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도시 용산
용산, 큰딸의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반겨준 것은 노란 종이였다.
그곳에는 "Welcome Back to Korea!!! 엄마 & 아빠! 이것들 다 선물이야. 다 먹어" 이렇게 삼각으로 접혀서 수건 위에 있다. 게스트가 올 때면 깨끗한 수건을 잠자리 옆에 놔주는 것이라고 큰딸이 그랬었다. 그것이 에티켓이라고. 아마도 서양문화가 그런가 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에 그렇게 큰 신경을 썼던 것 같지는 않다. 딸은 아직 일을 하고 있고, 우리는 알려준 대로 집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드디어 한국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것이다. 짐이 많은지, 자꾸 물어봐서 많은 짐을 가져오기가 어렵게 느껴졌었다. 집은 생각보다 더 넓고, 정리가 잘되어 있었다.
용산역과 신용산 그리고 삼각지가 우리가 자주 갈 지하철역이었다. 그중에서도 용산역은 지방에 갈 때, 특별히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놀란 것은 용산역과 그 주변의 큰 건물들이었다. 갈 때마다, 쳐다보다 뒤로 넘어갈뻔한 적이 많다. 번쩍거리는 사각형 아모레 건물, 1번 출구 앞에 있는 래미안 건물은 그 자체로 주목을 끌었다. 두 쌍둥이 건물이 한층을 통로로 이용하는지 연결되어 있어서 그곳에 눈이 머문다. 미래도시 용산 이란 말은 내가 만들어낸 말인 줄 알았는데, 용산에 가면 심심치않게 그 문구를 만날 수 있다. 내게는 그 문구 그대로 용산은 미래도시이다.
며칠 후 일찍 일어나진 김에 용산역을 탐방하기로 했다. 용산역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우선 거대하고, 무슨 그림이 그려져 있다. 화려한데, 정확히 무얼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더라. 어쩌면 젊은이들이 보면 금방 알만한 게임의 캐릭터가 아니었을지. 천장 쪽에는 물결 같은 비치는 재료로 되어있어서, 출렁거리는 느낌을 준다. 계단 하나에 50여 명은 족히 서있을 수 있을 것 같이 넓다. 우리가 갔던 그날은 텅 비어 있었다. 계단 안 가게에서 새벽 손님을 위한 오뎅을 팔아서 다른 사람처럼 우리도 오뎅을 달라하니, 컵에 국물을 주고 그 안에 오뎅한꼬치를 준다. 그렇게 용산역과 인사를 정중하게 했고, 밤낮으로 드나들면서, 용산 사랑을 키워갔다.
어느 날은 그곳에서 시민대회가 있었다. 함께 머물면서 사람들의 데모 모습을 지켜봤다. 내용은 벌써 잊었지만, 그 무리들이 삼삼오오 어떤 식당으로 오세요, 하면서 헤어지는데 그곳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용산역에는 아이파크 몰이 붙어있어서 쇼핑하러 많은 사람들이 온다고 한다. 남편의 대학교 여자 후배가 용산에 살아서 우리는 아이파크 몰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녀와의 만남은 유쾌했다. 평범하게 살다가 본인도 알지 못했던 잠재적인 역량이 나타나, 꽤 전문적인 분야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떻게 남편을 만났냐고 물어서 소개로 만났지만, 내가 한눈에 남편에게 반했다고 했더니, 그 대목에서 감격했다고 몇 번을 말했다. 젊었을 때 뜨거운 사랑을 해보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된다고 했다. 어른들 말을 너무 잘 믿었던 것이 억울하다고.
그 후배는 토론토에 한번 왔었고, 남편이 그녀와 딸을 만나러 토론토로 내려갔던 적도 있었다. 나는 남편이 후배를 만나러 내려갔기에 가게를 혼자 봐야 했다고 강조했다.^^ 여자 후배를 왜 보러 가야 하는가, 놀리기도 했지만, 나 역시 한국에서 친구가 온다고 했을 때, 4시간 걸려 나이아가라까지 남편과 함께 갔던 이력이 있는지라 그저 놀려먹기 위해 했던 말이다. 용산 후배는 노들섬을 많이 자랑했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이라고. 그래서 그녀와 다시 한번 노들섬에서 만났다. 해질녘까지 한강을 바라보며 노들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노들섬에는 역시나 젊은이들이 많은데, 우리 앞에 앉아있던 커플은 강가 바람 부는 데에 돗자리를 펴고 노트북을 가져와서 함께 드라마를 시청한다. 온갖 장비를 다 준비해온 그들이 대단하다. 후배와는 나중에 우리 집 큰딸, 그녀의 큰딸을 데리고 또한번 회동했다. 혹시나, 두 딸이 친구가 될 수 있으려나 하고. 부모들 요청에 불려나온 두 집 딸들은 각자 서로를 인정했지만, 그리 쉽게 친구로 맺어지지는 않았다.
용산에서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장소는 용문시장이다. 캐나다로 돌아오기 전, 딸에게 김치를 담가주고 싶었다. 딸은 젓국 등이 들어가지 않은 김치를 선호한다. 이마트에서 열무와 얼갈이를 사서 김치를 담았는데 다 먹었고, 배추김치를 먹고 싶다고 했었다. 재래시장도 가고싶은 곳 리스트에 있어서 네이버 지도에 가까운 시장을 검색했더니, 용문시장이 나온다. 걸어서 40분 정도라고 했던 것 같다. 저녁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이어서 서둘러야 했다. 문 닫는 시간이 8시라고 했다. 저녁이라 제대로 감을 잡을 수는 없었으나,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우선 배추를 사야 하는데, 한 군데에서는 이미 다 팔렸다고 한다. 이 시간이면 물건이 떨어져 배추를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한다. 몇 집 건너서 간신히 배추 2포기를 샀다. 생각 외로 꽤 튼실해서 끌고 갔던 바퀴 달린 가방에 간신히 넣었다. 배가 고프면, 김 나는 떡볶이나 찐빵을 먹을 것인데, 혀를 차면서 걷다 보니, 속옷 파는 가게 앞에 작은 행상의 할머니 야채가게가 있었다. 김치거리는 다 사서, 특별히 살 것은 없었으나, 어두운 시장에서 고구마 줄기를 까고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에게서 부추와 고구마 줄기를 샀다. 경상도 말씨 할머니가 말씀을 시작하신다. 요즘 딸이 아파서 죽겠어하시면서. 할머니의 따님은 최근에 암에 걸렸다 하였다. 이대를 나오고 학원 원장을 했던 착하고 인심 좋은 딸인데, 그리 되었다고 울상이시다. 할머니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시인인 막내딸과 함께 산다는 말씀도 하신다. 큰딸과 막내딸이 유수한 여자대학을 나왔다며 자랑스러워하신다. 당신은 90살이 되어도 이리 멀쩡한데, 왜 내 아이가 그런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할머니를 만난 이유가 있나, 말씀을 나누면서 생각한다. 할머니는 말씀을 그치지 않아, 자리를 쉽게 뜰 수 없었다. 그날 나는 집에 혼자 있었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했었다. 그때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셨던 것이지. 할머니의 말씀이 끝나갈 때쯤, 소용없는 줄 알지만, 그리 사족을 달았다. 할머니, 제가 믿는 하나님께 한번 부탁해보세요. 저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하나님께 기도드려요. 할머니는 내게 인상이 좋다면서, 자신이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집에 있기가 속이 더 답답해서라고 말하신다. 할머니가 다시 들고 들어가야 할 물건들을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조금 무거워 보이는 호박 한 덩이와, 말리느라고 애썼다는 토란줄기를 한 봉지 더 산다.
아이파크 몰에 큰딸이랑 같이 갔다. 딸이 맛있는 메밀국수를 사준다고 했다. 메밀부침개와 동동주, 집에서 걸어왔으므로 함께 한잔할 수 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맛을 표현해 본적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식당마다, 음식마다 감동을 줬다. 그런 다음 함께 쇼핑을 했다. 그다음 날인가, 남편의 친구와 아내들을 만나러 가는데, 조금 점잖은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백화점보다는 저렴하지만, 시장보다는 훨씬 비싼 가격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원피스를 사고, 남편은 와이셔츠를 샀다. 나중에 고속버스 터미널 상가와 남대문 시장을 가본 후 아이파크에서 쓴 돈이 아까와 혼났다. 그 돈이면 남대문에서 몇 개를 고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용산역의 최고의 가치는 교통의 요지라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용산역에는 각 도시로 가는 기차가 수시로 떠나고,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한국이 낯선 나에게도 많은 사람들이 길을 물어보기도 한다. 함께 지도를 보기도 하고, 스마트폰을 들고 길을 함께 찾기도 한다. 용산에는 동인천까지 가는 급행열차가 있는데, 인천까지 30분 정도면 갔던 것 같다. 친구를 만나러 갈 때 급행을 타라고 했는데, 급행 표시가 없어서 일반차를 타려고 했더니, 친구가 홈이 다르다고 말해줘서 그쪽으로 갔던 경험도 있다. 만약 급행을 타지 않았으면 얼마나 더 시간이 걸렸을지 모른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오기 쉬운 곳 중에 한 군데가 아닐까 싶다.
용산이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큰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2달 동안 셋의 동거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리움만 남아있다. 새벽에 잠이 깨었을 때 불을 환하게 밝힐 수 없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학원일을 하는 딸은 밤늦게 퇴근, 새벽쯤 잠이 들어 일을 가야 하므로, 잠시간을 챙겨주어야 했다. 이어폰으로 듣고 싶은 방송을 듣는 것이 내가 발견해낸 방법이었다. 남편과 함께 새벽에 길을 나섰던 적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잘 적응했다.