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도시에 오다

놀라움의 시작

by mindy

2004년 한국방문할때의 기억에 캐나다를 떠날때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그때는 아이들 셋을 데리고 오면서 남겨질 남편이 마음에 걸려서 울었던 것같다. 그러나 이번엔 남겨두고 오는 사람들 때문에 흘린 눈물은 없었다.


눈물은 비행기속에서 흘렸다. 눈이 뻑뻑해져서 눈을 훔치는 것처럼, 몇차례 그렇게 눈물이 났다. 첫번째 눈물은 "그 청년 바보의사" 책을 마저 읽으며 꽤 오래 울었던 것 같다. 그의 삶을 안다면, 읽는다면 어느 누가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 아프다고 할때, 어디가 왜, 언제부터 어떻게 아프냐는 당연한 의문이 든다. 환자마다 다르지만, 당사자는 그 아픔을 병명으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마음을 열고 말해주기까지 기다려야만 할수도 있다. 안수현 의사도 요절했다는 사실을 아는데, 그에 대한 궁금증을 책으로 풀수 없었다. 글을 읽어나갈수록 그 의문을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자꾸 앞선다. 그러나 참았다. 책이 내게 알려줄 것이다. 때가 되면 말이다.


그렇게 한장 한장 읽어나가다가,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장면을 드디어 마주했다. 그는 이름도 생소한 유행성출혈열에 감염되어 소생하지 못하고 죽었다. 환자를 치유하던 그 침상에 누워서 그렇게 자신의 생을 마감했다. 그는 환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고통을 앓을때, 내일처럼 안타까와하고, 치료에 최선을 다하더니, 환자들과 같은 모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군의관으로 재직하던 그가, 다시 사회로 나오지 못하고 대위로 세상을 떠날때, 나는 구름위에서 그의 마지막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동료들, 친구들, 선배들의 고군분투를 읽으며, 그리고 그가 떠난후 남은 그 흔적이 너무나 대단하여, 다른 방법은 없고, 눈물로 그를 기억했다. 그의 나이 33세에 그렇게 떠났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같다. 길지않지만, 강력하게 세상에 선한 삶이 어떠한지를 몸으로 보여주었으므로.


내가 만났던 (삐딱했던) 목사는 안수현 의사의 공로를 인정하면 안된다, 인간의 공로일 뿐이다, 그렇게 깎아내렸었다. 요즘 많이 느끼는 것이지만, 옛 목사가 "아니라고 했던 것" 그 전부가 "의미있고, 알아봐야 할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내게 도움이 될 것들을 메모했다. 그는 주변의 환자, 간호사, 친구들에게 좋은 책과 음반을 선물했다고 한다.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간구하며. 그가 이야기한 책들, "죽음을 넘어선 신앙" "약속의 땅에도 기근은 오는가" (김서택) "주님은 나의 최고봉"(오스왈드 챔버스), "살아있는 기억매체"(헨리 나우엔) 등의 책과 그가 죽기전 갔다는 "쉴만한 물가"라는 이름을 가진 펜션과 태백에 있는 "예수원"도 메모를 했다.

그랬다. 나는 한국에 가는 중이므로, 그가 추천하는 책을 살수도 있고, 추천하는 장소를 가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눈물이 있었다. "Still Water"라는 영화였다. 대한항공 의자에 부착된 스크린으로 볼수 있는 영화중에 제목이 좋아서 켰었다. 파리로 갔던 딸이 살인혐의로 수감된다. 이혼한 아빠,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아빠가 딸의 구명을 위해 파리로 날아가 부딪치며, 노력하는 이야기다. 딸은 아빠를 믿지 않고. 변호사도 재심의 기회가 없다며 일을 하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언어도 안되는 곳에서 딸의 결백을 위해 애쓰는 그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Still Water는 잔잔한 물가, 쉴만한 물가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시편 23편에 "잔잔한 물가(still water)로 인도하시고"라고 나온다.

이 잔잔한 물가는 한국에 오기전 병든 연약한 언니와 동생, 조카와 함께 갔던 1박 여행지에서 만난 식당 이름이기도 하다. 두강이 만나는 지점에 있었던 그 식당에서 우리는 다시는 만들 수 없는 조합의 여행자 모두에게 잔잔한 물가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렸다. 그날 저녁 동생은 하나님께 기도하다가 받은 말씀이라며 시편 23편을 언니에게 읽어주었다. 언니는 아무리해도 믿어지지 않는 주님의 말씀이 조금 들린다고 했고, 함께 눈물로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또한가지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아픈 언니와 함께 갔던 곳이 Paris였다. 영화의 주무대였던 그 파리와 이름이 같은 온타리오에 있는 파리스라는 마을이었다.

그리고 의사 안수현의 책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오는 그 펜션 이름도 "쉴만한 물가"여서, 이 모든 것들이 내게 말을 하는듯싶었다.


그런 다음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서 예능,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금쪽 상담소"를 남편과 봤다. 팬데믹이 시작되었을때 학교를 가지못하고 대면수업부터 한 초등 3학년생들이 친구들과 사귀는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설명이 있었다. 특별히 사회성이 부족한 두 아이 가정을 보여주고 의견과 처방을 주는 프로였다. 부모의 안타까움과 소통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들을 보는데, 어느 장면에선가 눈물이 났다. 눈물이 이렇게 자주 나니, 나의 눈물은 그다지 가치있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감정이 살아있다는 반증도 되니 감사할뿐이다.


이렇게 영화도 보고, 책도 보고, 예능을 보고도 시간은 아직도 다 가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정말로 연예인급 미모의 승무원들이 있어서 또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겠더라. 비빔밥, 샌드위치, 닭고기 요리를 먹었고, 중간에 라면냄새가 나길래 주위를 돌아보니, 컵라면을 먹는 사람들도 있어서 우리도 부탁해서 한컵(?)씩 스낵으로 먹었다.


밤낮이 바뀌는 곳으로 오니, 어느 순간 저녁이 왔다가 어느 순간 아침으로 바뀌었는데, 그나마 창문을 자동으로 까맣게 닫아놔서 거의 밤에서 밤으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잠으로 소진한 시간은 1시간 내외가 될듯싶다. 14시간 비행시간을 끝낸후, 공항밖으로 나오는데 또 두어시간이 걸렸다.

큰애는 일하는 시간이어서 우리가 전철타고 간다고 큰소리 쳤기 때문에, 이제 찾아가기만 하면 됐는데, 두 어른의 힘을 합쳤는데도 그다지 쉽지는 않았다.


서브웨이를 타야하는데, 공항철도 사인만 있어서 나는 안된다, 서브웨이를 찾아야 한다, 남편은 철도가 지하철이다, 설왕설래가 있었다. 결국 철도를 타면 지하철로 연결된다는 것을 또 알아냈고, 교통카드를 편의점에서 구입해서 충전도 하고, 시작부터 첨단기기와 친해져야 했다. 그렇게 가방을 밀며 끌며 오는데, 지하철역 한편에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나는 저걸 타자 했고, 남편은 사인을 보더니 노약자, 임신부라고 쓰여 있어서 우리는 타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피로감 때문인지 대놓고 내게 핀잔을 줬다. 나는 우리는 가방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저걸 타는건 당연하다고 우겼다. 그리고 사인에 보니, 임신부등이라고 쓰여 있어서 우리는 "등"에 속하지 않느냐면서. 자꾸 엘리베이터에서 멀어지려는 그를 당겨서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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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큰애의 오피스텔이 있는 삼각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선 엘리베이터를 못찾아 계단으로 그 무거운 것을 들어날라서 남편은 온몸에 땀을 흘렸다. 다행이 큰애가 알려준 대로 미리 예약하여 공항에서 심카드를 받고, 무제한 데이터를 깔았기에, 집 주소를 찍고 캐리어를 밀며 끌며 간신히 도착했다. 아침에 나온 것부터 시작하면, 총 24시간후 여장을 풀수 있었다. 학원에서 일하는 큰애가 도착하기전이어서 웰컴 종이인사를 받고 밤늦게 돌아올 딸애를 위해서 된장국을 끓였다. 집은 너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실수할 때마다 그의 실수는 나의 웃음이고, 나의 실수는 그의 웃음인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아니 처음에는 누가 더 나은가 경쟁하듯 했고, 긴장도 있었지만 나중엔 이것들을 웃음으로 바꿀만큼 여유로와졌다. 나는 버스를 타면서 제대로 된 곳에 카드를 찍지 않아서, 내릴때 "승차입니다"라는 방송을 들은 적도 있고, 남편은 엘리베이터 사건 이후 더 큰 것은 없었지만, 엉뚱한 데서 나를 핀잔했던 것 때문에 멋쩍어하고 있다.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그리 쉽기야 하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서울에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가 안착한 용산은 캐나다 시골서 온 내게는 미래도시로 비쳐졌다. 놀라움의 연속일텐데, 나중에는 숨넘어가게 되지는 않을지. 탐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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