영했던 Midtown Foodmart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새 주인은 가게 상호를 "동네 개발 목표"에 부합하는 것으로 바꾸기로 하고 펀딩을 타냈다는 소식이다. 서긴강에 산다는 전설속의 동물 "Saugie's Stop & Shop"이 새 가게 이름이다. 마스콧도 만들고, 각종 라면제품을 많이 취급하고, 동네 사람들의 새로운 사랑방으로 태어나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가 그곳을 물들이고 있다.



며칠전에는 새가게에 함께 들렸다. 위층에 전기가 나갔는데 왜 그런지 알수가 없다고 연락와서 남편이 도와준다고 장비를 챙겨서 갔는데, 본인들이 문제를 해결한 것을 보게 됐다. 메디슨의 엄마는 화가인데, 딸의 가게에 와서 아름다운 사인들을 많이 만들고 있었다. 우리가 덕지덕지 붙여놓았던 각종 광고들을 많이 제거했고, 카운터옆에 놓였던 신문대가 아이스크림 냉동고 옆으로 옮겨져서 훨씬 넓어 보였다. 


그곳에 가니, 나도 쇼핑하고픈 욕구가 들었다. 내 가게에서 갖다 먹다가, 처음으로 쇼핑을 했다. 라면 몇 개와 새로 취급하는 칩스, 검을 샀다. 메디슨은 냉동고에 있는 프로즌 베이글이 잘 팔린다며, 내게 한 다즌을 주었다. 

가게를 넘기고 공식적으로 열쇠를 건네받음을 축하하며 메디슨이 열쇠를 들어보이고 있다. 

매일같이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던 대니엘은 요즘은 뜸하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가게 인스타그램에 좋은 반응이 있다고 해서, 한번 찾아봤더니 역동적인 가게의 모습이 담겨있다. 신구 주인이 가게 앞에서 찍은 사진에 좋아요를 남겨놓았더니, 얼마 후 대니엘이 내 인스타그램에 팔로우가 됐다. 내 인스타그램은 개설만 해놓고 쓰지 않고 있는 빈 공간이었는데, 대니엘 한 사람이 팔로우해준 것이다. "구독"도 좋지만 "팔로우"도 또 묘한 뉘앙스를 가진 낱말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인스타그램을 이제는 시작해야지 하면서 "맞팔"이란 걸 해봤다.


대니엘이 나온 사진을 우리집 아이들이 곳곳에서 발견한다. 고급 양복집에서, 기차 대합실에서. 멋진 포즈로 찍은 사진이 이곳저곳에 있는 것같다. 시골마을 구멍가게 주인이 된 도시 출신 모델부부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대니엘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서 뉴욕에 있다가 토론토를 거쳐 이곳에 정착했다. 도시 사람보기가 어려운 시골에서 그것 자체로 뉴스거리가 될만하다.


메디슨과 대니엘은 작은 마을에 이런 가게는 꼭 있어야 한다고 몇번 말했다. 나도 가게를 잘 경영할 사람들이 이 건물을 사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기대를 뛰어넘는 좋은 주인을 만난 페이슬리 건물. 우리는 떠났지만, 앞으로 페이슬리 주민들의 쉼터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서운함을 표현해주었다. 소피아 부부와 짐 부부와 파트 락 디너를 하기도 했다. 앞으로 이어질 관계가 되면 좋겠지만, 잘 모르겠다. 쉐릴은 카드를 가져왔다. 그 내용이 너무 좋아서 이런 마지막은 우리가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동네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렸지만, 리포터가 너무 영혼이 없이 인터뷰해서, 좀 그랬다. 그리고 그 사진 실력이라니. 뭐 아무려면 어떤가. 가는 사람은 조용히 가라고 했는데, 우리는 좀 시끌벅적하게 떠나온 셈이 되었나. 마지막 날 토론토에서 일인분씩 포장된 떡을 사와 커피와 함께 주며 고객들과 석별의 정을 나눴다. 떡은 찹쌀떡보다는 멥쌀떡이 더 인기가 있었다.



짐과 에리카는 분필을 가지고와서 가게앞에 큰 글자로 24년간 고마웠다며 글자 선물을 해줬다. 내가 이사 온 오웬 사운드와 페이슬리는 45분 거리이다.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 와서 완전히 떠난 느낌은 아니다. 동네 사람들도 같은 생각일 것 같다. 세 개의 카드를 받았는데 그중 쉐릴의 카드는 너무 고마왔다. 카드 안에 다시 타이핑한 편지를 동봉했다. 이 편지를 읽으며, 페이슬리의 시작을 연 것도 하나님이시고 마지막도 하나님이시라라는 것을 완전히 알게 됐다. 영어도 못하는 범버꿍으로, 아이들 뒤, 남편 뒤로 몸을 감추고 살던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 마음문 열고 안되는 영어로라도 이웃처럼 살려고 했는데, 이런 선물과 대접을 받을 주제는 못되는 걸 나는 아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끝을 맺게 해주셨다. 내가 너를 신경쓰고, 돕고 있단다, 이런 느낌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과한 선물과 관심에 감사밖에 할 것이 없다.


안녕 페이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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