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가 기다릴께요

엄마에게 드리는 편지

by mindy
큰애가 어느날 그런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것이 무언인지는 조금 알겠는데, 할머니는 어떤 것을 좋아하셔?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아니 말하자면 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엄마는 "사진찍는 것" 좋아하잖아. 할머니는 평생 어떤 것을 좋아하셨을까, 궁금해서 그러지. 그때, 머리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어왔지만,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떡 만드는 것? 반찬 만드는 것? 뜨개질? 재봉? 등 엄마가 잘하는 것은 생각났지만, 딸아이의 질문은 엄마 당신의 즐거움을 위해 열정을 바치는 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엄마는 그런 삶을 꿈인들 꾸어봤을까?

우리 엄마 시대 분들은 자신의 삶을 저당잡히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한 마지막 세대가 아닌가싶다. 나만해도 아이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건 내삶의 일부분이다.

최근에 엄마의 죽음과 동생 시어머님의 죽음을 가까이서 겪었다. 그리고 두분의 삶과 죽음이 어찌 그리 비슷한지 놀라기도 했다. 자신을 위해서 쓴 시간은 없지만, 그분들의 삶은 그 누구보다도 고귀했고, 훌륭했다.

당신들은 세상적 성취와 무관하게 살았지만, 당신들을 통해 전해진 그 희생은 어느것 하나 땅에 떨어진 것이 없었다. 비록 그럴싸한 취미 하나 곁에 두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성공적인 삶을 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유명한 강연을 듣거나, 교육을 받지 못했어도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온몸으로 증명하셨다.

엄마를 떠나보내며, 조금 서운하여 마지막으로 세 자매의 동의를 얻어, 그들의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어본다.

그리고 온맘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신 이땅의 어머니들께.


편지 하나 : 이제는 제가 기다릴께요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소중한 우리 엄마, 이세상에서 제일로 아름다운 우리 엄마,

막내에요. 엄마를 날마다 기다리시게만 했던 막내에요.

바쁘다 오지 않는 딸, 간신히 와도 바쁘다며 금방 가는 딸, 언제나 저만이 먼저였던, 엄마 90평생의 기다림에 눈하나 깜짝 안했던 못된 딸, 그많은 말썽으로 엄마의 가슴을 멍들게 하고 눈물짓게 했던 막내딸입니다.

엄마, 아시지요? 내가 이번만큼은 엄마를 기다리게 안한것.

눈을 뜨고 계시지는 못하셨지만 보셨지요?


딱한번, 이세상에서의 엄마의 마지막날에 딱한번, 이른봄 햇빛이 화창했던 그날에, 엄마 평생에 딱한번은 제가 엄마를 기다리게 안한것 아시지요. 엄마를 제품에서 놓지 않은것 아시지요. 엄마가 떠나시는 마지막 그순간까지 엄마의 그 작은 몸을 제 품에서 절대 놓지 않은것 아시지요. 엄마가 젤로 사랑한 막내가 엄마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은것 아시지요. 차갑고 시끄러운 병원, 영어쓰는 의사들 하나도 겁나지 않으셨지요. 엄마가 싫어하셨던 얇은 병원 홋이불 위에 따듯한 담요 덮어드린것 아시지요. 엄마 마지막 떠나시는 길에 제가 엄마곁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엄마를 지킨것 아시지요.


사랑하는 우리엄마, 자식들에게 마지막 효도할수 있는 시간을 주시기 위해 긴 시간 버텨주시느라 힘들지는 않으셨는지요. 떠나시는 끝날, 끝시간 까지, 끝없는 그사랑, 우리는 눈물만 흐릅니다.

엄마 아시나요. 일주일만 더 살아 계셔 주셨으면, 제가 엄마 옆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고 맛있는 것도 만들어 드리고, 따듯한 이불도 덮어드리고, 팔다리도 주물러 드리려고 했었는데, 이번에 요양원에서 집으로 다시 나오시면, 그렇게 철저히도 앞세웠던 나의 스케줄, 목이 매어 아둥바둥했던 그 잘난 일 다 빼고, 엄마 옆에만 있으려고, 한줌밖에 안남아있는 엄마를 내평생 처음으로 나보다 앞에 놓으려고 맘을 먹고 있었는데,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내가 먼저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었는데, 이게 웬일 인가요. 따신 밥상 한번 제대로 차려 드린적이 없는, 저밖에 몰랐던 이 불효녀 폭포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11남매에게 모든 것을 주고 또주어, 있는 것을 다주어, 한주먹도 안되는 작은 몸하나 밖에 안남으신 그 연약함 속에서 어찌 그리 커다란 사랑과 감동이 뿜어져 나올수 있는지요. 험난하고 고되었던 인생, 그 작고 아픈 몸하나 밖에는 남은 것이 없는데, 그 큰사랑의 무게를 마지막까지 감당하시고, 이세상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환히 빛나는 얼굴로 하나님의 품으로 가시네요. 도저히 부인할수 없는 그 아름다운 엄마의 사랑의 삶 앞에서, 우리들의 눈과 귀는 어쩔수 없이 열리고 마네요. 우리의 눈이 보이고 귀가 들리는 기적이 일어나네요. 엄마의 끝없는 사랑이, 모든 것을 뛰어넘어, 죽음 까지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우리에게 보게 하시네요.


사랑하는 우리 엄마,

찬란하게 빛나는 엄마의 사랑이 너무나 환해서, 그 빛으로부터 숨을래야 숨을수가 없어서 우리 모두는 그 빛가운데로 나옵니다. 끝까지 숨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이제 더이상 부정할 여유를 주지 않으시니 할수없이 우리 모두는 빛가운데로 나옵니다. 평안하게, 환하게,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세상을 떠나 가시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앞에 눈물로 뒤범벅이 되서 나옵니다.


엄마 감사해요.

한달전에 나오셨을때, '이제 우리 막내딸이 아이들도 이렇게 예쁘게 키워놓고 돈도 많이 벌고 잘살고 있으니 나 죽어도 아무 여한이 없다' 라고 말씀해 주셔서, '우리 부자 막내딸 집에 왔다 가서 아무 여한이 없다' 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앞에서 전 부자 입니다. 나 살아있는 동안 부족하지 않게 쓸 만큼 돈이 많아서 부자이고, 힘들었던 우리 가정의 상황에 굴하지 않고 아이들이 더할수 없이 예쁘게 커줘서 부자이고, 엄마의 주체할수 없는 사랑이 차고도 넘쳐서 내삶의 마지막 날까지 쓰고도 남아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또 그 다음의 아이들에게 남기고 가야만 할, 나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입니다.


엄마, 감사해요

세상에서 온갖 죄짓고 제 멋대로 사는 모습, 끝까지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늦게 낳은 나를 위해, 늦게 철든 나를 위해, 늦게서야 하나님께 돌아온 나를 기다려 주시느라 그 약하고 아픈 몸을 놓지 않고 오래 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해요.


철이 없었던 나의 모습이 가슴에 사무쳐 심장은 떨리고 하염없이 울고 있지만, 가시는 그길 이제 제가 더이상 막아설 수 없나봐요. 하나님께로 예쁜 우리 엄마를 맡겨야 할때인가 봐요. 그분의 크심을 믿으며, 나의 억지를 놓고 그분에게로 이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엄마를 맡겨야 할때인가 봐요.


엄마,

이제는 내가 기다릴께요. 천국에서 엄마가 나 기다리는거 아냐. 이제부터 내가 엄마를 기다립니다. 나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세상에서의 나의 시간, 사명을 엄마처럼 아름답게 다 잘 마치고 엄마계신 그곳으로 가는 날을 내가 기다립니다. 엄마 뵐 기쁨으로 기대에 꽉차서 내가 기다려요. 이제부터는 절대로 다시는 엄마가 기다리시게 안할거에요.


엄마, 나 보이지. 엄마의 사랑하는 예쁜 막내딸 보이지.

엄마,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예뻐하시나봐. 우리 엄마를 내엄마로 허락해주신 그 큰 축복, 이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그 큰 축복을 나에게 주셨네.


엄마, 아무 걱정말고 평안히 가세요.

엄마의 든든한 막내, 이번 만큼은 내가, 내 평생의 딱 한번만큼은 내가, 엄마의 마지막 가시는 길 만큼은 내가, 끝까지 엄마 옆에 있어요.


엄마 안녕히 가세요.

죄송해요, 행복했어요, 감사했어요, 사랑해요 엄마.


막내딸 드림


8FC0ADE9-D171-4FC2-965E-0BA261C218C7.jpeg


편지 두울 : 내어주고 또 내어주는 삶

사랑하는 엄마, 오늘 저희는 엄마가 예수님과 아빠가 계신 그곳으로 가시는 그길을 마지막 배웅해드리는 마음으로 이자리에 모였어요. 가시는 그길에 우리의 사랑을 담아 엄마에 대한 기억을 모아 꽃을 뿌리듯 뿌려 드리고 싶어요. ‘엄마’ 그 따뜻하고 예쁜 이름 다시 한번 불러보아요.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런 삶을 사셨어요.


엄마는 안과 밖이 참 예뻤어요. 예쁜옷이 그렇게 잘 어울리셨던 그 깨끗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환하디 환한 웃음으로 해처럼 주변을 밝히시던 엄마. 따뜻한 위로와 환영으로 언제나 우리를 기다려 주시고 반겨 맞아 주시던 엄마. 늦게왔다, 안왔다, 오랫만에 왔다, 불평하지 않으시고 언제나 기다림에 넉넉하셨던 엄마. 우리 모두의 마음 한곳에 그 예쁜 엄마가 자리하고 있어요.


엄마 집에선 언제나 최고의 맛난 음식들이 요술처럼 쏟아져 나왔어요. 집에 갈때마다 엄마 밥상엔 정성으로 준비된 풍성하고 맛있는 요리들이 올라왔고 한국 언니가 빻아 보내준 고추가루로 김치를 담아 미주에 흩어져 사는 딸들에게 돌리는 일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으셨고, 손주들이 오면 언제든지 주기 위해 아이스크림과 사탕은 항상 차고 넘치게 준비해 두고 계셨죠.



엄마는 내어주고 또 내어주는 삶을 사셨어요. 정부에서 나온 작은 돈과 자녀들이 엄마 생신때나 조금씩 모아 드린 돈을 아끼시며 꼬깃꼬깃 챙겨 두셨다가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에게 기쁨으로 나눠 주시던 엄마. 엄마는 받기를 좋아 하신게 아니라 주기 위해 받으셨었다는걸 이 철없는 딸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조금 깨닫게 되었어요. 엄마는 마지막 가실때까지 엄마에게 있던 마지막 한톨의 기력을 다해 저희에게 다 쏟아 부어주시고 그렇게 떠나셨어요.


엄마 가시던 마지막 밤에도 토론토 근방에 있는 자녀들과 그의 자녀들이 다 와서 엄마와 인사 나눌때 까지 그리고 한국의 자녀들까지 인터넷으로 연결해 인사 할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고 일분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막내의 마음을 알아 토론토 가까이에 살기에 가장 많이 수고하고 애썼던 민자언니 종화 언니 막내와 함께 그 어여쁜 밤을 함께 꼬박 지내 주신건 엄마가 우리 자녀에게 쏟아 부어주고 가신 마지막 선물이었지요.


엄마는 참 지혜로우셨어요. 우리는 엄마 아빠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철은 많이 없어서 엄마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해드렸어요. 엄마 사랑 독차지 하고 싶어 은근히 서로 질투도 하고 시기와 경쟁도 하면서 엄마에게 투정도 많이 부리고 고집도 많이 부렸었지요. 우리가 장성하여 스스로 결정하고 살아야할 나이가 되면서 때로는 지혜롭지 못한 인생의 결정들로 인해, 때로는 피할수 없이 찾아오는 인생의 여러 어려움들을 인해 아파할 때 엄마는 우리를 대신해 마음을 조리며 걱정하고 아파하셨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우리가 또 다시 헤쳐 나올걸 믿고 소망하며 기다려 주시고 기도해 주셨어요. 그리고 조금 상황이 좋아지면 어김없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좋아해 주셨고 자랑스러워 해주셨어요.


선교한다고 돌아다니며 엄마곁을 많이 지켜 드리지 못한 이 못난딸, 엄마가 누구인지 너무 늦게 깨달은 이 못난딸, 엄마집에 드나들며 예쁜 커피잔에 커피를 타서 둘이 마시며 나눴던 수많은 대화들. 팬데믹때 엄마를 만나지 못해 울고있는 내마음을 본 우리 아이들이 할머니와 영상통화 하라고 선물해준 할머니의 전화기로 카톡 영상통화 하면서 엄마랑 나눴던 수많은 웃음들과 이야기들. 그속에 반짝이는 엄마의 지혜로움과 아름다운 성품을 저는 가슴속 깊이 묻어놓았어요.


엄마는 멋지고 강했어요. 어려움이 있어도 멋지고 강하게 항상 이겨내고 사는 모습을 우리는 보아왔어요. 엄마의 삶이 어찌 좋고 아름다운 일만 있었겠어요. 19살의 어린 나이로 아빠에게 시집오셔서 열한 남매를 키우며 겪은 우여곡절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40살에 연년생인 저와 막내를 낳고 엄마는 자다가 깜짝 놀라 깨곤 하셨다고 했죠. 우리 둘을 못키우고 죽을까 봐서요. 엄마 저희 둘이 지금 여기 섰어요. 엄마 우리 이젠 많이 자랐어요. 엄마 마음 푹놓으세요.


평생을 교육계에 몸 담으신 아빠가 64세의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 지시고 난후 일년이란 세월을 아빠 옆에서 지키시며 마지막까지 따뜻하게 간호하던 엄마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해요. 그 이후 시집가지 않은 딸 다섯을 데리고 캐나다 이민오셔서 녹록치 않은 이민 생활에 석유회사 직원들 식사를 챙겨주는 일을 하러 엄마 먼 섬 혼자 들어가 몇개월씩 일해서 모은 돈으로 저의 학비를 대주실때 그게 얼마나 귀한 엄마의 희생이었는지 이 못난 딸 그때는 잘 몰랐어요. 그렇게 엄마는 구비구비 어려움이 다가와도 움추려 들지 않으시고 마주서서 대하며 강하고 담대하고 멋있게 삶을 헤쳐오셨어요.


마지막으로 엄마는 하나님이 언제나 제일 먼저 이셨어요. 제가 어렸을때 우리집에는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목사님들이 항상 오셔서 식사하시고 교제하셨던 기억이 많아요. 이민오신후 염광교회로 첫발을 들이시며 돌아 가실때까지 그 첫사랑을 가슴깊이 간직 하고 계셨던걸 알아요. 팬데믹으로 교회가 문을 닫아 못가실 때에도 십일조를 꼬박꼬박 모아 빛바랜 헌금 봉투에 넣어 하나님께 드리는걸 잊지 않으셨던, 요양원에 들어가신후 몸이 많이 아파 누워 지내실 때에도 염광교회의 달력이 가지고 싶다 하시던 엄마의 소원이 그런 엄마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대변해 줬지요. 지난 주일 염광교회 일부예배가 드려지던 그시간에 엄마는 마지막 숨을 거두셨어요.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엄마가 천국에 가는 소식을 그렇게 전하고 싶으셨나봐요. 엄마가 평소에 사랑하시던 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이 오늘 이곳에 다 와계세요. 엄마 넘 좋으시죠? 그토록 엄마가 사랑했던 교회, 그 교회의 사랑을 이렇게 듬뿍 받으며 엄마는 가시네요.


엄마는 저희에게 ‘나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한평생을 정말 잘 살았고 이제 하나님을 만나러 갈 준비가 되어있다’ 라고 몇년전부터 그렇게 말씀 하셨지요. 그러나 우린 엄마랑 조금만 더 있고 싶은 욕심에 엄마를 보내 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많은 육신의 고통을 견뎌 내시면서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죠. ‘얘야 그렇게 고통이 없고 좋은 천국에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데 그럼 이런 정도의 고통도 없이 갈수 있겠니?’ 라고요. 엄마 이제 모든 고통의 옷을 다 벗어버리고 정말 엄마가 가서 쉬고 싶은 그 본향집에 가시니 저희들 엄마를 놓지 못하는 고집 스러운 마음을 이제 내려 놓으려고 해요.


엄마의 삶을 생각하면 세가지 단어가 떠올라요. 믿음 소망 사랑 그것이예요. 엄마는 믿음을 제일로 먼저 하는 삶을 사셨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소망을 품고 사셨고 하나님께 사랑 받는 사람의 모습으로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게 사시면서 그사랑을 우리와 주변에 넘치게 쏟아 부어주고 가셨어요. 엄마 저희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엄마처럼. 엄마 천국에서 우리 보시면서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사랑 계속 쏟아 부어 주실 거죠? 엄마가 보고플때 하나님께 기대며 우리도 엄마처럼 믿음 소망 사랑안에 거하며 살다가 엄마 만나러 갈께요. 엄마 고마와요. 너무 좋은 엄마로 살아 주셔서 감사해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 보고파요. 엄마 편안히 가세요. 엄마 저희 보다 조금 먼저 가셔서 예수님이랑 아빠랑 잘 지내고 계세요. 저희도 엄마따라 이세상에서 주어진 삶을 잘 마치고 천국에서 예쁜 모습으로 우리 다시 만나요.

사랑하는 아홉째 딸 미자 드림


편지 세엣 : 엄마가 주신 힘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생전에 자주뵙지 못하고 불효만 한 딸 여섯째 승자입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은 사랑스런 우리 엄마 그렇게 안타깝게 하늘나라 가셨네요.


동영상으로 마지막 이승을 떠나시기 30분전에 통화를 하며 엄마께 말씀드렸어요.

"엄마 사랑하고, 나중에 나도 갈꺼니까 하늘나라에서 같이 만나자고, 아픔과 고통이 없는 편한 세상에서 아버지 만나세요" 말씀드리니 엄마가 입을 움직여 주시고 들으시고 있다는 것을 제가 알수 있었어요. 들으셨죠?


엄마에게 몇년전 캐나다에서 제가 여쭈었지요.

"엄마 61세에 결혼안한 딸 5명과 말도 안통하는 캐나다땅에서 어떻게 견디셨어요?"

했더니 엄마가 “글쎄 애들 생각하면서 한 5년 버티니 그냥 살아지더라” 라고 하셨죠.

타국에서 줄줄이딸 5명을 공부시키고 먹여 살리느라고 겨울에는 현대자동차 공장인가 그 먼곳까지 가서 밥해주는 일도 하시고 콩나물 사먹을 돈도 없어서 동생들이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하고 엄마는 김치 만들어 파시고 그런 세월을 살아오신 우리 엄마.


엄마집에만 오면 새벽에 엄마의 떡찌는 고슬한 냄새에 잠에서 깨어보면 깜깜새벽부터 일어나셔서 뚝딱 보슬거리는 따스한 떡을 만들어서 내놓으시던 엄마표 찹쌀떡은 입에서 살살 녹았어요.

게철에는 알이 꽉찬 꽃게장을 만들어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도둑을 만들어 주시던 우리 엄마.


그런 엄마가 내속에서 있었더라구요.

그 힘으로 나도 살아가고 있었어요.

엄마가 우리 11명의 자녀들에게 준 사랑과 그 힘으로 나도 내 애들을 사랑하고 세상살이 어려운 일 닥칠 때마다 엄마 생각하며 이겨낼수 있었어요.


엄마에게 전화할 때마다 저의 희망을 말하곤 억지를 부렸어요.


"엄마 100살 이상 건강하게 사는 사람들이 텔레비전 보면 엄청 많아. 엄마도 100세 넘길수 있어" 라고요 .

엄마가 한번 이렇게 말씀하셨죠. “애야 이렇게 늙은 엄마가 어디가 좋아 오래 살라고 하니" 가볍게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 "너무 아프고 잘 나가지도 못하면서 오래 산다는 것이 그리 좋지는 않단다" 라고 하셨어요. 그때서야 나는 엄마가 많이 아프시구나 무조건 잡는 것은 나의 욕심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엄마를 놓고 싶지 않았어요.


"코로나 격리만 끝나면 엄마에게 갈께요. 이번 5월 엄마생신에 갈께요" 라고 엄마를 붙잡았는데 지금 이렇게 떠나셨네요 끝까지 욕심만 부린 딸입니다.

엄마 그곳은 아프지 않고 아버지도 계시고 하나님 나라이죠?

이승의 아픔 다 훌훌 벗어던지시고 이제 환하게 웃으세요.

사랑하는 엄마 하늘나라에서도 우리 지켜주시구요.

엄마가 살아계셔야 살힘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하늘에서 지켜주신다고 믿고 살께요. 사랑하는 엄마 편안히 가세요.

엄마 마지막 가시는 모습 뵈러 뱅기타고 얼른 갈께요.


사랑하는 6번째딸 승자 올림

이전 11화엄마를 닮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